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의 곰(3)

by 박동현

눈은 몇 번 더 내렸다. 제설차의 뒤를 따르던 청소부가 강에 가라앉은 SUV 한 대를 발견했다. 기상예보는 이제 폭설이 없을 거라고 했다. 햇빛이 쌓인 눈의 표면을 바싹 말리며 조금씩 마모시켰다. 경찰관은 그녀에게 F가 마지막으로 나섰던 시간 따위를 물었다. 얼굴에 피로함이 잔뜩 묻은 경찰관은 마주한 여자에게서 풍기는 불행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내 F는 공식적으로 실종 상태가 되었다. 그녀 홀로 마당의 눈을 치울 무렵에 이웃들이 몰려와 하나같이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혼자서 견디지 말고 꼭 우릴 불러요,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온기가 그녀 주위를 부패시켰다.


T가 찾아온 시간은 평소 F가 퇴근할 즈음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그의 차를 보자, 그녀의 귓가로 두 남성의 경쾌한 목소리가 소란스럽게 날뛰었다. 침묵 속이라 더욱 또렷했다. T가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서야 그 소리는 가라앉았다. 아니면 몰래 사냥한 동물들을 담아갔던 트렁크로 숨었는지도. T는 가만히 서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사냥감을 뒤쫓는 듯한, 어떤 일념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V는 내심 무언가 발견되기를 기대했다.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휘몰아치는 격정에 휩쓸려도 좋을 듯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곧 총기를 잃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방 안쪽에서 삐걱대는 침대 스프링 소리가 들렸다. T 앞으로 천천히 다가온 곰이 털썩 앉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곰의 머리를 쓰다듬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런, 브라운, 이런…… 놀랐겠구나. 이러면 안 되는데…… 미안합니다.


억누르려 했던 그의 울음소리는 결국 계속 커졌다. V까지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주저앉아 울었다. 죽은 F가 쓰러졌던 자리에서였다. 그게 우연이거나 신의 의도인지, 아니면 자신의 불행을 유지하기 위한 연극인지 그녀는 몰랐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고 거대한 쿠키에 박힌 초코칩 모양의 눈동자는 그들의 슬픔을 훌륭하게 장식했다.


그가 떠나자 고요는 더욱 무거워졌다.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고요가 사방으로 튀어나온 채였다. 그 끝은 아주 날카롭게 벼려져 있을 게 분명했다. 이제 T를 다시 본다면 F의 장례식 따위가 마지막일 거였다. 그녀는 곰을 불렀다. 저만치에 드러누워 있던 곰이 느리게 다가왔다.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닿자 주위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V는 곰이 야위었다고 느꼈다. 착각은 아닐 거였다. 실제로 끼니를 거르고 있었으니까. 언제부터인지는 몰랐다. F를 마당에 묻고 온 뒤부터 그랬다고 믿었다. 곰은 전처럼 문 앞에 앉거나 서서 F를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아기곰이었을 때처럼. 그러나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다 넘어지고 넘어뜨리거나 핥고 갉고 울다가 문득 잠들고 깨어나고 사랑을 갈구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차라리 거대한 꽃씨에 가까웠다. V의 몸짓이 일으키는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싹틔울 시기를 놓쳐 날아다니는 것만이 전부가 된. 그녀의 손은 곰의 크고 굵직한 뼈의 굴곡을 반복적으로 오르내렸다. 오랫동안 건재할 듯한 뼈대였다. 그녀는 영원히 자라나는 곰을 상상했다. 집채만 한 몸의 안쪽을. 안전하고 부드러울 그곳을. 성장을 멈춘 지 오래인 곰은 V의 작은 손에 올려진 것들만 먹었다. 그녀는 때때로 쥐약을 오랫동안 쥐었던 손을 내밀어 보곤 했다. 그러니까 때때로.


강과 그 주변의 수색은 의미 없이 이어졌다. 수색대는 F가 없는 곳에서 애썼다. 머지않아 그의 생존은 불온한 믿음이 되었다. 수색은 미궁에 빠진 수사를 위해 진행될 뿐이었다. 물론 수색대 누구에게도 고인과 유가족을 위한 마음가짐은 존재하지 않았다. 끔찍이 괴롭고 번거로운 겨울 물놀이에 불과했다. 이웃 중 몇몇은 강가에서 고인과 그 부인을 향해 터져 나온 욕지거리를 엿들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짧은 판단과 함께 가슴에 묻어둔 그 욕설은 완벽히 밀봉되어 V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날이 지날수록 F가 묻힌 눈더미는 햇빛과 바람 따위에 다듬어져서 자연스레 낮고 평평해졌다. 그녀가 주변의 눈을 모아 그 위로 쌓아도 다음 날이면 그만큼 다시 녹았다. V는 이제 눈 아래에 파묻힌 그를 볼 수 없었다. 막 내릴 즈음의 점성을 잃은 눈은 이제 얇은 얼음에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깨부숴 꺼내면 다시 넣을 수 없었다.

V는 내내 과일과 고기, 혹은 만들어 둔 스튜를 곰에게 수시로 들이밀었다. 불편한 듯 계속 자리를 피하는 곰이었지만 그녀가 직접 건넨 음식은 순순히 받아먹었다. 종일 조금씩 먹이다 보면 하루가 저물었다. 딱히 곰이 기운을 되찾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쇠약해지지도 않았다. V는 밤마다 다음 날에 곰의 주둥이에다 밀어 넣을 음식들을 손질한 뒤 잠들었다. 전체적인 식사량이 줄어드니 진즉에 바닥났을 음식들로 용케 버틸 수 있었다. 그것도 며칠 뒤면 끝이었다.

keyword
이전 16화이십 년의 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