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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상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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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배 Jun 19. 2023

회상 4

군 입대

   1982년 4월 말 부로 기아산업에서 퇴직을 하고 군입대를 하기 위해 시골로 귀향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죽자 사자 모은 돈을 손에 꼭 쥐고, (지금 기억으로는 당시 조금씩 저금한 돈과 퇴직금을 합쳐서 160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당시 금액으로는 그래도 꽤 많은 돈이었다.) 

   입대 날짜는 5월 말쯤이라 친구들과 놀기도 하면서 쉬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아버지께서 원인을 알 수 없이 몹시 아프셨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을 몰아쉬면서 고통을 호소하셨다. 천안 병원을 이곳저곳 찾아다녔지만 증상을 알 수 없어 천안 의료원에 입원을 하셨다. 입원실을 가보니 무슨 창고 같은 곳에 침대를 놓고 옆에 연탄난로를 피워 놓았다. 그 모습에 너무 화가 나서 의사 선생님에게 항의를 했더니 여의사 선생님이 어린것이 싸가지가 없다고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완전 폭발을 하고 말았다. 그 여의사 선생님께 엄청나게 퍼부었다. 얼마 후 입대를 하기 위해 건강진단서를 받으러 갔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나를 알아보고 이야기를 해서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마음을 풀고 온 기억이 난다.


   천안 의료원에서 조금 좋아진 거 같아 집으로 모시고 왔더니 또 갑자기 증세가 생겨서 온양(아산)에 응급 병원을 모시고 가서 응급조치를 받고 누님댁으로 갔는데 도저히 견뎌내질 못하셨다. 하는 수 없이 어두워진 밤이지만 택시를 타고 대전 충남대 병원으로 모시고 같다. 충남대 병원 응급실에 들어가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 형님은 지금 형수님과 연애를 하며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형수님 댁에 계셔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전화를 받은 형님이 놀라서 형수님과 함께 병원으로 찾아오셨다. 나는 형님께 아버님을 잘 모시라고 부탁을 하고, 퇴직하면서 모아 온 돈을 병원비로 쓰고 남은 60만 원 정도를 아버지 손에 쥐어주면서 형님 결혼식에 보태 쓰시라고 모두 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입대는 쓸쓸하게 혼자 하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군에 가면 송별식을 거하게 치렀었다. 동네 친구들 모두 모여서 술 마시며 밤새 놀았다. 더 한술 뜨는 친구들은 총각딱지 떼어 준다고 천안 시내를 나가서 놀다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의 거한 송별식은 꿈도 못 꾸고 급히 가방을 챙겨서 논산으로 혼자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논산에 매형이 계셨기에 위안이 되고 편히 갈 수 있었다. 당시 매형이 훈련소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누님 집에서 하루 쉬고 입대를 할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나는 군인이 되었다. 정신없이 얼떨결에 입대를 하여 머리 빡빡 깎은 친구들 무리 속에서 조금씩 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5월 입대라 뜨거운 여름을 벗 삼아 군사훈련을 받았다. 힘들게 훈련을 받는 중에도 주말에는 매형이 찾아와서 남들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누렸다. PX에서 매형이 사주는 맛있는 군것질을 하면서 쉴 수 있었다. 일요일이라고 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휴일에도 종교활동이나 아니면 안보교육 등으로 쉬는 시간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저녁 점호 시간에 중대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중대장실에 들어가니 누님이 시원하게 만들어서 보낸 수박화채가 있었다. 밖에서는 얼차려로 우당탕 쿵쾅 기압을 받는 소리가 요란한데 나는 시원한 수박화채를 마시고 있었다. 점호가 끝나고 들어가니 전우들은 조용히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마음 한편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논산 훈련소 교육 기간이 흘러가고 어느덧 마지막 수료가 남았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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