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쌩쌩 부는 어느 날, 북한과 통일 연구를 하고 계신 연구원분들을 만나 워크숍을 다녀왔다.
여러 일정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며, 북한 문제와 통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통일을 위해 일하고 있는 분들의 열정과 그에 따른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인상적이었다.
특히 통일 관련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의 현실적인 고충에 대해 듣게 되어 조금 더 그분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통일활동을 하기에 힘든 상황이지만 오랫동안 북한사람들을 위해, 통일을 위해 일하고 계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느낌을 받았고 각자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도 많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통일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수줍은 꿈에 다른 일을 해보고 다시 도전해도 늦지 않다고 진심으로 조언하시며, 그럼에도 본인들은 꿋꿋이 자신의 일을 해내는 모습들이 보였다. 사회적으로 인기가 없고 관심을 받지 못해도, 지지와 지원이 없이도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의 탈북민으로써, 그분들의 헌신에 감사했다.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탈북민에 대한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를 보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우연히 나온 영화이야기에 바로 보러 가자고 조르는 친구 덕분에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 팝콘은 제외하고 음료만 주문해서 상영관에 들어갔다.
그런데 예약한 좌석을 찾아가던 중 위쪽에서 누군가가 "교수님, 저기 리타 같은데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리타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내 이름이 들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광고가 틀어져 있는 상영관은 어두워서 누가 누군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누구지?'라는 의문과 함께 소리 나는 곳을 한참 응시하니 시야가 밝아졌고 나를 언급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프로젝트로 만나 알게 된 선배님이었다.
선배님을 필두로 옆자석에 쭉 여러 명이 앉아있었고 그들을 지나 선배님 반대편 끝 좌석에 낯익은 교수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거의 비어있다시피 영화관 중간쯤에 한 줄로 나란히 앉아계신 분들이 내가 아는 분들이었고 대학교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트라우마를 위해 학회활동하고 계신 분들이었다. 영화가 막 시작하려고 하고 있어 나는 그분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뒷 좌석에서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난 다음 회포를 풀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서로 물었다. 학회 활동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오신 분들은 함께 일과 중 하나로 '비욘드 유토피아'를 보게 되었고 그러다 우연히 나와 마주친 것이었다. 영화관에서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없기에 신기하고 놀라웠다.
영화 하나 보는 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거의 텅 비어있는 영화관에서 일부러 단체로 영화를 보러 오신 분들의 발걸음이 감사했다. 늦은 밤 그렇게 우연히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만난 지인들이 반가웠고 탈북민에게 관심 가져주는 시선에 감사했다. 서로 안부를 전하고 만난 기념으로 사진도 찍은 후 그분들과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가 편의점에 들러 초콜릿 하나를 사 나에게 주었다. 초콜릿을 주면서 친구는 옛날에 먹어보니 맛있었다는 말 외에는 별말을 안 했지만 나에 대한 친구의 위로였던 것 같다.
그 외에도 통일 활동에는 관심 없다가 얼마 전부터 SNS로 북한의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시작한 동생, 박사과정에 탈북민 작가들에 대해 연구하고 계신 분, 몇 년 전에 만난 인연으로 꾸준히 안부를 물어주시는 목사님 부부, NGO 일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일을 시작한 동기들, 제자들의 성장과정이 궁금한 옛 선생님들, 설명절 떡국을 챙겨주시는 장학사님들... 곳곳에서 감사함을 느끼는 요즘이었다.
그런데 '과연 내가 대신 감사해도 될까?'라는 의문이 든다. 난 아무것도 아닌데... 북한에 고향을 두고 남한에 살고 있는 한 명의 사람일 뿐인데 내가 감사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떤 심리로 감사를 전하는 걸까? 왜 감사할까? 감사를 대신 전해도 될까? 누구를 대신한 감사일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