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나는 3살 차이가 나는데 어릴 적에는 다른 형제자매처럼 평범하게 적당한 애정을 나누며 지냈다.
그러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탈북하게 되면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나와 동생 둘 뿐이었다. 그때 동생과 단둘이 북한에 남겨지면서 나에게 들었던 생각은 '이젠 내가 동생을 지켜야 해.'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을 내가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었다. 당시에 나에게 "가족"은 한집에서 사는 혈연의 관계에 제한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내 가족의 범위에 드는 존재는 동생이 유일했고, 삶을 공유하고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동생뿐이었다. 결국 동생이라는 가족의 힘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오늘의 내가 존재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가족 같은 친구" 혹은 "친구 같은 가족"이라는 말이 좋다. 누군가에게 친한 친구를 소개할 때 "그 친구랑 저랑은 이제 거의 가족 같아요."라고 말하게 되는데 그게 너무도 당연해서 입 밖으로 말을 뱉으면서도 마치 정말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비록 알고 지낸 지 오래되지는 않았더라도 그렇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의견대립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서로 이해가 가능하며, 오랜만에 만나도 낯설지 않고, 자신을 다 내보여도 괜찮은 그런 친구들이 가족처럼 여겨진다. 또는, 가족이 친구 같은 예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다시 만난 엄마와 친구처럼 지낸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가끔은 어른 같기도, 아이 같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정말 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존중과 믿음 안에서 응원을 주고받으며 생각이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즐겁다. 그렇다고 엄마가 완전히 친구가 될 수는 없겠지만 가끔의 순간들 속에 함께하는 엄마의 존재가 친구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친구가 가족이 되고, 가족이 친구와 같은 사이가 되는 것은 왜 그럴까? 개인적으로 한 명의 탈북민의 관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한마디로 정리했더니 탈북민에게 가족은 "한쪽이 열려있는 둥근 고리" 같다. 둥그런 고리에서 열려 있는 부분만큼 다른 고리와 연결 가능성이 있다면 언제든 연결할 수 있으며, 연결된 부분이 지나치게 헐렁하면 분리되기도 하는 그런 존재가 가족인 것 같다. 탈북민에게는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있는데 그들은 북한에도 있고 남한에도 있으며, 심지어 중국처럼 제3국에도 있다. 각자에게 어떤 사연과 가치관이 있는지에 따라 가족으로 여기는 존재가 다양하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은 탈북민에게 죄책감이고 그리움이며, 고향이다. 북에 남겨진 자녀와 배우자, 부모님 등은 그들을 '두고 왔다'라는 사실로 인해 탈북민에게 미안함과 후회, 죄스러움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함께 오지 못해서, 말하고 오지 못해서, 데려오지 못해서, 도와주지 못해서, 소식을 전할 수 없어서... 소통과 교류를 할 수 없으니 그리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움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보고 싶고, 말하고 싶고, 궁금하고, 밥 먹을 때 생각나는 그런 느낌은 비슷할 것이다. 나는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순간도 있다. 그 사람은 잘살고 있을까? 아프지는 않을까?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새삼스럽게 그립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 1이 그립기도 한데 세상의 전부였던 가족은 어떨까. 원래부터 연결되어 있던 둥근 고리들이 여러 이유로 끊어지고 분리되어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멀리 떨어져 있다. 서로에게 딱 맞는 연결 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양한 상황으로 인해 연결될 수 없어 그리움만 안고 있다. 탈북민은 통일이 된 후에 북한에 가거나 탈남을 하지 않는 이상 다시 북한에 갈 수 없기에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을 고향에서의 기억으로, 고향으로 추억한다. 북한의 가족은 탈북민에게 평생 안고 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중국이나 동남아 등 "제3국"에 있는 가족도 북한의 가족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의미가 있다. 북한 가족과의 차이점은 제3국에 있는 가족은 만날 수도 있고, 연락도 가능하며, 의지가 있고 여건이 된다면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에는 주로 자녀가 포함되는데 탈북한 여성들이 제3국에서 남성들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그곳에서 살기가 어려워 홀로 한국에 온 상황에 해당한다. 여전히 많은 탈북 여성이 제3국에 어쩔 수 없이 자녀를 남겨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한에서의 가족은 위 가족의 형태보다 조금 더 확장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나 중국, 동남아 등에 있는 가족은 기본적으로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나는 가족은 혈연, 지연, 학연 등 다양하다. 한국에서의 가족은 정서적 및 문화적 유대를 지니고 자아 정체성과 소속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탈북민 A에는 함께 탈북한 친구가 가족이고, B에는 학교 선생님이, C에는 교회 목사님이, D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가족이 된다. 물론 한국에서 만난 연인이나 남편, 아내, 자녀도 가족이다. 이러한 한국의 가족은 피를 나눈 가족 구성원과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그만큼 중요한 다른 의미의 가족이다. 이들은 탈북민에게 보호자이기도 하고, 고마운 사람이기도,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듯 탈북민에게 한국에서 생긴 가족은 생물학적인 것을 넘어 생물심리사회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탈북을 기점으로 수정되거나 새롭게 형성된 관계들, 그리고 사람들
그들이 탈북민에게 가족이 되어준다. 홀로 존재하던 둥근 고리가 자그맣게 열려 있는 통로를 통해 다른 고리들을 만나 결합되고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