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알림장을 썼다. 할 일이나 숙제, 준비물 따위를 미리 일러주는 담임의 말을 받아적는 노트였는데, 학생이 그걸 보고 수업 준비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담임과 학부모의 소통 수단에 가까웠다. 거기서 학생의 역할이란, 두 어른이 서로 필담을 확인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사인을 받아오는 것이었다.
알림장에는 삐뚤빼뚤하며 맞춤법을 전혀 고심하지 않은 내 글씨와, 담임과 엄마가 볼펜으로 단정하게 주고받은 글씨(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의 글씨는 항상 반듯하게 그어진 가로줄 밖으로 이탈했다) 가 있었다. 나는 종례 시간이면 어른들의 글씨를 심심풀이 삼아 읽곤 했다. 그들은 나의 학습 태도와 의사소통 방식에 대해 지적 혹은 염려하고 있었다. 고학년 정도만 되었더라도 그런 내용을 숨기거나 조작하는 따위의 짓을 저질렀겠지만, 저학년 시절이었던 나는 그것이 자신의 단점을 지적하는 내용임을 알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두 어른의 글씨체의 차이를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의 필담 중에서 그나마 제대로 떠올릴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앞뒤 상황까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는 아주 공손한 태도로 담임에게 나의 행동에 대해 오해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그 행동이란, 혼날 때마다 웃어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나의 습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엄마의 글씨는 내가 반항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저 예의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덧붙이고 있었다. 나는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는데, 엄마가 내 의도를 너무나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어른의 얼굴을 바라본 게 아니었다. 오히려 어른의 충고를 잘 새기겠다는, 한 귀로 듣고 반대편 귀로 흘려보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태도로 그런 거였다. 나는 엄마가 내 의도를 오해했음에도 놀랐지만, 그걸 내게 지적하지 않고 담임에게 다소 낮은 자세로 설명하는 모습에 특히 당혹스러웠다. 나는 그 필담을 본 이후로는 혼이 날 때마다 어른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시절로 넘어갈수록 부모님에게 혼나는 일이 줄었다. 분위기가 심각해질 정도의 문제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유일한 문제는 나의 학업에 있었다. 학원에 등록시켰는데도 비슷한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오는 상황이 반복됐으니까.
중학교 2학년이 되어 평균이 십 점씩 내려간 성적표를 받아왔을 때는 집안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맴돌았다. 나는 눈치를 보며 며칠 동안은 반성하며 공부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에는 언제나처럼 게임이나 했다. 보다 못한 아빠는 나를 불러서 자신의 앞에 앉혔다. 물처럼 흘러나가는 학원비와 아직도 노는 것 빼고 하고픈 게 없다는 내 태도를 꾸짖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러라고 학원 보낸 줄 아느냐’ 하는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는 대신 발가락만 만지작거렸다. 그땐 엄마가 알림장에 적었던 글 때문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학원에 다녔지만 공부하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몸만 왔다갔다 할 뿐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내가 학원에서 하는 건 친구들과의 시시껄렁한 장난이었으니까. 동시에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구들은 나처럼 지내고 있었고 누구는 용돈을 배로 더 받았으며 누구는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기도 했으니까. 범생이가 아니라면 다들 그렇게 지내는데, 이런 식으로 혼까지 날 문제인가 싶었다. 물론 이 많은 볼멘소리는 결국 공부하기 싫다는, 정확히는 공부뿐 아니라 무엇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했다.
“내 얼굴 똑바로 봐!”
아빠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기에, 놀란 나는 어떤 의심이나 불만도 없이 일단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같은 지적을 받지 않도록 아빠의 얼굴을 정성스레 바라보도록 애썼다.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빠의 눈코입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분노나 흥분 따위로 눈코입이 부르르 떨리는 것과는 아예 달랐다. 눈코입은 정말로 ‘움직이고’ 있었다. 말하자면 긴 팔다리를 가진 사람이 느리지만 큰 동작으로 그것을 흔드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아빠의 좌우 눈꼬리가 위아래로 덜컹거렸고, 코는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고, 입술은 자잘한 주름을 꿈틀거리며 광대뼈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눈썹은 강한 바람을 맞은 것처럼 위아래로 흔들리며 갈라졌고, 귀의 연골은 알을 깨고 나오려는 동물들처럼 얇은 피부 안쪽에서 자꾸 솟아오르고 있었다. 와중에도 아빠는 화가 난 모습으로 내게 반성을 요구하는 중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되는 집중력을 발휘하려 애썼다. 아빠의 꾸지람과 눈코입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얼굴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빠 아닌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빠의 미래 혹은 과거일 수도 있었고, 수많은 현재일 수도 있었다. 곧 엄마까지 끼어들어서 아빠의 말을 거들었는데, 엄마의 눈코입은 접착력이 부족해진 듯 얼굴에 겨우 붙어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기이한 얼굴로 언성까지 높이고 있었기에 나는 매일 못해도 한 시간씩은 공부하겠다며 약속하고 말았다.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서, 나는 사회 문제집을 책상에 펼치고 앉았다. 그러고는 정말로 한 시간 반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잠을 자거나 몰래 핸드폰을 하지도 않고 시간을 그렇게 보낸 것이다. 용케 이십 분 정도 문제를 풀기도 했다. 그러나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문제집이 아닌 코를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각각 아빠와 엄마의 얼굴에서 달아난 코였다. 코가 얼굴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것을 ‘달아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코는 얼굴에서 팟, 하고 튀어나오거나 톡, 하고 떨어진 것이 아니라 덜렁거리며 내리막을 달리는 경우와 흡사하게, 윗입술이 만든 아슬아슬한 벼랑을 딛으며 귀 아래의 턱을 지나 목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데굴데굴 굴러 쇄골에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져 놓고는 금세 기운을 차려 자신의 주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문턱으로 질주했기 때문이다. 물론 코의 질주라는 것이 기껏해야 지렁이보다 빠른 수준이었고, 코의 존재감이나 크기가 작지도 않은 덕에, 나는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곁눈질을 하며 내 발치를 지나가려는 그것들을 한 손에 하나씩 붙잡을 수 있었다. 나는 콧등과 콧볼,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조물거리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하면 좋지,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두 사람의 얼굴에는 새로운 코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었다. 코를 제외한 다른 부위들은 진정이라도 한 듯 더는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그즈음이 내가 매일 공부를 하겠다며 약속한 때였다.
나는 노트 위에 올린 두 사람의 코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빠의 것이 더 크고 기름졌으며 모공이 많았고, 엄마의 것은 콧등의 뼈가 더 단단했다. 콧등뿐 아니라 전체적인 피부가 더 그런 느낌이었다. 두 코는 얌전히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호흡을 이어갔는데 누구를 위한 호흡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콧구멍이 얼핏 울먹거리는 눈처럼 보이기도 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내기는 했다. 그러나 계속 들여다보고 있기에는 코털과 거기 들러붙은 콧물에 자꾸 시선을 빼앗겨서, 쓰지 않는 필통에 보관하기로 했다. 두 코는 플라스틱 필통 안에서 얌전했다.
이후로 나는 공부를 하진 않더라도 매일 방에 한 시간 정도는 들어가 있었다. 때로 사십 분 정도만 있다 나오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그걸 지적하지는 않았다. 하여간 약속을 지키는 척이라도 보인 것이다. 나는 십 분에서 많게는 삼십 분 정도 문제집을 풀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학원숙제였지 스스로 하는 공부는 아니었다. 그래도 숙제하고 있음을 학원 선생이 나름 알아봐 주었을 때는 꽤 뿌듯했다. 물론 숙제한 것은 당당한 마음으로 게임을 하기 위함이었다. 나머지 삼사십 분 정도는 필통에 넣어둔 두 사람의 코를 보거나 만지면 금방 지나갔다. 눈이나 입, 하다못해 귀라도 됐다면 그럴듯한 요술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을 것도 같은데 어째서 코가 이렇게 달아났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단단한 구석도 있으며 말랑말랑하며 탄력도 있고 웅크린 듯한 모양을 한 코는, 곧 내게 달팽이 정도로 인식되었다. 물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진물을 흘리거나 둘이 짝짓기하는 일도 없었다. 어떻게 알았냐면…… 내가 두 코의 접촉면끼리 맞붙이거나, 콧구멍끼리 마주 보게 놓는 짓 따위를 수없이 해 보았기 때문이다……. 스카치테이프나 고무줄로 둘을 아주 달라붙게 해도 코는 서로 친해지거나 멀어지거나 하지 않고 각자 숨을 쉬었다. 어느 순간부터 두 코는 달아난 게 아니라 버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난 두 사람의 새로운 코에게 발길질 비스무리한 것을 당했는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펼치게 했다.
식탁에서 바라본 두 사람의 코는 너무나도 깔끔하게 붙어 있어서, 잡아당기거나 손톱으로 살살 긁어낸다고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방에 들어가 숙제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아빠가 술에 취해 돌아와서는 겨우 씻고 곯아떨어졌다. 나는 잠든 아빠의 얼굴에 아빠에게서 달아난 코를 가져다 대 보았지만 여기저기 어느 곳에 붙여도 코와 얼굴은 달라붙을 시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코를 가져다 댐으로써 잠시 코가 두 개가 되었을 때마다, 아빠의 호흡은 가만히 멈추었다. 그것이 술 취한 아빠의 코골이라고 생각한 나는 아빠가 결국 숨을 들이쉴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는데, 아빠는 일 분 가까이 호흡을 멈추었고,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코골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다급하게 코를 아빠의 얼굴에서 떨어뜨리자,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헉, 소리를 내며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엄마에게는 이런 짓을 굳이 시도하지 않았다. 엄마는 술도 마시지 않아 아무리 조용히 문을 열어도 ‘응?’하고 깨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임과 알림장을 통해 나눈 필담을 떠올리기도 했다. 잠든 얼굴을 멋대로 들여다보는 것은 엄마가 정말 싫어할 행동일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삼 주째 매일 한 시간씩 숙제하는 중학생이 되었다. 아직 영어나 수학 숙제는 풀다가 포기하고 찍기는 했지만, 스스로도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약간 설레기도 했다. 서울의 유명 대학에 입학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때 필통에 둔 두 사람의 코까지 함께 들떠서 벌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때로는 킁킁 소리까지 냈다. 하지만 이 습관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우리 반, 아니 학교에서 선풍적인 유행이었던 온라인게임 H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막 오픈베타를 한 H가 어째서 우리 또래를 미치게 할 수 있었는지는 생각할수록 희한했다. 비슷한 게임인 M도 있었고 D도 있었는데 어째서 하필 H로 모여들었을까? 하기야 그때는 서로가 하는 것을 따라 할 필요도 있었고 또 함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시기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그때 유행한 게임이 M이나 D였다면 나는 숙제나 했을 게 분명하다. 왜냐면 두 게임에서 모두 문화상품권 사기를 당한 탓에 정이 아주 끔찍이도 떨어진 상태였으니까. 아예 새로운 시작인 H는 그런 점에서 내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하여간 나와 친구들은 모두 H를 시작했으며, 곧 반 하나 규모의 길드를 만들기까지 했다. 전화나 문자를 할 필요도 없이 H에서 모두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새벽에 몰래 컴퓨터를 켜서 접속했을 때도 나만큼, 혹은 나보다 정신 나간 두세 명 정도가 접속해 있었는데, 이런 경험은 게임, 혹은 길드원(이라기보다는 같은 반 친구들)과의 무언가를 돈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배신할 수가 없었다. 숙제 따위는 그만두게 되었다. 놀랍게도 매일 하던 공부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본 아빠도, 엄마도 내게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지키지 않아도 될 약속을 바보같이 혼자 지켜왔다는 기분이 들면서 나는 한껏 H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두어 달 지나고서야 나는 필통에 있던 한 쌍의 코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기에 코를 찾을 시간은 없었다. 이미 코는 어디론가 멀리 떠났을 게 분명할 것 같았다. 나는 코가 무사하기를, 놀랍도록 얄팍하고 성의 없이 기도한 이후 그것들을 완전히 잊었다.
눈도 입도 귀도 아닌 코의, 엉뚱하기 짝이 없는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거의 십오 년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그사이 아빠는 교통사고로 오랫동안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거의 완벽히 회복한 이후로 금연을 시작했고, 아침마다 등산하는 취미를 붙였다. 엄마는 다단계 회사에 들어가 친구들만 사귄 뒤 빠져나오는 기묘한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렇게 만난 친구들과 잘도 여행을 다녔다. 부모님은 가족 단톡방을 만들어서는 산 정상에 올라 찍은 사진과 베트남 공항 따위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며 서로에게(특히 내게) 어떻게든 반응하기를 요구했다. 한 마디씩 보태기 위해서는 사진도 보는 편이 좋았다. 나는 선글라스를 낀 엄마가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브이 포즈를 한 사진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 선글라스는 촌스러웠지만 나름 비싼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이런 걸 어디서 산 거야? 생각하며 사진을 확대하던 나는, 그 코를 만나게 되었다. 내 필통에서 벌렁거리기만 하고 짝짓기도 안 하던 그 코가 어느새 다시 엄마의 얼굴에 붙어 있었다. 피부색이 어두워졌고 점이 두어 개 더 박힌 것 같지만 나는 그 코가 그 코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산 정상에서 새빨간 등산복을 입은 아빠의 사진도 확대해 보았다. 마찬가지로 그 모공 많고 기름지며 엄마의 것보다 구멍이 큰, 그때의 그 코였다. 나는 그 코들을 바라보고 만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 아련한 마음이 되었다.
그러면 전에 새로 돋았던 코는 또 어디로 갔다는 것일까? 코가 불러온 여러 기억을 되새기다 문득 든 의문이었다.
놀랍게도 의문은 다음 날 해결되었다. 나는 면도를 하며 거울을 보다가, 술 취해 자던 아빠의 얼굴에 붙어 있던 코가 내 얼굴로 입주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막 잠에서 깬 아내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는 막 잠에서 깬 자신보다 내가 더 비몽사몽하다고 구박했고, 그렇다면 여태 있었던 내 코는 어디로 가게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코라는 녀석들이 생각보다 알아서 잘 움직이니까 궁금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고 말하다 아내의 코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정말이지 처음 보는 사람의 코였다. 유쾌하며 또 아득한 감정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는데, 그걸 아내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잠에서 깬 딸아이가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