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보다 더 상담사 같았던 사장님
예전에 출판업계에서 일할 때 나는 직속상사의 괴롭힘에 못 버텨 3개월 만에 퇴사했지만 그곳의 사장님만은 정말 좋은 분이었다. 남의 말을 어찌나 경청해 주시는지, 나는 사장실에서 대화 도중에 감정이 무너져 눈물 콧물을 흘리기까지 했었다(물론 황당한 짓임은 나도 잘 아는 바이다). 그분은 상대로 하여금 마음을 완전히 열고 모든 속내를 이야기하게 만들 수 있는 분이었다. 나는 심지어 ‘저는 야망이나 열정이 없다. 사실 살고 싶은 이유도, 살아야 할 이유도 없으나 오로지 가족 때문에 산다’는 말까지 했다. 신입사원 주제에 사장 상대로 그런 무거운 소리를 하다니 황당무계하지만 이게 다 사장님이 꺼내게 만든 이야기이다. 사장님은 듣기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파고드는 질문을 해 상대가 속내를 꺼내게 만들었다. 상담사의 재능을 타고난 분이 아닌가 싶다. 나는 사장실에서 수시로 눈물을 터뜨리고 멋대로 탁자 위의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은 다음 주머니에 쑤셔 넣곤 했다. 주머니에 다 안 들어갈 만큼 눈물을 많이 닦은 적도 있었다.
회사 사장과 이토록 허물없이 대화를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한 번은 회사에서 ‘용기’에 대한 자기 계발서였나 뭐 그런 것에 대해 회의를 하던 중에, 사장님이 나를 흉내 내며 “꼭 용감해져야 할까요?”라고 하셨다. 너무나 정확히 내가 할 법한 말이라 웃음이 터져 나왔었다. 당시 옆에 앉아 있던 직속상사는 뭐가 웃기는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그 당시, 삶에 대한 울적한 마음을 좀 바꿔 보고자 심리상담을 두 번 받아 보았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심리상담이란 가격이 너무 비싸 시계 초침만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돈이 아까워 랩 하듯이 속사포처럼 이야기하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더 이상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10만 원짜리 상담보다 회사 사장님과의 상담이 더 낫다니 세상에 별일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