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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Nov 30. 2022

인후통과 가루약

      

최대한 말아 뒤로 보낸 혓바닥으로 목 점막과 편도선을 훑는다. 보이진 않아도 체온으로 느껴지는 붉은 살갗은 건조하고 끈적거린다. 부어오른 양측의 편도선은 내부에서 열기를 내뿜으며 완전히 식지 않은 현무암 혹은 촉수가 다 뽑혀 뜨거운 상처만 남은 말미잘을 연상케 한다. 목 안쪽이 모종의 이유로 메말라버린 불행한 바다와 같다는 망상이 멈추질 않는다. 그건 썰물 상태의 갯벌과는 다른 감각이다. 갯벌이 가진 습기와 밀물을 향한 기대가 목에 전무한 탓이다. 혀 아래의 얇고 부드러운 근육막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침이 배어 나온다. 그걸 혀로 길어 건조한 부위에 흘리면 망상은 더욱 강하게 자리한다. 마른 모래에 물을 흘려볼 때와 같이, 물은 흔적만을 남기며 깊은 지면 어딘가로 흡수되어 결국 표면은 거의 건조한 상태 그대로 지속된다. 표면이 달궈진 모래 해변이나 사막이 목 안쪽에서 영토를 넓혀가는 꼴이다. 젖을 줄 모르는 점막을 혀끝으로 두드려보면 원형의 알갱이가 크고 작은 두드러기마냥 드문드문 솟아난 게 느껴지고, 그곳과 주변 표면에 종이 구긴 자국과 같은 미세한 상처들이 곰팡이처럼 번져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 수 있다. 다시금 혀로 침을 길어 적셔보지만 젖지 않거나 닿지 않는다.


나는 물을 반 모금 머금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혀 천천히 물을 흘린다. 입의 내부는 흘려야 하는 물을 만나자 작은 계곡이 되어 한차례 물길을 만들어낸다. 몸을 좌우로 기울여서 나름의 방향 정도는 조절할 수 있다. 한 차례의 흐름이 부드럽게 목구멍 안쪽으로 살갗을 쓸고 지나간다. 그러나 정확히 가장 건조한 부위만큼은 여전히 젖지 않는다. 주된 물길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는 것인지 제대로 방향을 조절하지 못한 탓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물을 삼키며 초소형의 카메라를 함께 목 안쪽으로 넘겨 그 상황을 관찰하고 싶지만, 그야말로 민간인인 나에게 그런 기술적 체험이 가능할 리가. 결국 수동식 푸세식 망상을 곁들인 추측만이 가능한데, 추측은 끝없는 온난화로 사막화되는 지구의 이미지를 향해 돌진하고 만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심은 수만 그루의 나무가 쪼그라들고 모래 파도가 사람들과 동물 건물 그리고 물까지 집어삼켜 버리며…… 이 쓸데없는 상상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이미지 자체에 충격을 줄 필요가 있었다.


몸에서는 열이 펄펄 끓어 따뜻한 물을 먹기가 부담스럽고 마스크를 써서 더운 숨결을 견디기도 어려웠다. 그것들이 일종의 증기가 되어 목 안쪽의 습도를 느리지만 확실하게 높일 것임은 분명했지만 통증과 답답함, 그리고 어떤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효능이 필요했다.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굽이굽이 흐르던 계곡물로 젖지 않는다면 그 굴곡까지 집어삼킬 홍수를 일으키면 될 일이었다. 나는 한두 모금 삼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멈춤 없이 물을 들이켰다. 강한 물살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발생한, 폭포 안쪽의 비밀장소와 같은 공간이 존재할 터였다. 그런 공간마저 적실 수 있을 정도의 양과 기세가 필요했다. 물은 그야말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서 내 식도를 지나 위로 경쾌하게 쏟아져 쌓였다. 그 경로가 느껴질 정도로 물을 마셨다. 심지어 나는 물을 삼키지 않고 목구멍에 한참 머금어 두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골짜기 사이사이를 전부 적실 생각이었다. 잠깐은 젖었을까? 확인도 하기 전에, 이미 건조함이 느껴지는 환부에는 물이 급속도로 배출되어 순식간에 메말라가고 있었다. 구긴 종이의 비유는 잘못되었다. 이것은 갈라진 땅이었다. 몸의 열기가, 특히 그 점막의 열기가 물을 곧바로 증발시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래서 지구온난화는 막을 수 없는 것인가,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농담 같지만 전혀 웃기진 않았고 오히려 절망스러웠다.


지구온난화처럼? 그래, 지구온난화처럼 열이 너무 심해서 건조하다가 이제는 물이 넘쳐흐르게 된 셈이었다. 나는 심각한 더부룩함을 느꼈다. 뱃속으로 끝없이 들어간 물은 높아진 수위를 상징하듯 크게 출렁거렸다. 목은 여전히 건조한데 배까지 물로 무거워지니 여간 더부룩하고 불쾌한 게 아니었다. 몸의 기울기에 바로 반응하는 물은 나를 눕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미묘한 구역질이 동반되기까지 하여, 한번 터지면 네댓 번은 반복되는 기침 사이에 구토의 위기가 자주 찾아왔다. 물을 마시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전부 없던 것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이미 마신 물을 토해낼 수는 없었다. 능력 이상으로 폭식을 저지른 어느날, 공장 폐수 쏟아내듯 십여 분 전까지 씹어 삼켰던 음식물을 게워낼 때의 고통은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였다. 이후로 내가 폭식을 하지 않은 이유는 자연스레 이어지는 구토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어쩔 수 없이 구토하는 상상을 해보았던 나는 부르르 떨었다. 너무 급격히 물을 많이 마신 탓에 숨도 쉬지 못하며 뿜어내듯 토해낼 게 분명했다. 들이킨 대로 되돌아오는 홍수에 섞인 위액이 건조함에 갈라진 점막은 물론이고 앙상하게나마 정상성을 붙들고 있는 점막까지 손상시킬 것도 뻔했다. 기다란 호스를 삽입하거나 배를 갈라 뱃속의 물을 없앨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민간인인 내게 그런 기술적 체험은 불가능했다. 심호흡을 했다. 구토감이라는 게 물질이 아니라 ‘기’와 같은 상태로라도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을 단전까지 깊이 들이마셨다 내쉬는 숨으로 배출해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반복하고 있자니 그런 호흡에서 뱃속의 증기가 목을 적셔주는 효능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빠다리를 하여 거대한 부모의 자세로 심호흡을 반복했다. 그러나 목은 더더욱 쩍쩍 갈라졌다. 아무래도 내쉴 때의 증기보다 들이마실 때의 건조함이 더 강한 모양이었다.


약을 먹을 수밖에 없겠군…… 나는 결국 처방받아온 약봉투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진작 먹으면 됐을 약을 먹지 않은 이유는 있다. 이 약을 먹으면 끔찍할 정도로 졸렸다. 시간이 얼마나 무용하게 흐르는지 가만히 지켜볼 여유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스스로 누워서 눈을 질끈 감도록 재촉시켰다. 그게 이 약의 여러 작용 중 하나였다. 수시로 잠들고 깨어나길 반복하면서 무심결에 구개호흡을 반복하고 기꺼이 착용했던 마스크도 뒤척이다 벗어버리면서 증상은 악화되었다. 기계처럼 약을 먹고 자고, 약을 먹기 위해 식후 상태를 유지하려 끼니를 때운 뒤 약을 먹고 자는 그런 반복뿐이었다. 격리된 상태로 이런 하루를 반복하니 수치스러웠다. 영원히 시간을 빼앗길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럼에도 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정답에 가까웠다. 물을 어떤 식으로 삼키거나 뱉든 그것은 스스로 일으킨 착란 혹은 잠기운 속에서 벌인 사사로운 민간요법에 불과했으니까. 누구의 입증과 권유가 없었기에 어리석은 짓거리인 셈이었다. 나는 출렁거리는 배를 진정시키며 겨우 정신을 다잡았다. 돌이켜보면 몸은 나아지는 중이었다. 온몸을 적셨던 식은땀도 없었고 이불을 덮었는데도 느꼈던 추위, 그러다 뒤늦게 달려드는 더위의 끔찍한 변덕이 사라졌던 것이다. 약기운 탓에 자꾸 정신이 날아가는군…… 하지만 날 지켜주기로 보장한 건 약기운뿐이기도 해…… 그렇게 약봉지를 뜯어 입에 약을 넣은 뒤 물을 머금었다.


삼킬 수 없었다. 앞서 들이켰던 물이 배에서 불만스러운 듯 출렁거렸다. 구토감 이전에, 어떤 행동을 가능케 하는 절차의 구간 하나가 정지된 기분이었다. 삼킨다고 생각했고 삼키려 했다. 하지만 삼키려는 의도는 행위를 발생시키지 못한 채 끝없이 몸을 길게 늘였다. 마치 코앞에 있는 스위치를 향해 손가락을 뻗듯 말이다. 스위치는 의도의 몸이 고무줄만큼 늘어지는 만큼 미묘하게 멀어져서, 그 끝에 닿기 직전까지의 거리를 지독히도 유지했다. 잠시 기다렸다 다시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몸을 길게 늘인 의도가 스위치 앞에서 달달달 떨다가 힘을 잃고 뒤로 튕겨나갔다. 알약에서 쓴맛이 강하게 퍼졌다. 빨리 녹는 성분인지 표면이 분말의 형태로 부드럽게 탈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혀는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분말이 거기로 달라붙었다. 침이 분비되면서 입에 물고 있는 액체가 더욱 불어났다. 뱉을 수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뱉는다는 행위는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땅한 이유는 없이, 다만 삼키고 싶다는 강렬한 목적성에 사로잡힌 채였다. 구토감에 삼키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 정도 더 삼킨다고 구토를 할 정도도 아니었다. 구토감은 오히려 뱉어내는 과정에서 느껴질 듯했다. 차라리 삼키는 순간 개운한 성취를 느낄 수 있을 거였다. 그러나 목을 누군가가 꽉 쥔 느낌이 성취의 길목을 막았다. 몰두할수록 불가능한 시간과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매우 가냘파서 금세 중단되기 직전에 이르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목구멍을 조였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나의 의지로 물과 약을 삼키지 않은 셈이었다. 그런 자신을 향한 조롱이 의지를 꺾을 무렵, 다시금 정신을 차린 누군가가 내 목을 거침없이 틀어막았다. 그 반복은 호흡이나 보행, 눈의 깜빡임처럼 의지의 주체들을 쉬지 않고 뒤섞여 움직이게 했다. 그걸 바라보는 것은, 가능하며 불가능하면서도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모순과 긍정의 도미노를 넘어뜨려 보는 충동 속에서 영원히 망설이는 일과 같았다. 망설임은 자체로 이미 놀라웠으며, 실패와 성공 모두에 강렬한 환호를 보낼 대비는 진즉에 충분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절반 가까이 녹던 약의 분말이 입안 곳곳으로도 모자라, 물이 충분히 닿지도 않은 안쪽 편도선과 점막에까지 들러붙은 거였다. 쓴맛이 입안 가득 퍼지다 못해 안쪽 깊숙한 곳까지 다다르자 눈물이 줄줄 흐를 지경이었다. 그쯤 되면 무심결에 기침이 튀어나온다거나 하여 보기 좋게 물을 뱉어낼 수도 있었다. 기어이 참아냈다. 아무리 물을 들이부어도 나아지지 않던 환부의 건조함이 드디어 호전되었으니까. 어떤 작용이 있었는지 느낀 대로 설명하자면, 점막에 들러붙은 쓴맛의 분말이 주변부의 침 분비를 유도한 듯했다. 샘 자체는 말랐으나 그 주변에서 흘러나온 물이 샘을 조금씩 채운 셈이었다. 직접적으로 바르는 연고 따위와 별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물을 삼키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 알 수 없었다. 입에 머금은 물은 간혹 단숨에 기화되었다. 그런 착각에, 무심결에 잘 달라붙어야 할 입술이 살짝 떨어지기도 했다. 정신을 붙들며 마른 입술을 혀로 훑고 다시 부착시켰다. 단순히 지쳐서 벌어진 착각이 아니었다. 자잘한 조각 정도만 남긴 채 전부 녹은 약이 점막을 통해 어찌저찌 흡수된 것이 이유 같았다. 약기운이 도는 거였다. 그 졸음이 의식과 근육의 결합 사이로 침투하기 시작한 셈이었다. 슬슬 삼켜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몸의 상태를 살폈다. 이쯤의 시간이 지났다면 들이켰던 물의 일정량은 위를 지나 장으로 흘러갔을 게 분명했다. 정말로 슬슬 오줌이 마렵기도 했다. 한 모금 정도 삼킨다고 하여 무리가 가는 일은 없을 듯했다. 삼켜도 좋겠지…… 하며 목 근육을 들어올리는 순간,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만두었다. 그새 또 약기운이 의식의 결합 사이로 침투한 거였다! 물을 삼켜서 안 되는 이유는 위장의 상태와 무관해졌음을 까먹을 뻔했다. 목 근육을 들어올리며 아직까지 건조함을 유지하는 점막이 저들끼리 들러붙어 쓸려진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편도선과 안쪽 점막은 여전히 건조하고 쓰라렸다. 하지만 그 범위는 분명히 줄어들었다. 쓴 약 성분이 닿으며 분비되었던 침의 양이 좀 줄어든 느낌이 있기는 했다. 처음의 기세가 유지되었다면 진즉에 물기를 머금어야 했으니까. 혀로 입안을 휘저었다. 분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던 작은 조각들이 그때 완전히 녹으면서 최후의 분말을 뿜어냈지만 목에 충분히 닿을 정도는 아니었다. 멈추지 않고 퍼져가는 약기운의 충동 속에서, 나는 약간 엉성한 절충안을 생각해냈다. 일단 눕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 너무나도 눕고 싶었으니! 심지어 눕는 자세는 분말을 모두 녹여버린 물을 환부 근처에 머물게 하여 침 분비를 촉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다만 누워버리는 순간부터 몸의 긴장이 풀리며 언제든 입술이 다시 벌어질 위험도 존재했다. 그 사단을 막기 위해 눕기 전에 준비한 것은 테이프였다. 의지와 무의식 등이 입술의 부착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힘으로 유지하면 되었다. 다만 입술에 바로 테이프를 붙인다면 나중에 껍질이 잔뜩 뜯어질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입술을 안쪽으로 오므린 뒤에 테이프를 붙였다. X자 모양으로 붙이고, 그 중앙에 一자 모양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단단히 고정된 입은 이제 의식적으로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젠 못 참아, 정말로 눕겠어…… 하는 마음으로 비뚤어지지 않게 잘 놓은 베개에 머리를 얹으며 누웠다. 자리가 몸의 굴곡을 따라 무너지는 듯했는데, 오직 머리만이 무너지지 않고 나를 지탱했다. 물론 무너진 공간 아래에서 중력 따위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서, 두둥실 떠 있는 느낌이었다. 머리에서 파동이 발생하여 허리춤까지 퍼져나갔다. 그것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끝없이 발생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내 머리와 파동을 내려다볼 수 있다면 필요 이상으로 세밀한 점수 체계를 지닌 과녁이거나 눈으로 초점을 맞추기 어려운 무수한 타원 무늬와 다름없을 거였다. 허리춤까지 나아간 파동은 골반 즈음에서 반사되었다. 거기서 역방향으로 다시 전진한 파동은 배꼽 즈음에서 앞선 파동과 충돌하며 부서진 곡선의 흔적 혹은 선이라고 할 수 없는 작은 흐름만을 남기며 사라졌다. 와중에도 어떤 파동은 골반까지 나아갔고 다시 반사되어서 충돌했다. 다소 무의미한 자연법칙 같은 그 반복을 좇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사이에 미아마냥 끼어들어 정신없이 반복에 휩싸이다 잠들었다.


청각까지 완전히 잠들기 직전, 누구의 것인지 모를 힘이 입안의 물을 삼켜 버렸다. 근육들이 제대로 호응하지 못해서 식도가 깔끔히 열리지 않았는지, 삼켜졌던 물은 거센 기침과 함께 다시 입안으로 돌아왔다. 단단히 붙인 테이프 덕에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턱관절이 어느 정도까지만 움직이다 강한 저항과 맞닥뜨려서는 힘과 힘 사이에 팽팽한 긴장 사이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삼켜졌다 도로 내뱉어지는 물이 거센 파도의 움직임으로 윗니와 아랫니, 그리고 오므린 채 부착되어 볼록 튀어나온 입술을 향해 냅다 몸을 부딪치는 상황이었다. 기침과 거센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기침으로 열린 기도 사이로 파도의 조각이 넘어갔다가 기침과 함께 튀어나왔다. 콧구멍만으로 그 모든 난리통 사이로 호흡을 이어가는 게 힘겨워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렀다. 어쩌면 눈물이나 콧물이 아닐지도 몰랐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기침하다가 뒤로 넘어가며 정신을 잃었다. 내게서 흐를 수 있는 모든 물이 서서히 나를 잠식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얼굴은 흥건했던 액체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마르기야 전부 마른 채였고, 다만 무언가 얇은 막이나 가루 따위가 곳곳에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내 입을 틀어막고 있던 테이프를 천천히 뜯어냈다. 몇 시간 만에 입으로 숨을 들이쉬었다. 그때 깨달았다. 목 안쪽의 점막이 충분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는 것을! 공기를 젖은 표면으로 부드럽게 기도로 튕겨내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감격에 젖어 물과 약의 작용 등에 대해 생각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나는 지저분해진 테이프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아차, 싶었다. 잠에서 깨어나며 가능해진 보다 이성적인 추론 때문이었다. 목 상태가 완화된 것은 어쩌면 테이프가 완전히 구개호흡을 차단한 덕이었다. 그런 일등공신을 구겨서 버리다니…… 뒤늦게 테이프를 다시 꺼내들었지만, 이미 공처럼 말린 채 들러붙은 테이프는 내가 만지작거릴 때마다 못다 한 유언 같은 치직, 치직, 소리만 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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