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의 곰(4)

by 박동현

경찰관이 그녀를 다시 찾아왔을 때는 수색이 소득 없이 열흘째 이어질 즈음이었다. 집 앞에 선 경찰차는 두 대였다. 총 네 명의 경찰 중 낯익은 한 명만 그녀 앞에 서 있었고 나머지는 그 뒤에서 좌우로 띄엄띄엄 떨어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무심한 듯 서 있는 그들이 문을 포위하고 있음을 알았다. 앞서 V의 집에 방문한 적 있었던 경찰관은 여전히 업무적인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어째서 수색이 난항에 빠졌는지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남편분이 차에서 빠져나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요. 아시다시피 물살이 센 강은 아니라 멀리 떠내려가기 어렵습니다. 물론 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만…… 당장 일반적인 범위 내에서는 별다른 걸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가 수중 수색에 집중했던 이유는, 만일 남편분이 강 밖으로 나오셨다면 상황이 좀 이상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잔잔한 강에서 물가로 떠밀려 나올 리는 없으니 직접 헤엄쳤다는 뜻이 되니까요. 남편분이 길을 잃은 것도 아니었겠지요. 어디 여행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잖습니까? 완벽하진 않아도 충분히 밝았을 시간이고요.


−그이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인가요?


−접근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돌아오지 않으셨다는 식으로요. 밑도 끝도 없지만요…… 부인, 제가 알기로는 남편분께서 실종되기 전날에 집안이 꽤 소란스러우셨다던데요. 혹시 크게 다투신 건 아닌지요?


순간 V는 얼굴을 향해 솟아오르는 열감을 느꼈다. 경찰관이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로 질문하는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K였다. 그 여자, 그 여자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떠든 게 분명했다.


−전혀요.


−안쪽을 둘러봐도 괜찮을까요.


−나를 의심하는 건가요?


이때 V는 스스로가 내뱉은 말에 당황했다. 강렬한 원망과 결백하다는 호소가 그 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남편분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피로함에 얼굴이 문드러진 경찰관이 조심스레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비켜섰다. 그가 등 뒤를 바라보며 손짓하자 다른 경찰 하나도 뒤따라 들어왔다. 그렇게 둘씩 나누어진 경찰들은 각각 집안과 마당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곰이 경찰관의 뒤를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그가 난처한 듯 V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인, 이 곰 좀…….


브라운, 하는 V의 부름에 돌아온 곰은 바닥에 엎드렸다. 얼마 전까지 F와 격한 장난을 주고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해 보였다. 그런 모습은 영원히 사라진 걸까? 차라리 곰이 더 빨리 늙었다면 모두에게 좋았을걸. 이제 곰에게 줄 음식은 아무리 아껴도 이틀 치가 전부였다. 그때부터는 곰을 방치할 예정이었다. 장담할 순 없었다. 내미는 음식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먹으며 손을 핥는 곰의 모습, 그리고 조금이라도 먹이자 나빠지지 않는 듯 보이는 곰의 상태는 V에게 모래성을 쌓는 사소한 보람을 남기고 있었으니까. V는 혼란스러웠다. 곰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다만 대체 누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총이 있군요.


V는 곰의 방 침대를 통통 두드렸다. 곰은 낡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곰을 뒤로하고 문을 닫은 뒤에야 경찰들에게 다가갔다. 멋대로 식탁 의자를 밟고 올라간 경찰관은 벽에 걸려 있던 엽총을 집어 이리저리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건 F가 V를 위해 장만한 엽총이었다. 시골은 산짐승도 많고 제때 도움을 받기 어려우니 직접 몸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조금 놀란 채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엽총을 바라보았다. 항상 그 자리에 걸려 있었음에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장식용이 아닌데 장식으로 쓰고 계시네요.


−쓸 일이 없으니까요. 그이가 쓰는 건 따로 있었고요.


−확실히 트렁크에 있던 총과 달리 엉망이군요.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경찰관은 엽총에 금세 흥미를 잃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V는 경찰관이 입을 열 때까지 다시 벽에 걸어진 엽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 생각에 여긴 너무 정갈하네요. 제 말은, 댁에 애완곰도 있던데, 원래 곰이 많이 안 먹는 동물인가요?


−그이가 사라진 뒤로 거의 굶고 있어요. 평소에는 저렇게 방문을 닫으면 직접 문을 열고 나오기도 하던 애예요. 지금은 너무 기력이 없어서 안 그러는 거죠.


−그럼 저 곰돌이는 평소엔 얼마나 먹었습니까? 이 안쪽이 가득 채워져 있다면 며칠을 먹이나요?

−예전에는 가득 채우면 서너 일은 먹었어요.


−그럼 서너 일마다 장을 보러 다녔다는 뜻인지요.


−일주일이나 열흘 사이에 한 번씩 봤어요. 나머지는 저장고에 두고요.


−저장고요? 그건 어디에 있지요?


−마당에요.


−같이 나가서 봐도 괜찮을까요. 마침 바깥 인원들도 부인께 여쭐 게 있답니다. 어이! 그쯤이면 됐어.


그는 아까부터 내내 서랍과 수납장에서 우편물 따위를 뒤적이던 다른 경찰에게 손짓했다. V는 그들을 따라 마당으로 나서기에 앞서, 곰이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곰은 그녀를 기다리듯 문 앞에 엎드려 있었다. 코가 닿는 바람에 문을 활짝 열 순 없었다. 곰은 몸을 일으키거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엎드린 자세 그대로 코가 문에 닿지 않도록 고개만 돌렸다. V는 곰을 두고 밖으로 나섰다. 그때 들이친 맑은 바람에, 그녀는 잠깐 넋을 놓았다.

먼저 나섰던 경찰 둘은 바닥에 난 저장고 문을 내려다보며 그녀를 기다렸다. 자물쇠로 잠겨 있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그 아래로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저장고 문을 연 그녀가 먼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따라 내려온 경찰관은 저장고에서 볼 수 있는 것이란 채소 따위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메마른 이파리와 뿌리, 아무렇게나 버려진 포장지와 바코드 스티커 따위가 전부임을 확인했다. 그럴듯한 방식의 비밀 장치라도 찾는지 곳곳의 벽을 더듬거렸던 경찰관은 텅 빈 저장고에서 다시 올라야 하는 사다리를 올려다보았다. 배로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올라온 그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젖혔다. V는 자물쇠를 다시 잠갔다.


이제 세 사람은 자연스레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쪽에는 처음부터 마당을 뒤지던 두 명의 경찰이 눈을 파헤쳐서 드러나게 한 것들이 있었다. 햇볕이 좋은 날에 나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두었던 테이블과 의자, F가 따로 쌓아둔 나무판자와 고물들, 그 옆에 놓인 자전거, 마지막으로 V의 소형차까지. 그게 전부라서 V는 안도했다. 그녀 혼자 쓸고 밀었던 마당 곳곳으로 적잖은 양의 눈이 흩뿌려져 있었다. 둘이서 화풀이라도 벌인 모양이었다. 하나는 눈밭에 앉아서, 다른 하나는 V의 소형차에 기대고 서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뿐 아니라 비교적 편안했을 두 명의 동료에게까지 불만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던 경찰관이 입을 열었다.


−애써 청소한 마당을 저희가 엉망으로 만들었군요.


마당뿐이라면 괜찮았겠지만, 내면까지 엉망이 된 V는 어지럼을 느꼈다. 조금이나마 일찍 그들을 집에서 몰아내기 위해 그녀는 애써 순순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순순함은 폭이 좁은 외길과 다름없었다. V는 지쳐갔다. 불행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가 문제는 아니었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도망치고 싶었다. 저장고를 안내하기 위해 문을 열며 마주한 풍경은 폐허도 마지막 능선도 아름다운 설원도 아니었다. 다만 끝없는 바깥이었다. 그런 광활함이 아직 자신에게도 남아 있으리라는 기대가 급속도로 부풀었다. 엉망이 된 마당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떤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경찰이 앉은 눈밭. 거기는 F를 묻어둔 곳이었다. 경찰이 시신을 깔고 앉은 것인지 아니면 어깨나 한쪽 팔 같은 끝에 걸터앉았는지 혹은 전혀 무관한 위치에 앉은 것인지까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아무렇게 흩뿌려진 눈 탓이었다. V는 올가미에 걸린 듯 온 신경을 거기에 쏟아부었다. 펼쳐진 풍경이 구겨지며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부인, 어째서 차에 쌓인 눈은 치우지 않았나요?


−차를 열어 드릴게요.


−물론 봐야 합니다만, 제가 여쭌 건 그게 아닙니다. 한시바삐 장을 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댁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건가요?


네 명의 경찰이 모두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망할 겨울에…… 이 작은 차로…… 브라운을 데리고 어떻게…… 혹은 나 혼자…… 무슨 마음으로…… 나서란 말인가요……?






그들은 문 열린 소형차 앞뒤로 상체를 집어넣어 좌석과 트렁크까지 뒤적거렸지만 별다른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V로 하여금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도록 요구했다. 차 아래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녀의 소형차는 F의 죽음 이후로 움직인 적 없었다. 눈의 여백은 좁은 타원형으로 드러났다.

경찰들은 기계적으로 협조에 감사를 표한 뒤 떠났다. 그녀는 F를 묻었던 눈더미로 향했다. 엉덩이 모양으로 움푹 파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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