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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Nov 26. 2024

내 기댈 언덕, 오리발

수영 에세이 열여섯 번째 이야기 – 때론 착각이 강력한 힘!


    오리발 처음 살 때의 설렘을 지금도 기억한다. 오리발은 초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했다는 표식이며 수영 영법을 어느 정도 할 줄 안다는 징표 같은 도구다. 가뜩이나 체력이 부족한 이에게 오리발은 엔진 같은 동력을 제공한다. 겨드랑이 대신 발에 날개를 달았다고 할까. 중급에서 접영을 한창 배울 때도 핀데이(오리발 신는 날)를 기다리곤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핀데이인 월요일과 목요일은 심리적 부담감이 적다. 비록 이를 간파한 강사님들이 강습내용을 더 딴딴하게 구성하긴 하지만. 

 


    일단 오리발을 신으면 단번에 착각의 세계로 진입해 하루아침에 출중해진 내 실력에 도취하고 만다. 세월아 네월아 저어도 닿지 않던 반대편 벽이 기대보다 빠른 순간 닿을 때의 쾌감과 접영 할 때 정말 나비처럼 물 위로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오랫동안 쌓인 좌절감이 오리발이 일으킨 물보라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핀 없이 제자리를 찾아오면 다시 반대편 벽을 가는데 함흥차사가 되고, 나비는 간데없이 살려달라고 허우적대는 듯한 모습의 접영만 덩그러니 남는다. 매주 이런 일장춘몽을 두 번씩 꾸는데, 참으로 이상한 건, 여전히 꿈속에선 행복하다는 것. 그래서 난 핀데이엔 호기롭게 평소보다 앞에 선다. 소원을 들어주는 지팡이만큼이나 강력한 오리발에 기대어. 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쉼 없이 강습내용을 완수해 내는 기적도 일어난다. 


 

    때론 엉뚱하게 이 기적을 헤아려보곤 했다. 정말 오리발이 단번에 내 수영 실력을 올려놓는 도구인가? 오리발에 기대어 내 잠재 능력이 한껏 도출되는 건가? 턱없이 부족한 체력으로 더딘 발차기를 보조해 주니, 갈고닦은 실력이 드러나는 건가? 플라세보효과처럼 별반 차이가 없는데, 그렇다고 그저 믿는 건가? 오리발을 끼는 이유가 적은 힘으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니, 이 모든 게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오리발을 신으면 이상하게도 용기가 생긴다는 것. 

 


    이렇게 일상에서, 생각만 해도 혹은 간단히 장착만 해도 행복해지는 게 얼마나 있을까? 대신 걱정해 준다는 과테말라의 걱정 인형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드림캐처처럼. 비록 착각이더라도 걱정을 덜어주고 용기를 물어다 준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지 않은가. 하물며 오리발은 그런 신념의 물건들보다 구체성과 실효성 면에서 훨씬 신빙성 있으니, 보다 의미 있는 물건이다.


 

    이번에 바뀐 강사님은 그동안의 강사님들보다 더 빡빡하다. 수업 시간도 50분을 꽉꽉 채우고, 모든 회원이 정해진 운동량을 채울 수 있게 밀어붙인다. 항상 완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간혹 그 기대치에 부응하거나 부응할 수 있는 언저리까지 갈 수 있었던 건, 강사님의 열정도 있었겠지만, 오리발의 위력이었다고 본다. 아님, 나의 오리발에 대한 의존도. 일주일 네 번 강습에 절반은 오리발을 끼니, 비록 다음날 어김없이 현실로 떨어지더라도, 핀데이만큼은 누구보다 날아다닌다는 착각 속에 부지런히 물질을 해대니 말이다. 요즘은 개인레슨에서도 오리발을 신는다. 배영 교정을 하는데, 아무래도 핀 없이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일 것이다. 그동안 개인레슨에선 혼자 뺑뺑이를 돌아야 하니, 강사님 반대편에만 가면 쓸데없이 수모와 수경을 만지작거리며 갖은 꼼수를 부려 시간을 정체시켰다. 그러나 오리발을 신으면 달라진다. 슈퍼맨 망토만큼은 아닐지라도 쓸데없이 수경 알을 닦아대고 수모를 바로잡으면서 지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가볍게 벽을 치고 의기양양하게 다시 돌아간다. 심리적 부담감도 확실히 줄어 레슨 시간도 더 즐겁다. 아무튼, 요즘은 일주일에 세 번 오리발을 신으니 도파민이 넘쳐 강처럼 흐르고 있다. 


 

    오리발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다 보니,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오리발 같은 존재였던 적이 있었나 반추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오리발 같은 사람이 있는가 곱씹어보게도 된다. 살짝만 기대도 큰 힘이 되는 사람. 만약 김춘수의 ‘꽃’처럼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에게로 가서 기꺼이 ‘오리발’이 되어주리라.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오리발이 되어준다면 살만해지지 않을까? 이 또한 착각일까? 그래도 때론 착각이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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