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월요일 / 흐린데 더운 날
예술활동, 즉 작품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평범한 일보다 이렇게 활동적이며 내가 무언가 했다는 증거를 남기는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연극이나 영상 일을 입으로 하기 싫다면서 말하면서 지금까지 계속하는 이유도 활동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다 끝나고 나면 훌훌 털고 넘어가는 게 빈번했는데 이번에 했던 촬영은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나와 처음 약속했던 것과 다르게 나의 작업은 2,3배가 되어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하는 장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거기에 우리가 받는 페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여서 우리를 무슨 하대하는 사람들로 보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이번 촬영기간은 내게 아주 스트레스를 주며 얼른 끝나서 더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일주일이 아주 길게 느껴졌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으니 어느새 촬영은 끝났고 남은 건 정산의 시간. 정산하는 기간 중에 총괄 감독님과 따로 시간을 가져 속풀이를 했다. 총괄 감독님은 내가 있던 극단의 대표님. 오랫동안 연극을 하셔서 영상 작업에 대해 잘 모르셨지만 이번 촬영을 계기로 많은 걸 배우셨다고 한다. 나 또한 이번 촬영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일을 하기 전에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
나는 중간에 합류를 하여 어떻게 흘러가는 상황인지 몰랐다. 촬영 직전이 되어서야 전반적인 흐름을 알았고 무언가 잘못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잘못은 촬영 기간 내내 나와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아주 큰 피로를 주었다. 너무 힘들고 답답하고 화나고. 그래서 총괄 감독님과 뒤풀이 때 처음으로 욕을 했다. 감독님께 하는 게 아닌 현장을 망친 사람들을 향해.
내가 이렇게 화낸 모습을 감독님도 처음 보셨는지 그저 묵묵하게 들어주셨다. 얼마나 답답하고 화냈다면 이렇게 화를 냈을까 싶은 표정으로 나를 보시면서. 진짜 답답하고 화났던 현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니 답답한 속은 풀어졌지만 감독님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여 죄송했다. 그러지 말아야 했지만 나도 모르게 나와버렸다. 거의 울분을 토하듯이. 나의 행동을 이해해 주고 지켜봐 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리며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의 시간을 갖는 하루였다.
답답하고 화가 날 때는 시원한 냉면과 함께 고기를 8월 6일 화요일 / 무더위가 들끓는 날
7월 중순에 익산에 내려가서 거의 서울 집을 3주 이상 비워뒀다. 원래는 일주일만 있다가 올라올 생각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촬영도 하게 되어 2주를 더 집을 비우게 되었고 그 덕에 내 자취방은 3주 동안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빈 집이 되었다.
아, 딱 한번 동생에게 부탁해서 집의 안부를 물어봐달라고 했는데 다행히도 아주 무사히 있단 소식을 듣고 마음 편히 익산에서 볼 일을 보고 올라올 수 있었다. 익산에서 있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집을 오니 집안에서 나는 낯선 냄새가 마치 내가 여행지를 온 듯 연상케 하는 냄새로 나를 반겼다.
이 냄새는 모텔이나 펜션에서 나는 냄새. 나는 분명 내 집을 왔는데 서울로 여행을 온 방문객처럼 내 집이 나를 반겨줘서 살짝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 3주 동안 떨어졌다고 이렇게 멀어질 사이는 아니잖아.
사람도 오랜만에 만나면 어색함을 느낀다고 하는데 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집이랑도 어색함을 느끼나 보다. 그래도 집이 장마를 무사히 넘겨주고 아주 멀쩡하게 있어줘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제 오랫동안 비워두지 않을게.
오랜만에 하는 헬스는 아주 뿌듯했다. 8월 7일 수요일 / 살짝 구름이 끼고 더운 날
일주일 동안 무더운 땡볕에서 일하다가 오랜만에 냉동창고에서 일하니 천국을 맛본 기분이었다. 그렇게 춥다가 생각했던 냉동창고 안은 무더위를 식혀줄 꿈만 같은 공간이었다.
여기가 이렇게 좋은 곳이었는지 35도가 넘는 무더운 바깥에서 촬영을 해보니 톡톡히 느꼈다. 여름에는 역시 시원한 곳이 최고다.
그래서 3주 만에 온 냉동창고는 정말 행복한 공간이었다. 여러 경험을 통해 사람은 깨닫는다고 하는데 이번 촬영을 계기로 여름철 냉동창고 근무는 얼마나 행복한지 뼈저리게 느꼈고 냉동창고가 참 감사했다.
열심히 일했으니 맛있게 먹자 8월 8일 목요일 / 흐리고 비가 온 날
쉴 틈 없이 일하다가 오랜만에 느낀 저녁의 여유는 쉼이라는 소중한 점을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몇 주 아니 몇 달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만 해서 내 몸은 극도록 피로가 쌓여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기세였다. 이러다 진짜 과로사로 쓰러질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내 몸은 매우 피곤한 상태여서 하루라도 제대로 쉬고 싶었다.
오늘도 낮에 일하다가 왔지만 저녁에 운동도 안 가고 오로지 쉬는 것에만 전념하고자 맛있는 치킨을 사서 저녁을 보내니 한동안 바빠서 잊고 있던 여유로운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래, 이게 바로 휴식이지! 오랜만에 느낀 여유로움. 이 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양념은 당치땡 8월 9일 금요일 / 살짝 흐리고 습했던 날
요 근래 머릿속에서 하고 싶다란 일들이 있으면 이루어지고는 했다. 로또 1등 당첨처럼 엄청 큰 일은 아니지만 내가 해낼 수 있는 일들이나 목표에 가까운 일들은 대체로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대체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생각을 해보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먹고 사니 어느 순간 내가 그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게 보였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냐에 따라서 좌지우지된다고 하는데 "할 수 있다"란 긍정적인 마인드는 정말 내 눈에 보일 정도로 결과를 나타내줬다.
이래서 긍정적으로 먹고 항상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예전에는 간절하게 바라면 그게 이루어지고는 했는데 지금은 간절함보다는 나를 믿고 할 수 있단 자신감이 생겨서 내 목표를 이루는 거 같다. 아주 사소한 변화가 내게 생겨서 내 삶도 조금씩 달라진 게 보이니 그동안 내가 허투루 살지 않았는 걸 느꼈다.
할 수 있단 자신감을 갖게 된 내 모습을 보니 보기 좋고 너무나 고맙다. 나도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줘서.
금요일 밤은 치킨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