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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이 Nov 04. 2022

1. 2009년 나의 나이팅게일에게.

<가누기 : 365일 24시간>

 2009년 나의 나이팅게일에게. 

2009년 나의 나이팅게일에게     


 아빠가 돌아가셨던 날을 기억합니다. 날씨가 그렇게도 좋았거든요. 하지만 좋았던 날씨와는 다르게 병실 안은 그토록 삭막했어요.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 아빠 몸에 주렁주렁 붙어있던 기계 소리 때문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저는 간호사가 된 지 6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인공호흡기 소리엔 죽음이 깃든 것 같아 무섭거든요. 그날 전 아빠가 떠난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 기억나는 건 몇 개 없지만, 당신의 눈물은 기억합니다. 큰 딸이었던 저는 씩씩하고 싶었어요. 아빠가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말이죠. 그렇게 저는 “엄마 잘 지켜줄게.” 아빠가 죽기 전까지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그때였어요. 어디선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죠. 엄마 목소리와는 달라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보니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이 제 앞에서 울고 있었어요. 저는 당신의 눈물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그 눈물은 어떤 의미였나요? 얼마나 아팠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빠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위로의 인사였나요. 아니면 어린 나이에 남겨진 우리가 불쌍해서였나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델이 되고 싶었던 아이는 그날 이후로 당신과 같은 직업을 꿈꾸게 되었으니 그 눈물의 의미는 제겐 참 컸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동생에게도 영향을 끼쳤죠.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어 동생과 꿈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언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에 저는 주저 없이 간호사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소리를 질렀어요. “내가 간호사 할 건데 왜 언니가 해!” 저희는 그날 밤 서로 간호사가 되겠다며 소리 지르고 싸웠어요. 우습죠. 동생도 간호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더 양보하기 싫더라고요.     

 

 그렇게 당신과 같은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해 5년 뒤 저는 간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아! 동생도 그 뒤로 4년 뒤 간호학과에 입학했어요. 아무튼 저는 당신처럼 되겠다고 489페이지의 책들을 이고 지고, 고무로 된 마네킹 팔에 주사 연습을 수없이 하며 4년을 보냈습니다. 물론 힘들었지만 상상 속의 저는 매일 밤 엄청 멋있는 나이팅게일이었어요. 근데 세상이 제 마음 같지 않더라고요. 친구들이 모두 병원에 합격했을 때 저는 혼자 교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신은 절 버리지 않았는지, 입사 지원한 곳 중 마지막 남은 집 근처 대학병원에 면접 볼 기회를 얻었죠. 가고 싶었던 병원은 아니었지만 이러다가 병원에 환자로 밖에 못 갈 것 같아 불안해졌습니다. 그날 전 한국의 나이팅게일임을 어필하기 위해 중국어로 자기소개를 했답니다. 나이팅게일이 중국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그만큼 간절했어요. 제 간절함이 보였을까요? 저는 그 병원에 합격했어요. 그렇게 당신과 같은 어엿한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들어간 병원은 의학 드라마같이 멋있는 장면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첫날부터 제 환상은 와장창 깨졌죠.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럽고 야단법석인 분위기에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규 간호사 박지현입니다.” 인사는 해보지도 못하고 근 1년간 병풍처럼 서 있어야 했어요. 무서웠죠.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요. 그래서 저는 살아남기 위해 저만의 수첩을 만들었어요. 작은 수첩에 환자 위급상황 시 필요한 행동 수칙들을 기록하고, 선배들의 요령이 있다면 적어두고,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우를 받을 줄은 몰랐어요. 혹시 당신도 그런 적 있나요? 요구르트를 훔쳐 갔다고 오해받아 경찰에 신고당하거나, 간호사가 병균을 옮긴다고 마치 바퀴벌레 죽이듯 온몸에 페브리즈 소독을 받거나, 집에 가겠다는 환자를 못 가게 하려고 같이 엘리베이터 안에 누워있거나, 아니면 환자를 나체로 죽게 하고 싶지 않아 샤워실에서 손 떨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나요?     


 언젠가부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오면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원망인지 뭔지 모를 감정들을 이야기했죠. 이렇게 수렁에 빠질 줄 알았다면, “왜 울어서 저를 이렇게 고생시키세요?!” 저는 아마 당신의 눈물을 막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면서도 또 “박지현 간호사가 내 담당이어서 감사합니다.” “간호사님 덕분에 걸어서 나가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당신에게 고마워지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고 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건, 백 번 들은 욕도 치유될 만큼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건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을 만난 후로 제 인생에 다른 직업은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내가 걸어야 할 방향이 어딘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간호라는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걷다 언젠가 당신과 마주할 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쓸모 있는 인생을 살게 해주셔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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