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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B Jul 22. 2023

독일인의 결혼식

어쩌다 가게 된 독일의 하우스 웨딩


대부분의 여행을 계획 없이 떠나는 편이다. 이번에는 비엔나에 체류하는 일정으로 근처에 가는 김에 독일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독일인 H는 K-pop을 좋아해서 독일의 어느 대학교에서 한국어학을 전공했다. 요즘 한국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이 부쩍 많은데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를 전공한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내가 한국에서 일할 때 만나게 된 그녀는 작년에 독일로 돌아가서 일 년 정도 못 보았다.


때마침 주말에 그녀의 고향 안스바흐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친언니의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금요일까지의 비엔나 일정 후 나 또한 주말에 다른 일정은 없었기에 그녀의 고향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계획에 없던 독일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바로 내일모레.


Rokoko festival in Ansbach


몇 해 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 프라하에 갔을 때 잠시 드레스덴에 3시간 정도 투어일정으로 들렀던 적이 있다. 바로 Covid19가 발발하기 직전이었던 2019년의 겨울. 불과 한 달 후에 무시무시한 코로나가 유행할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던 시절, 잠깐 들렀던 드레스덴에서 뜨끈한 핫초코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 독일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H의 고향은 안스바흐. 뉘른베르크에서 한 시간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소도시이다. 먼저 비엔나(VIE)에서 뉘른베르크(NUE)로 가는 오스트리아 항공에 탑승했다. 한 시간여의 비행 후, 뉘른베르크에서 공항철도를 탑승해 안스바흐로 향했다.



독일인들이 영어를 잘한다고 알려져 있어서 찾아가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대중교통의 거의 모든 표지판은 독일어로 되어 있었다.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환승해야 할 때였는데 구글맵에서 알려준 Central Station이 보이지 않았다. 한 정거장 지나쳐서 내린 후 다시 돌아가 물어보니 이곳이 중앙역이라고 했다. 독일어로 중앙역을 뜻하는 Hauptbahnhof(HBF)라는 표시만 있을 뿐 어디에도 Central Station의 표시는 없었다. 독일에서 영어만으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의 아침풍경


무사히 환승한 후 예정된 열차를 타고 제시간에 안스바흐에 도착했다. 저녁 9시 즈음이었는데 안스바흐 역 주위는 무척이나 고요했다. 올드타운 안에 있는 숙소까지 걸어서 10여분 이동했는데 길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혼자 하는 여행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했지만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전에는 올드타운의 파머스마켓을 구경하고 발걸음을 옮기다 마침 오르간 연주가 있는 성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연히도 내가 방문한 주말은 마을에서 연중 가장 큰 축제인 ‘Rokoko festival’이 열리고 있었다. 작은 마을에 오전부터 활기가 넘치고 크고 작은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점심은 마켓에서 간단히 빵과 커피로 해결하고 하우스 웨딩이 열리는 H의 집으로 향했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버스가 금세 오지 않아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20분 여를 걸어간 후 도착한 어느 집 앞.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마당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H의 부모님 집 뒤뜰에서 언니와 형부의 결혼식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Rokoko festival in Ansbach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시청에서 공식적인 혼인서약식을 치르고 따로 웨딩 파티를 한다. 이들은 코로나 기간 중에 이미 시청에서 공식적으로 혼인을 마쳤으며 오늘은 가족과 지인들을 초대해 웨딩 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친척 어르신의 주도 하에 독일 전통인 매듭으로 두 사람의 손을 하나로 묶는 의식이 진행되었다. 이후 성혼선언문 낭독과 친지분의 축사 및 친구들의 축가가 이어졌다. 모든 순서는 독일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직 한 문장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Ich liebe dich”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표정과 분위기 속에서 그 마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독일의 결혼 의식


독일인의 결혼식은 허례허식 없이 심플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독립하기 전까지 살았던 부모님의 집 정원에서 가족, 친척들과 소수의 지인들만을 모시고 소박하게 결혼식이 진행됐다. 오후 1-2시경에 느긋하게 모여 간단히 티타임을 갖고 혼인 세리모니를 진행한 후에 칵테일 타임이 시작되었다. 맥주와 끝없는 수다 타임이 이어진다.

느긋하게 칵테일을 즐기다 보니 저녁식사가 도착했다. 저녁은 뷔페식으로 각자 먹을 만큼 떠다 먹으면 된다. 유럽에서는 채식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결혼식 뷔페도 비건 메뉴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비건을 지향하는 나에게도 반가운 일이었다.

 


독일의 결혼식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캐주얼하고 편안한 하루로 이어졌다. 예식 시간에 맞춰 식을 진행하고 빠르게 밥을 먹고 떠나야 하는 한국의 결혼식과는 많이 달랐다. 신랑신부도 시간에 쫓겨 급하게 옷을 갈아입거나 어딘가로 가야 하는 압박감이 없기 때문에 편하게 그날을 즐길 수가 있다. 피곤하신 조부모님은 소파에서 낮잠을 주무시기도 했다.

신혼여행은 언제 가냐고 물었더니 여름휴가에 부모님의 캠핑카를 빌려 인근 나라를 여행할 것이라고 했다. 많은 여자들의 로망인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고 한다. 코로나 기간에 같이 살게 되었는데 문제가 없이 서로 편했고 건강보험 등의 경제적 혜택이 있어서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참 합리적이다. 그렇다고 로맨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둘은 뮤직페스티벌에서 만나서 10년의 기간을 롱디(장거리연애)로 꾸준히 사랑을 쌓아온 커플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가 되어 인생을 함께 하게 됐다. 그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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