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의 곰(1)

by 박동현

구부정하게 앉은 곰은 고개를 숙여 쓰러진 F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곰은 두꺼운 앞발로 그를 툭툭 건드리거나 아예 코를 들이밀기도 했다. F가 미동도 없자 곰은 V에게로 고개를 돌려 우웅, 소리를 냈다. 어려서부터 곰은 필요한 게 있으면 그렇게 울었고 때론 떼쓰듯 다리에 매달리기도 했다. 어쩜 그리 바라는 게 많았는지. 단순하고 깜찍한 의사소통법을 익힌 곰은 새벽에 그들의 잠옷이나 손발을 질겅질겅 깨물기도 했다. 그들은 잠에서 덜 깨어난 와중에도 흘러넘친 애정에 한껏 젖었다. 그 기분 좋은 간지럼. 안쓰러운 것. 부부는 홀로 버려졌던 아기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른 하루를 맞이하곤 했다.


곰은 다시 F에게 코를 들이밀었다. 보다 힘이 들어간 움직임이었다. 곰에 의해 뒤집힌 F의 몸은 천장을 바라보는 자세가 되었다. V는 그가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알아도 자꾸 그렇게 여겨졌다. F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배수관의 어긋난 이음새로 떨어지는 물처럼.


곰은 앞발로 눈 주위를 비비며 V에게 다가왔다. 곰이라는 동물에게 기대하게 되는 미련함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움직임이었다. 여태껏 사랑해 마지않던 애교였지만 그녀는 곰에게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다. 대신 쓰러진 F와 벽에 자랑스레 걸어둔 가족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가운데 곰을 끼고 앉은 부부. 곰의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 실에 묶은 연어와 생닭, 사과, 오렌지 따위를 주렁주렁 매달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었다. 두 사람의 미소와 곰의 입가에서 길게 늘어진 침. 그는 그녀와 차를 마시며 말하곤 했다. 우리 중 누군가 먼저 떠나더라도 이 사진은 영원할 거야. 그녀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식탁 위로 찻잔이 놓이는 소리…… V는 주위로 피어나 있던 온갖 신비를 빨아들이는 침묵을 느끼며 망가진 기계라도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뿐 아니라 집안 곳곳이 전부 그랬다. 주요한 부품이 빠져버린 채 형체만 유지하는 꼴이었다.


V는 손바닥으로 F의 눈꺼풀을 쓸어내렸다. 어느덧 팽팽해진 피부 탓에, 눈이 전혀 감기지 않았다. V는 손에 힘을 주는 대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과 두피의 부드럽고 단단한 감촉은 여전히 그의 것이었다. 그녀는 곳곳에 자란 새치를 바라보며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거울 앞으로 걸어간 그가 벌써 염색할 때가 되었다며 툴툴거릴 것 같았다. 보다 새치가 적었던 그녀는 자주 염색할 필요가 없었다. 머리카락이 더 기름지고 두툼한 쪽도 그녀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모발 상태를 두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주로 그녀가 그를 놀리는 식이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면 주위로 나른히 부유하는 평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탈모가 막 진행되고 있던 F의 정수리에 손이 닿자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이 쏟아졌다. 무심코 F의 머리를 품에 안으려던 그녀는 소스라쳤다. F의 뒤통수. 모자를 즐겨 쓰고 종일 누워 게으름을 피우느라 항상 납작하게 눌려 있던 그 뒤통수 안쪽으로, 깨진 꽃병의 것 같은 큼직한 조각이 덜그럭거렸다. 박살 난 머리를 계속 안고 있을 수 없었다. 내키는 만큼 안았다가는 가루가 될 정도로 으스러질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를 내려놓으면서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F에게 건넨 작별 인사였다.


조용히 다가온 곰이 코끝을 V의 귓전에 들이밀었다. 촉촉한 코가 숨결과 함께 귀에 닿으면 짜릿한 감촉이 그녀의 등줄기까지 자극하곤 했다. 떼로 몰려든 천사들이 온몸에 건네는 입맞춤. 그 쾌감은 한껏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거구의 생명이 애써 조절한 힘으로 건넨 행동을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 V는 온 힘을 다해 손바닥으로 곰의 머리통을 두어 번 내리치며 귓가에 묻은 물기를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곰은 V에게 맞으며 숙였던 머리를 더욱 수그리며 앞으로 굴렀다. 그녀가 악을 썼다. 곰이 F의 몸 위로 구른 탓이었다. 곰은 벌러덩 누워서는 V의 바지 밑단을 질겅질겅 씹으며 버둥거렸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F의 몸을, 그리고 그녀의 많은 것을 짓이겼다. V는 꺼지라고 울부짖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간절해질수록 곰은 장난에 몰두하였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리자 V의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식탁 의자를 잡아 높이 치켜들었다. 본래는 네모난 식탁의 모서리마다 있었으나 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져 세 개만 남은 의자 중 하나였다. 강아지만큼 작던 아기곰은 그 의자 위로 오르는 것이 생의 목표인 양 굴었다. 의자에 매달려 끝까지 오르지 못한 채 항상 억울한 듯 끙끙 울었고, 때로는 밤에도 그것을 밀고 물어뜯으며 온갖 소음을 냈다. 점차 자라난 곰은 손쉽게 의자에 올랐다. 몸집이 커져 제대로 앉지 못하는데도 자주 그랬다. 의자가 무너진 원인은 몸무게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잇자국으로 가득한 의자 다리는 어느새 비틀어져 길이가 어긋났고 삐그덕거렸으며 종종 침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으니까. 그렇게 무너진 의자를 버리고 남은 세 개 중 하나를, V는 높게 치켜든 거였다. 그녀는 의자를 곰에게로 내리쳤다. 그녀가 잡았던 등받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가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질 때까지 수차례 반복했다. 곰은 이를 한껏 드러내더니 벌떡 일어섰다. 털까지 곤두세워 몸을 한껏 부풀린 곰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거칠게 울었다. 그런 모습과 처음 마주한 V는 곰에게 당할 죽음만을 기다렸다. 한편으론 기쁨이 섞인 체념이었다. 그러나 곰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으르렁대면서도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자신의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스프링 기울어지는 소리가 대여섯 번 들렸다. 곰은 그 비대한 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숨을 죽여서는 끙끙 소리 내 울었다.


곰은 평생 그들의 보살핌 속에 얌전했다. 야성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 짐승이 그러하듯 유아적으로 느긋했다. 한없어 보이던 생기를 잃고 노년이 된 지금까지 항상 그랬다. 털은 푸석푸석해졌고 코끝은 자주 말랐으며 식성과 활동성이 줄어든 대신 잠이 그만큼 늘었다. 그들은 같은 시간의 능선을 나란하게 오르는 셈이었다. 그 사실이 두 사람과 곰을 더욱 단단하게 엮었다. V가 그 끝에 자리하고 있을 작별을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항상 작별을 인지했다. 다만 그것은 꼭대기에 자리하여 지나온 풍경을 함께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거나 그런 순간이었다. 다분히 도취적인 태도임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과 F, 그리고 곰의 마지막에 일말의 아름다움도 없으리라는 예감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거쳐온 모두가 응당 품에 안고 다녔을 작은 그림이며, 끝없는 어둠 앞에서 소진하기 위해 남겨둔 빛이었으니까. 허나 지금, V는 어둠 혹은 빛의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한 채 작별을 맞이한 것이었다. 무색무취의 침묵이 그녀를 비웃었다.


아무 전조도 없었다. F와 곰은 여느 때처럼 거실에서 서로를 밀고 당기며 뒹굴었다. 뻐꾸기가 튀어나오는 벽걸이 시계나 족제비 박제, 소파나 식탁 따위를 망가뜨렸음에도 멈춘 적 없는 그들의 놀이였다. 적당히 해, 다치겠어. 아무 우려도 없는, 습관에 불과한 V의 말은 입김이 되어 사라졌다. 바짝 약이 오른 둘이 서로에게 그르렁댔던 소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V는 눈이 쏟아지는 창밖 풍경에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하하, 그만, 그만…… 쿵, 하는 무거운 소리가 들렸지만 별다른 건 아니었다. 그녀는 그들의 철없음에 대해 포기한 지 오래였다. 못 말린다니까. 그녀는 F에게 마당에 쌓인 눈을 함께 쓸자고 했다. 그는 못 들은 체하는 모양이었다. 또 이러는군. 그녀는 눈썹을 높이 치켜올리고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F는 그녀의 인기척에도 엎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곰만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그녀는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V는 다급히 F의 시신을 한쪽으로 바짝 밀고 러그를 끌어당겨 핏자국 위로 덮었다. 문을 열자 친절한 이웃 K가 긴장된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다. K는 머리와 어깨에 눈이 쌓인 채로 자신의 남편이 애용했을 엽총을 들고 있었다. 어정쩡하기 짝이 없는 자세였다. 비명이 들려서 왔다고 한 K는, 자신을 맞이한 V의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혹여나 충격적인 비밀과 마주하게 될 상황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V는 애써 웃었다.


−브라운이 생쥐를 잡았지 뭐예요.


−생쥐를요?


K가 미간을 찌푸리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앞발로 눌러 버렸어요. 그 둔한 것이 무슨 재주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요. 그러고서는 자랑스럽게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니까요. 눈이 꽤 쌓일 것 같으니 마당이나 한번 쓸어야겠다, 생각하는 사이에…… 곳곳에 색칠 놀이를 했더라고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죠.


−어머, 브라운.


어느새 뒤로 다가온 곰이 V의 어깨너머로 K를 바라보기 위해 두 발로 서 있었다. K가 손을 흔들자 곰도 앞발을 흔들었다.


−이쪽 발이에요. 장난치는 줄 알고 계속 도망가는 걸 잡느라 혼났지 뭐예요.


K는 안도한 듯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V는 저도 모르게 곰의 털가죽을 붙들었다. 이 무너진 집에서 진즉에 쏟아져야 했을 잔해가 아직 덮쳐오지 않은 건, 곰이 그 거대한 몸으로 무언가를 막거나 견뎌냈던 덕인지도 몰랐다. 곰은 불편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앞발을 허우적대면서도, 텅 빈 얼굴을 한 V가 털가죽에서 손을 놓을 때까지, 어떻게든 두 발로 선 자세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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