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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다양성연구소 Nov 04. 2022

모두를 위한 일터 만들기

"나의 오줌권에 대하여" 인터뷰 05. 현정희

안녕하세요, 현정희님.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국 공공운수사회서비스 노동조합의 위원장이고, 이름은 현정희라고 합니다.


공공운수노조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시겠어요?


전국 공공운수사회서비스 노동조합을 줄여서 공공운수노조라고 하는데요. 이 이름에 저희의 조직 대상과 저희가 하는 사업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조직 대상은 전국이고요. 공공기관, 공기업을 포함하는 공공, 지하철, 철도, 화물부터 퀵 같은 플랫폼 노동자분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운수, 그리고 보육, 요양, 의료 같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말하는 사회 서비스, 이렇게 세 가지 직종의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고요. 현재 24만 5천 명 정도의 조합원이 있습니다. 공공운수노조는 민주노총에서 가장 큰 산별노조인데요. 조직이 크니까 일도 많고 해야 할 사회적 역할도 큰 상황입니다.


화장실을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화장실은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면서 잠시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을 해요. 머리가 복잡할 때는 화장실에서 잠깐 쉴 수도 있고, 자기감정을 드러내 놓고 표현하기 어렵거나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많을 때 감정을 추스를 수도 있잖아요.


화장실에 대해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나요?


저는 이제 어렸을 때는 집 밖에 화장실이 있었어요. 그래서 화장실 가는 일이 굉장히 무서운 일이었어요. 특히 밤에 화장실에 갈 때는 엄마나 동생들한테 같이 가자고 얘기했죠. 볼일을 보고 집까지 진짜 꽁지 빠지게 뛰어왔던 기억들이 있어요. 그때는 화장실이 아주 지저분했어요. 파리들이 잔뜩 있기도 하고요. 그러다 서양식 화장실이 도입되고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다세대 주택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저도 그런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요. 집 안에 화장실이 있으니까 참 좋더라고요. 화장실 청소하는 게 너무 싫었던 기억도 있네요.

그리고 예전 화장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어요. 밖에 누가 있는지를 모르고요. 잠금장치도 제대로 안 되어있기도 했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불안이었고 웬만하면 밖에 나가서 볼일을 안 보고 싶었어요.


예전 화장실은 주로 어떤 형태로 되어있었나요?


같이 들어가서 나뉘는 게 있고 아예 공용으로 쓰는 형태가 있었어요. 변기 칸 바로 옆에 서서 소변을 보는 남성 변기가 있는 경우는 아주 난감했죠.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남성들은 끊임없이 들어가서 이걸 이용하잖아요. 그럼 나는 계속 밖에서 기다려요. 이 사람이 들어가서 소변기를 쓰는지. 변기 칸에 들어가는지를 알 수가 없는 문제도 있었죠. 그리고 줄을 서는 거로 늘 시비가 생기기도 하잖아요. 예전에는 화장실 칸이 5개가 있으면 5개 그 각각 앞에서 줄을 섰었어요. 그런데 들어간 사람이 볼일 보는 시간이 길지 짧은지 아무도 알 수 없잖아요. 나는 분명히 두 번째였는데 앞에 사람이 긴 시간을 쓰면 옆에는 세 번째가 먼저 들어갈 수도 있고. 이런 것 때문에도 사람들이 은근히 신경전을 하기도 했고요. 급한 사람 안 급한 사람을 구분해서 들여보낼 수도 없잖아요. 이걸 해소하기 위해서 한 줄 서기라는 게 나온 거죠. 문 앞에 줄을 서지 말고 한 발 떨어져서 한 줄로 서서 나오는 순서대로 들어가는 방식이죠. 지금 화장실을 대체적으로 이 방식으로 이용하는데요. 누가 그렇게 쓰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만든 지혜인 것 같아요. 이게 그래도 조금 더 공평한 방식이니까.


공공운수노조에 설치된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겠어요? 디자인이나 내부 시설이 궁금해요.


저희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1층, 5층, 6층에 2개씩 총 6개가 있어요. 문 앞에는 이 화장실이 어떤 화장실인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점자와 함께 적어놨어요.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게 어떤 화장실인지 들어갈 때부터 이걸 알고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 공간에 있는 사람이나 방문하는 사람에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걸 알리는 일종의 교육과 홍보 효과가 있죠.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으니까요.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버튼을 눌러서 열고 들어가요. 버튼에도 점자가 다 있고요. 다만 나갈 때 안쪽에서 문을 닫으면서 나가면 문이 잠기는 부작용이 있어요. 그래서 바깥에 나와서 문을 잠그거나 열어둬야 해요. 이전에 남성들이 썼던 서서 볼일을 보는 소변기는 없앴어요. 소변이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남녀 혹은 다른 성 모두가 동일한 변기를 쓰도록 해놨습니다. 그리고 세면대와 별개로 아기들 기저귀 가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했어요. 세면대에는 샤워기를 달았어요. 볼일을 보는 데 서툴러서 흘리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 뒤처리를 하고 다음 사람이 쓰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거나, 간단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이 건물이 저희 소유여서 운영과 관리를 직접 해야 하거든요. 이용하는 모두가 우리 집 화장실처럼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맞아요. 디자인도 일반 화장실보다 가정집 화장실에 가까운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여기서라도 좀 더 편하게 공간으로 쓸 수 있길 바랐어요. 이용하는 사람이 어떤 성이든, 장애인이든, 어린이든, 혹은 누군가와 함께든 불안해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도록.


어떤 계기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게 됐나요?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차별이 있잖아요. 특히 성에 관련한 차별, 외모에 관련한 차별, 그다음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 또 어린이에 대한 차별 노인에 대한 차별 등 차별이 없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예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차별들이 많이 존재하는데요. 화장실과 관련된 차별은 늘 겪는 일상적인 차별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활용하는 게 화장실인데. 화장실을 갈 수밖에 없는데. 아까 얘기했던 성차별. 다양한 차별을 그때마다 느껴야 하는 게 또 화장실이잖아요. 그래서 적어도 화장실이라도 좀 차별 없이 쓸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었죠.


화장실 설치 과정도 궁금해요. 어떤 점들을 고려하면서 화장실을 만들어갔나요?


저희가 대림동에 5층짜리 건물을 임대해서 10여 년간 쓰다가 이곳 등촌동으로 이사를 오게 된 건데요. 이 건물이 원래 여러 상인이 각각 임차하던 건물이라서 저희 용도에 맞게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리모델링을 하는 준비팀이 있었어요. 그 준비팀이 몇 개월간 어떤 리모델링을 할 건지를 이 건물을 사용하는 약 130여 명의 간부한테 의견 수렴을 하고, 또 전문가들한테도 의견 수렴하고...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자료와 논의들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우리도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환영하고 찬성하는 분위기였어요.

저희가 화장실을 만들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성중립 화장실이면서 장애인도 쓸 수 있어야 했고요. 이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단순히 생리적인 문제 해결뿐 아니라 남들이 있을 때 할 수 없는 활동, 어린이나 노인 같은 분들의 경우 다른 사람의 배변을 도와야 할 수 있어야 했고, 화장을 고치는 등의 개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까지 같이 할 수 있을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공간을 많이 필요로 했죠. 그래서 성중립화장실을 만들면 화장실 숫자가 줄어들어야 했는데요. 그래서 마지막까지 이견이 있었던 게 화장실 개수였어요. 저희 건물에 노조 조합원이나 외부인이 많이 드나들기도 하고, 어떨 때는 100명씩 교육을 하기도 하거든요.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 또한 불편한 문제잖아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교육 장소가 많지 않은 1,5,6층에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었어요. 1층을 고른 건, 장애인들이 들어와서 바로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위함이기도 했고요. 나머지 층은 남녀로 구분된, 대신 숫자를 더 늘릴 수 있는 화장실로 배치를 하게 됐습니다.


설치 이후 이용자분들의 피드백에는 어떤 게 있었나요?


구체적인 사용 후기나 평가 이런 거를 설문한 거는 아니지만, 예상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몇 가지 고민이 남아있기는 해요. 이런 모두의 화장실, 가정집 형태의 화장실을 집 아닌 곳에서 사용해본 적이 없으니까 초기에는 약간 어색해하더라고요. 그리고 변기가 양변기 하나만 있으니 자기가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익숙하게 사용했던 방식하고 다른 사람들은 들어가서 좀 불편하겠죠. 서서 소변 보던 입장에서는 앉아서 소변을 봐야 하니까요. 그 불편이 얼마나 큰지를 제가 정확히 모르겠지만 모두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 차별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보다는 그렇게 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편 관리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의 불편함도 있죠. 다른 사람이 그다음 사용을 할 수 있도록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근데 그거는 그 사람의 습관이나 그 사람의 태도, 뒤처리 방식 이런 거에 따라서 생기는 문제 같아요. 특별히 모두의 화장실이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뒤처리 같은 위생 문제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세면대의 샤워기가 있잖아요. 이걸 이용하려면 수도꼭지 손잡이를 위로 올려야 해요. 샤워기를 사용한 뒤 제 자리에 갖다 놓으면 보통은 그 손잡이가 다시 내려가고요. 근데 그날은 손잡이가 안 내려갔나 봐요. 어떤 분이 그걸 확인 안 하고 그냥 나왔는데 다음 사람이 손을 씻을 때 그 샤워기에서 물이 나와서 옷을 다 버린 사례가 한 번 있었어요.


가정집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공용 화장실에서도 그런 사례를 접하니까 새롭네요.


화장실 청소를 해 주시는 분이 있기는 해요. 근데 똑같은 화장실 청소를 해도 내가 할 거 아니라고 지저분하게 쓴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청소하시는 분이 임금을 받고 일을 하지만, 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잖아요. 거기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고, 내가 해결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이나 대신 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청소 업무도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서로의 노동에 대한 존중, 예의 같은 부분이 바로 드러나는 곳이 화장실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노동 현장에서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화장실 갈 시간이 없거나 화장실 수가 인원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을 때가 많고, 여성용 화장실 자체가 없는 곳도 있고요. 최근 파업이 있었던 건강보험 고객센터의 경우, 허락을 맡고 화장실을 가야 하거나 여러 명이 동시에 화장실에 가지 못하도록 순번제를 정하기도 했고요.


저는 병원에서 일했던 간호사인데요. 일단 간호사 업무가 엄청 바쁘고 힘들어요. 그리고 환자들은 개개인이 다 절박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여러 환자들에게서 동시에 들어오는 요구를 외면할 수도, 외면해서도 안 되는 상황인데요. 근데 우리나라는 OECD 평균 인력의 반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사람을 제대로 고용하지 않고 버거운 양의 업무를 그 시간대에 근무하는 간호사 등 병원 노동자들한테 그냥 맡겨놓는 거예요. 환자들의 절박한 요구가 우선인 상황에서 거기서 일하는 간호사나 노동자들은 화장실 갈 시간이 실제로 없어요. 생리대를 갈 시간도 없고요. 병실가면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간호사님 뒤에 뭐 묻었어요” 같은 얘기를 종종 듣기도 하고요. 화장실을 못 가다 보니까 커피나 물 마시는 것도 스스로 자제를 하게 돼요. 그리고 상담 업무를 하는, 흔히 콜센터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은 하루에 100통씩 전화를 받아야 해요. 그러니 일을 못 하면 옆 사람한테 민폐가 가니까 화장실을 잘 못 가게 되죠. 콜 수 하나하나가 나중에 5만 원, 10만 원으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5만 원, 10만 원이 임금을 많이 받는 사람들한테는 큰돈이 아니지만, 최저임금 받는 사람한테는 큰 차이잖아요. 이러니 자신의 생리적인 욕구도 해결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들이 많죠.


악순환이네요. 화장실을 못 가고 물이나 음료도 잘 마시지 못하니까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잖아요.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개인 공간, 휴게 공간이 없다는 거기도 하고요.


그렇죠. 아까 얘기했던 상담센터 노동자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포함한 병원 노동자들, 또 생산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늘 고강도의 노동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자기가 일을 하다가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을 때, 생리적 현상을 해결해야 될 때 바로바로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할 경우가 다반사죠. 소위 말하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에서 대부분 일을 하거든요. 이게 눈앞에 컨베이어 벨트가 보이는 일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도 있어요. 예를 들면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요구가 그런 거죠. 우리나라는 간호사 수 대비 환자 수가 외국보다 훨씬 많아요. 이 많은 환자들이 계속해서 간호사를 부르잖아요. “간호사님 링거 다 됐어요. 간호사님 저 열이 나는 것 같아요. 간호사님...”. 계속해서 일이 생겨나는 컨베이어 벨트죠.

생리 현상을 자꾸 뒤로 미루게 되는 거예요. 이게 계속되면 방광염, 신장염 같은 병에 걸리기도 하는 거고요. 불건강하게 되고 질병이 오게 되는 거예요. 이와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거는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싶을 때, 해결해야 할 때 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결국 이건 근본적으로는 노동 강도의 문제고요. 일할 사람이 더 있어야 해요. 이게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는 화장실을 가까이 두는 것, 그리고 충분한 화장실 수를 확보하는 거죠. 겨우 시간 내서 화장실을 갔는데 거기 또 길게 줄을 서야 하면 화장실에서 볼일을 못 보고 다시 와서 일을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병원 이야기를 좀 더 하면, 병원은 간호사실을 중심에 두고 병실이 주위를 둘러싸는 형태로 공간이 구성된 경우가 많아요.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요구를 빨리빨리 해결해야 되니까요. 심지어는 360도 환자들이 있는 경우도 있고 보통은 한 180도 정도에서 환자들이 이렇게 있어요. 이 간호사실은 모든 환자, 보호자, 방문객들의 시야 안에 있어요. 그리고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청소하시는 분 전부 이 공간을 같이 쓰죠. 여기에 화장실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시설이 너무 열악해요. 방음이 잘 안 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화장실을 가도 바로 밖에 여러 사람이 있잖아요. 물을 내리거나 볼일 볼 때 나는 소리가 너무 신경 쓰여서 화장실 이용을 못하는 거예요. 이런 화장실은 진짜 있으나 마나에요. 화장실 가는 게 스트레스고, 심지어 무섭기도 하죠. 일이 바쁘니까 화장실을 멀리 갈 수도 없고 간호사실에 있는 화장실도 못 쓰는 거예요.


화장실에 어떤 변화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 사회에는 개인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존중되면서 자기만의 볼일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진짜 없어요. 사무실부터 시작해서 거리, 공공기관... 다 오픈된 공간이잖아요. 우리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이유는 주로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일 테지만, 저는 화장실이 오롯이 자기만의 공간으로 쓸 수 있는 곳이라고도 생각해요. 이런 공간들을 저는 좀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화장실을 모든 사람한테 개방을 해야 해요. 우리나라에는 화장실을 유료로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화장실을 개인이나 건물 소유로 생각하고 쓸 수 없도록 해 놓은 경우가 많아요. 사람이 숨을 쉬는 거와 마찬가지로 생리적 현상이잖아요. 그런데 화장실을 다 폐쇄해 놓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지하철 타고 가다가도 급할 수 있고 버스에서도 급할 수 있잖아요. 특히 지하철은 화장실 찾기가 조금 힘든데, '장애인들이 만약에 급한 상황이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화장실을 많이 만들고, 일반 건물이나 공공기관에서 화장실 개방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 성중립 화장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많이 못 만든다면 저는 여성 화장실이라도 더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성별에 따라서 생리 현장을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 있잖아요. 집회나 행사 중간이나 끝나고 남녀 화장실에 줄 서 있는 거를 보시면 한눈에 볼 수 있어요. 여성 화장실 줄은 남성 화장실 줄의 세 배, 네 배에요.


병원 일을 하다가 노조 활동을 하시게 된 거잖아요. 어떤 계기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저는 89년에 서울대병원 간호사로 들어갔어요. 저는 병원 일이 너무 무서워서 졸업하고 병원을 들어가는 것도 엄청 걱정했어요. 병원 들어갈 때 자기가 원하는 과를 써서 내요. 저는 분만실을 원했고 아주 운 좋게 분만실을 가게 됐어요. 서울대병원은 중증 산모들이 많아요. 세쌍둥이, 엄마가 지병이 있는 사람, 뱃속의 아기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 등... 제가 1년 차일 때 인력이 없어서 새벽에 쌍둥이를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어요. 근데 간호사와 의사가 한 명씩만 더 있어도 살릴 수 있는 애를 못 살리고 쌍둥이 하나가 사망을 했어요. 이게 저한테 너무 트라우마였죠.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었어요. 결국은 인력 문제잖아요. 그렇게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여러 노조를 거쳐서 올 1월 달에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에 출마하게 됐고 지금은 당선이 돼서 위원장 일을 하고 있어요.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일터와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까요?


저는 일단 우리 일터, 삶터 주변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대해서 민감도를 높이고 세심하게 바라보려고 애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생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상처가 될 수 있고 힘들어할 수 있잖아요. 저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동운동을 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해서 거기에 대해서 좀 더 민감하게, 예민하게 반응을 하려고 하지만, 부지불식중에 많은 차별을 못 보거나 또 내가 차별의 가해자가 될 때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감수성을 높이고 보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될 부분들이 많죠. 예를 들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법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굉장히 많은 한계들을 갖고 있어요. 직장 내 괴롭힘은 괴롭힘을 받는 사람과 괴롭힘을 주는 사람들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노조 안에서도 최근에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을 했어요. 그런데 양쪽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나 달라요. 한쪽은 직장 내 괴롭힘을 받았다고 하는데 다른 한쪽은 그 사람이 기본적인 자기 역할을 안 해서 자기 역할을 하도록 한 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을 우리 사회가 같은 눈높이로 볼 수 있게 끊임없는 소통을 해야 하고 조직 문화를 바꿔가야 해요.

그리고 공공기관들을 보면 여전히 유리천장이에요. 공공기관들, 공무원들, 정치인들... 사회적 역량이 많은 곳일수록 유리천장이 심한데요. 그 천장을 뚫고 가끔 한 둘 씩 올라오면 인터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게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회적으로 그런 걸 널리 알려내는 게 차별을 해소하고 민주적인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별 도움이 안 되는 건지. 오히려 그런 여성들이 있으니까 너도 노력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용될까 봐 걱정되기도 해요.

선거 운동할 때 인터뷰 요청이 많았어요. 공공운수노조가 큰 산별 노조고 제가 첫 여성위원장 후보기도 했거든요. ‘첫 여성 후보 당선되면’, ‘첫 여성 위원장인데’ 이런 식으로 언론에서 오는 인터뷰는 다 거절하거나 다른 질문을 달라고 했어요. 선거 운동할 때도 여성 위원장이니까 지지해달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여성이어서 특별히 뭔가를 요구하는 느낌도 있고, 내가 또 다른 차별을 생산해내는 것도 싫었거든요.


그러게요. 그런 인터뷰들은 특히 사회적 기준에서의 성공만을 조명하는 것 같아요.


수능 만점자, 전교 1등 인터뷰 같은 거예요. 늘 집에서 학원 안 가고 과외 안 받고 공부만 했어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거 학생들이 싫어하잖아요. 왜냐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만점자는 소수고, 1등은 하나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걸 가지고 자꾸 일반화를 하고 노력하면 된다고 하거나 저 같은 일부의 사례를 희망 고문의 도구로 쓰는 게 걱정이 돼요. 그리고 1등이 아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거잖아요.

덩어리로 보려고 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안 보여요. 저는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무언가를 조직으로 보거나 덩어리로 보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그런 거에 익숙해져 있긴 해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그냥 당연한 것처럼, 당연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다루잖아요. 그런 문화를 바꾸는 게 중요해요.


제가 드리고 싶었던 질문들은 여기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한국다양성연구소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어요. 처음에는 ‘뭐 이런 연구소가 다 있나’라고 생각했는데요(웃음). 다양성이라는 말이 해양 다양성, 생물 다양성 같은 곳에 주로 들어가잖아요. 최근에 한국다양성연구소의 김지학 선생님의 강연을 듣게 됐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연구소를 알고 나서 우리가 다 다르다는 거를 현실에서 계속 알려내고 서로가 이해하고 인정하게 하는 활동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하고 연구소가 많은 부분에서 서로 소통하고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고요. 이번에 저희가 화장실 만드는 데도 아이디어 얻었다고 했잖아요. 연구소 홈페이지 들어가니까 화장실 관련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더라고요. 그런 활동들이 다양한 지면을 통해서 잘 홍보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병원 노동자의 삶을 직접 살았기 때문에 병원의 상황은 다른 데보다 조금 더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노조 활동, 노동운동을 하면서 보니 어느 사업장, 노동이 특별히 더 좋고 나쁜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들여다보면 다 고충이 있고 인력 부족이고... 자본은 이윤을 위해서 노동을 이용하고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노동력을 파는 거잖아요. 그 속에서 노동자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같이 느끼고 알고 바꿔나가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그런 운동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청년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끊임없는 경쟁과 압박 속에서 본인은 최선을 다해도 1등만 기억하는 사회를 살아야 하잖아요. 어떤 커트라인 속에 들어가야지 인정받는 사회, 그 밖에는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잔혹한 사회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게 지금 청년들이잖아요. 이 고통을 많이 드러내야 해요. 저는 건강보험 고객센터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정규직 청년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서로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었다면 서로 다시 제대로 알아가야죠. 또 서로의 고통에 대해서 외면하고 있었다면 그 고통도 우리가 정면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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