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슬영 Nov 05. 2022

너와 나의 거리 빵 미터 - 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온 세상에 빗살무늬가 그어진 것 같았다. 세찬 비바람 사이로 선착장 앞에 주저앉은 현구의 뒷모습이 보였다. 파도와 함께 통통배들이 뒤집힐 듯 출렁거렸다. 아저씨들은 배와 배를 연결해 단단히 묶고 있었다. 그런데 한 자리가 비었다. 선착장에 늘 매여 있는 배는 총 열세 척. 하나가 모자랐다. 주저앉은 현구 옆으로 현구 엄마 뒷모습이 보였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뭐라고 소리를 질러 댔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번뜩 허리춤에 꽂아 둔 토우가 생각났다. 앞뒤 가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얼른 현구에게 달려가 토우를 꺼내 들었다.

  “현구야!”

  현구는 그저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얼른 현구 손을 잡아끌어 조금 뒤쪽으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 토우를 함께 잡았다. 

  찌리릭! 

  온몸으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쿵, 구웅 궁, 쿵!

  하늘이 울렸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고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현구와 나는 마치 인형이라도 된 듯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정말로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현구 뒤로 사방이 휙휙 돌아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아주 빠른 회오리가 우리 주위를 돌고 있는 것 같았다. 현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온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조금 뒤 우리가 맞잡은 토우 머리 쪽에서 하얀 연기가 덩어리처럼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그 덩어리는 점점 많아지고 커지더니 곧 하나로 합쳐지며 토우처럼 가슴이 둥실해지고 엉덩이가 불룩해졌다. 눈은 지그시 감고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웃던 그 입이 갑자기 벌어졌다. 


 “무엇을 원하니이이이?”


  커다란 토우가 눈을 떴다. 그 눈에서 어찌나 밝은 빛이 쏟아지던지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식은땀이 났다.


 “무엇을 원하니이이?”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꼭 엄마 같기도 했고 누나 같기도 했다. 


 “원하는 것을 말하렴. 너희 둘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그 소원 이루어 주지. 무엇을 원하니?”


  아주 짧은 순간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를 찾아 주세요, 아빠를 살려 주세요, 병원을 지어 주세요! 아, 아니다! 그럼 안 되는 거다. 지금 그런 소원을 빌 때가 아니다.

  “현구 아부지! 현구 아부지를 찾아 주세요!”


 “흐으으음, 조오오아아아!”


  갑자기 사방에서 불어오던 바람 소리가 멈추고 온몸이 뜨끈해졌다. 꼬리뼈에서 정수리까지 번개처럼 강력한 기운이 휘이익 뻗어 올라가는 느낌이 들더니 두 눈이 확! 떠졌다. 내 앞에 눈을 동그랗게 뜬 현구 얼굴이 보였다. 갑자기 바람 소리, 빗소리가 온몸을 휘어 감았다. 그때였다.

  “저, 저게 뭐꼬?”

  먼바다를 바라보던 이장 아저씨가 소리쳤다. 현구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동산처럼 불룩해진 파도가 선착장을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마치 바다가 큰 파도 하나를 밀어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파도가 선착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그 기세에 눌려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슈우웅 철썩, 퍽!

  큰 파도는 선착장을 홀딱 적시고 한순간 사라졌다. 

  “아이고, 현구 아부지이이이!”

  찢어질 듯한 아줌마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만치 앞쪽, 뱃머리가 부서진 통통배 한 척이 보였다. 선착장 끝에 겨우 걸쳐져 반은 바다에 빠져 있었다. 빗속을 뚫고 사람들이 우르르 배로 몰려들었다. 조금 뒤 이장 아저씨가 현구 아빠를 둘러업고 배에서 나왔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현구 아빠는 아줌마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정말로 끝인 줄 알았다고 했다.

  “치국아…….”

  현구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가 함께 쥐고 있던 토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현구 눈가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현구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빵, 병원은 몬 만들었다. 미안.”

  으어엉, 현구가 울음보를 터트렸다. 어찌나 서럽게 꺽꺽대며 우는지 나도 조금 울컥했더랬다. 2년 전 우리 아빠 장례식장에서도 현구는 저렇게 꺽꺽 울었다. 정작 나는 너무 놀라서 울지도 못했는데 현구가 나 대신 울어 준 거다. 

  “잔칫꾸우욱…….”

  현구가 별안간 나를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니는 엄마 찾고 싶었을 긴데, 아부지 보고 싶었을 긴데. 어흐흑, 니가 내 보물이다아아, 어어흑…….”

  울먹이는 현구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한참을 돌아다니다 가슴에 꾹꾹 눌려 담겼다. 나는 다 괜찮다는 듯이 현구 등을 다독였다. 참 희한한 일이지만 그 손길에 내 마음도 같이 다독여졌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가 들렸다.

  지금 현구와 내 마음은 몇 미터일까? 



 *******

작가의 이전글 너와 나의 거리 빵 미터 -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