육식

by 박동현

우리는 영혼이 아니라 뇌로 이뤄져 있다는 믿음 하에 이어진 연구는, 뇌에 전기 자극을 주어 다른 사람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였는데 그중 하나는 연쇄살인마들을 이용하여 그들의 뇌에서 공통으로 자극되는 부위를 찾아내어 전기신호를 준다면 근본적으로 갱생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으로 사형 집행을 앞둔 연쇄살인마들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쾌한 리듬으로 무뇌아로 만들던 와중, 드디어 자극 후에도 뇌에 이상이 생기지 않고 멀쩡히 생존한 살인마 V의 등장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는 자극 이후 다음날이 되자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고 나체로 돌아다니는 것만큼 상쾌한 기분이 든다고 주장했는데 우울증과 뒤늦은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던 V의 프로필과는 상반된 행동을 보인 것이었다. 곧 항우울제의 복용을 중단한 그는 온갖 살생에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곧 비건이 되었다)

다 삭아버린 옛 실험들에서 알 수 있듯, 뇌의 특정 부위에 자극을 주면 두려움을 덜 느끼거나 언어능력이 향상, 혹은 감소하는 결과들이 있었고 이는 분명 지엽적인 결과였으나 해당 실험의 분명한 근거로서 게으른 판다곰처럼 기어와 묵직하게 자리한 것이었는데, 실험 전 여러 가설 중 하나였던 ‘꼬인 이어폰’ 이론은 어느 하나의 선택압이 여러 충동에 자극을 받아 일으킨 결과라는 가설이었고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주먹을 쥔 채로 키보드를 지그시 누르더라도 모니터에 입력되는 결과값은 ‘가장 먼저 눌린 키’의 것뿐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한데 이 비유로 알 수 있는 건 ‘가장 먼저 눌린 키’를 누른 ‘가장 튀어나온 살’이 곧 가장 자기주장이 강한 충동이라는 뜻이니 V의 행동 변화는 어떤 가설보다 ‘꼬인 이어폰’ 이론과 잘 들어맞았고 이제 그는 구멍이 난 주먹과 다름없어진 셈이었다.


V를 포함한 모든 연쇄살인자는 방학식의 학생들처럼 쏟아지는 충동 속에서 살인을 저지른 게 분명해 보였고 V는 지금 비건이 되었기에 살의와 연관된 남학생 하나를 납치해 포박한 상태라고 볼 수 있었지만 이를 증명하려면 V에게, 그러니까 아직 왁싱을 하기 전 덥수룩한 시절의, 살인 충동을 일으켰던 환경을 재현할 필요가 있어 지원자를 받으려던 와중, 운이 좋게도 V에게서 헐레벌떡 도망가는 데 성공했던 독거노인 P가 자연사함으로써 V를 P에게 데려갈 수 있었으며 P는 진즉에 가족에게 버려진 신세였기에 그 누구에게도 이 연구 과정을 보고할 필요가 없이 V에게 충동을 일으켰던 상황을 손쉽게 재현할 수 있었고 이는 긴 연구가 드디어 성과를 향해 덩실덩실 춤추며 다가가는 것만 같았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V는 P에게 반응을 보였고 그건 여전히 V에게 P는 관심이 가는 대상이라는 뜻이었는데 연구자들은 미리 방에 설치한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그런 V의 행동을 염탐할 수 있었지만 사실 그들은 연구가 성공했다는 기쁨에 벌써부터 온갖 배달 음식을 주문하여 연구실의 테이블을 질질 끌어다 붙이고서는 샴페인을 터뜨리고 케이크를 서로의 얼굴에 처박아대느라 V가 P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숙취가 끝난 다음 날 저녁이 돼서야 수척해진 얼굴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 V가 P에게 반응을 보인 순간에 V를 P의 집에서 내보낸 뒤, V를 교도소로 환송시키고 P의 시체를 화장터로 보냈던 연구원 X는 가위바위보에서 진 탓에 다들 만찬을 즐길 무렵에 홀로 연쇄살인범과 노인의 시체와 함께 있어야만 했다. 연구실로 돌아온 X는 뒤늦게나마 숙취에 무너진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먹다 남은 페퍼로니 피자에 크러시드 페퍼를 뿌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것이다.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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