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항상 슬리퍼를 신는다. 언제부터였을까. 현관에 신발을 벗고, 단차가 있는 '집'에 발을 올리자마자 '내 슬리퍼'를 찾아 발을 끼우고 '집 안'을 걷는 일이 당연해졌다. 대학 때 아파트로 이사하면서부터였을까, 일본에 오고 나서부터였을까. 애써 기억을 떠올려보면 바닥에 걸레가 붙은 슬리퍼, 발바닥 닿는 부분이 다다미로 된 백엔샵 슬리퍼, 회색 타올지 슬리퍼, 여러 슬리퍼들이 봉봉방방 떠오른다. 기억나는 애들은 그나마 인상이라도 남겼으니 다행이지. 분명 그 사이사이 수많은 슬리퍼들이 내 발과 차디찬 방바닥 사이에 끼어 왔다 갔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은 노란색 슬리퍼를 신고 있다. PVC라 하나. 고무도 아니고 플라스틱도 아닌 그런 슬리퍼. 한국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다섯 켤레에 얼마를 주고 샀는데 아주 편하다고, 집 안에서 신어도 된다고 두 켤레 나누어 주었다. 병아리 같은 노란색과 주황색 두 개를 받아왔는데 일 년이면 길게 신었다 신던 슬리퍼인데 이번 건 이 년째 신고 있다.
발등이 높고 탱글탱글해 때때로 남편이 걷다 발이 걸리고 우당탕 넘어질 것처럼 되던 슬리퍼.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다 보니 내가 발을 꿰고 있을 때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감성 터지는 오밤중이라 그런가. 정면에서 바라보는 내 슬리퍼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인다. 주인을 잃은 슬리퍼 같은 느낌. 주인은 여기 있는데, 여기 있지만, 내가 없어지고 난 다음에 슬리퍼만 남아있으면 그 슬리퍼를 보는 사람은 너무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마 내가 너보다 먼저 갈 거야'라는 말. 안타깝지만 그건 아마 사실이 될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그동안 뭔가 있었나 싶겠지만 그저 우울할 뿐 말짱합니다. 아무 일도 없어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겪는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근데 정말 아무 일도 없어요.
샛노란 슬리퍼가 말한다.
근데 정말 아무 일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