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일본인 #18
"딩동"
초인종이 울리면 모든 동작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그리고 인터폰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수수께끼의 방문자를 확인한다. 택배나 우편물 배달은 유니폼을 보고 열어주고, 그 외에는 어떤 사람인지 보기만 할 뿐 섣불리 수화기를 드는 일은 없다. 대부분은 잡상인. 괜히 '이 집은 이 시간에 사람이 있다'같은 데이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토요일 11시는 인터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도 없이 바로 수화기를 든다. '이제 전철 타', '버스야', '버스 내렸어', 그의 촘촘한 연락으로 도착시간을 얼추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액정화면 안에는 낯익은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딱히 만날 약속도,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당연하다는 듯 우리 집으로 향하는 그의 토요일 오전 일정은 아래와 같다.
- 아침 9시 좀 넘은 시각이면 전철을 타고 1시간 반을 달려와 우리가 처음 만난 아카바네에 내린다.
- 역 니시구치에서 버스를 타고 우리 동네 호수 공원 앞에 내린다.
- 더 빠른 길이 있지만 조금 빙 돌아 패밀리 마트로 간다. 이 근방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다.
- 벤치에 앉아 담배 한 대 태우고는, 우리 집까지 5분 동안 매캐한 담배 연기를 털어버리고 맨션 현관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여기까지가 하나의 주말 루틴이 되고 있었다.
이제 출발할게,라는 라인에, 몇 번인가 '약속 안 했는데?' 같은 짖꿎은 답장을 보낸 적도 있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매주 나를 만나러 왔고, 잠 부스러기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나를 데리고 나가 햇볕을 쬐이고 바람에 말렸다. 토요일 하루 정도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도 좋을 텐데, 그는 지친 기색도 없다.
그런 그가 신기했다.
남녀불문 많은 일본인들은 연락 묵혀두기를 잘한다. 도착한 메시지는 일단 읽어두기만 하고, 자신에게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있을 때에 답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그런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으면 아예 읽지 않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서는 그런 연락패턴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일본인의 기저에 깔린 개인주의에 기반한 것이라 생각한다.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나의 영역을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고, 서로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은 그 자리에서 즉답하기 곤란한 내용이라 일부러 시간을 두고 곰삭혀두고 있던 것이라 하더라도) 한참 지나고 나서 '아 나 답장 보낸 줄 알았네. 바빠서 깜빡했어' 하며 너스레를 떨 수도 있고 (사실은 일부러 그랬다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대체 얼마나 바쁘면 문자 보낼 시간도 없었냐고 굳이 섭섭해하지도 않는다. 연인 관계에 있어서도 연락의 빈도를 애정의 척도로 삼지 않는다. 가깝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성실하게 응대하는 한국인들과 갭이 두드러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관계를 대하는 기본 스탠스 역시 마찬가지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는 필요한 스킬이기도 하고, 성향에 따라 갈리는 문제라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 말하긴 어렵다. 또 모든 인간이 자로 잰 듯 국적에 따라 스테레오 타입화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있어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재는 것'은 일본인들과 어울리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제이긴 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너무 멀찍이 서지 않을 것. 직설적인 표현은 거칠게 느껴질 수 있으니 완곡하게 말할 것. 때론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이 다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건 이거대로 편리하네'라 느낄 즈음, 나 스스로에게도 인간미가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인이면서 일본인답지 않은 그가 특이하게 느껴졌다.
퍼즐게임에 정신이 팔려 1시간 넘게 답장하지 않았던 퇴근길에 그가 나의 답장을 더 기다리지 않고 '?'라고 보내왔을 때, 10시가 되어도 드라마를 보느라 대답이 영 시원찮으면 '슬슬 전화해도 되지?' 라며 통화를 졸랐을 때 그랬다. 사귀기 전이야 열과 성을 다 했더라도 사귀다 보면 애정과는 별개로 시간의 공유가 좀 버거워지는 순간도 온다. 그러나 그는 참 한결같았고, 내가 이제까지 알던 일본인들 중에 제일 드라이하지 않은, 아, 정정, 질척거리는 사람이었다.
지독한 목감기에 걸렸을 때와 코로나 백신을 맞고 아파 누워 있을 때, 코로나 일지도 모르니 이번 주는 만나지 말자고, 집에도 오지 말라 했는데도 부득불 우겨 간호하러 온 그였다.
그리고 앓아누워있는 내 이마에 때맞춰 물수건을 갈아주고 옆에서 만화책을 읽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혹시라도 옮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니 그는 '어차피 쓰지도 못하는 유급 휴가는 넘쳐나니 괜찮다'며 웃었다. 너 같은 사람 때문에 이 나라에 코로나가 줄어들지 않는 거라고 쓴소리를 뱉으면서도, 이런 때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열로 달아오른 이마 위에 누군가의 차가운 손이 와닿는 감촉도 좋았다.
타인의 영역에 불쑥 들어오는데 주저하지 않는 그.
묻지 않아도 뭘 하고 있고 앞으로 뭘 할 거라고 하나하나 알려주던 그.
퇴근 이후의 시간을 멀리서나마 전부 나에게 할애하고 있던 그.
깔끔 떨지 않고 내가 먹다 남긴 공깃밥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그.
지갑과 손수건만 들어있는 에코백조차 대신 어깨에 메어주는 그.
어쩌다 그의 동네에 놀러 갈 때면 내가 마실 주스를 미리 사서 조수석 음료수 홀더에 넣어두는 그.
'독도는?' 하고 물으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입니다'라 대답하던 그. (농담이겠지만)
나와 우리의 영역이 모호해져 가는 순간들 그 사이사이에는 다른 일본인들과는 다른 모습의 그가 있었고, 나는 그런 그가 좋고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가 객관적으로 일본인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내게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보아오던 싫은 사람들과 '같은 인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임을, 나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