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상담 공유 4
최근에 받았던 멘토링 질문 중에, 내가 가장 답하기 어렵고 조심스러운 질문이 있었다.
요약하자면,
이 친구는 현재 고3인데,
UNIST 반도체 공학과(삼성전자, 공정설계)와
서강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하이닉스, 회로설계)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인생에서 대학을 결정한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없을 텐데,
심지어 이 친구의 경우엔 해당 학과에 입학함과 동시에 취업하게 되는 회사와 전공 분야가 결정되는 터라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로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최대한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인적인 생각을 넣어 답변해 주었었다.
혹시 누군가 비슷한 상황이라면, 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허락을 받고 이렇게 글을 올린다.
아래는 이 친구와의 주고받은 내용이다. (중요한 개인 정보 등은 삭제 후 올립니다)
Q.
올해 저는 수시전형으로 서강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와 UNIST(울산과기원) 반도체공학과
두 곳에 합격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로써,
기업과 대학이 채용보장을 조건으로 학생을 조기에 유치하는 학과들입니다.
그래서 서강대학교는 SK 하이닉스, UNIST는 삼성전자 DS 사업부에 각각 채용이 보장됩니다.
제가 결국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두 대학 가운데 어디를 선택해야 하나의 문제인데요,
등록금 전액 및 교육 자료 지원이라는 거시적 조건은 동일하지만
각각의 대학의 커리큘럼이 다른 것이 선택을 어렵게 만들어서 고민입니다.
서강대학교의 경우에는 회로설계 및 시스템 분야를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학과로써,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을 기반으로 커리큘럼이 조성되어 있고,
졸업 후에는 하이닉스의 메모리 및 시스템 반도체 분야 회로설계 인력으로 배출될 예정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UNIST의 경우에는 5년 학석통합과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졸 신입 3년 차로 삼성전자 공정설계 및 공정 기술 분야에 투입되게 됩니다.
서강대학교와는 정반대로 공정이나 소자 관련 과목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UNIST가 끌리면서도,
한국에서 부족한 설계 직무를 집중 교육받을 수 있는 서강대학교가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또 서강 역시도 원하면 석사나 석박 통합 과정으로 자교 대학원 진학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으나,
학점컷이 있을 것 같은데 모든 학생에게 그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계약 기업 역시 삼전과 하이닉스라는 차이가 있고,
종합대와 연구 중심대학이라는 대학 자체의 성향 차이도 있어 뭐가 나은 선택일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한낱 고등학생이 두서없이 쓴 낮은 수준의 질문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바쁘시겠지만 선생님께서 고등학교 수험생이라면 어디를 선택하실지 의견을 내주시면 감사히 수렴하고,
매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A.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좋은 조건으로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실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게 된 것에 대해
우선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글을 쭉 읽어보았는데요, 질문 주신 내용이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하는 내용임이 느껴집니다.
또 고3 학생분께서 이렇게 미리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다는 점에
정말 대단하고 왠지 모르게 대견스럽게 느껴집니다.
먼저 제 생각이 100% 다 옳은 것은 아니니 정말 참고 정도만 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결정에 대해 고민하시는 포인트는 다음과 같을 것 같습니다.
1. 삼성전자 vs 하이닉스
2. 설계 전공 vs 공정/소자 기술 전공
3. 서강대 vs UNIST(석박 연계 5년)
1. 삼성전자 vs 하이닉스 (둘 다 가치 동일): 우선 삼성전자나 하이닉스에 대한 고민은 어떤 회사가 더 좋다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각 회사 모두 장점이 있고, 우리나라 최고 반도체 기업이지요. 아마 삼성에 취업하시게 되면 근무지는 기흥/화성 쪽일 테고 하이닉스는 이천이실 텐데, 근무지 정도의 차이 외에는 크게 뭐가 더 좋다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만약 더 자세히 회사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추가로 물어보시면 나중에 제가 따로 적어드릴 순 있습니다.
2. 설계 전공 vs 공정/소자 기술 전공 (둘 다 가치 동일): 이 질문도 항상 제가 받는 질문입니다. 보통은 학부 3-4학년이 되어 회사를 지원할 때쯤 본인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많이들 질문하시는 데, 질문 주신 학생께서는, 대학에서부터 이미 진로를 정하셔야 하니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힘든 질문일 것이라 예상이 듭니다.
우선, 늘 제가 드리는 평범한 답변은, 어느 전공이 더 우월하다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본인이 좀 더 맞는, 재미있는 전공이 있을 뿐입니다. 보통 대학생 분들에게는 대학원 수업 하나씩 들어보시고 결정하라고 말씀을 드리는데…. 고3학생이시니까 눈높이에 맞춰 설명드리자면, 설계 관련 보다 소자 쪽이 좀 더 기초 물리학이나 화학등에 대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과학에 대한 심도 깊은 공부를 더 원하시고 잘하신다고 느끼신다면 소자 쪽이 더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sw 코딩이나, 컴퓨터 분 그 자체에 좀 더 매력을 느끼신다면 설계 쪽이 더 맞으실 수 있습니다. 참 어려운 선택이네요. 전공 선택에는 항상 정답은 없습니다. 어느 선택이든, 선택 후 거기서 잘하는 사람이 되면, 본인에게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공정, 그리고 라인에 직접 들어가는 게 체력적으로 고된지, 단점이 되는지 물어보셨는데,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보통 그런데 제가 알기로 고졸로 입사하시는 분들의 경우 교대 근무가 많이 이뤄지고, 석사까지 연구를 진행하고 들어가시면 좀 더 기술 개발 R&D 쪽으로 업무를 배정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부분은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확실한 건, 해외(특히 미국) 쪽으로 취업하실 생각이 나중에 혹여나 있으시다면, 아직까지는 조금이나마 설계 관련 전공이 좀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관련 연구실이나 회사 job posting도 아직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그쪽이 좀 더 치우쳐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물론 현재 삼성, TSMC 등 여러 회사들이 반도체 fab을 미국에 짓고 있기 때문에 학생께서 졸업하실 때는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는 있을 것 같긴 합니다.
3. 서강대 vs UNIST(석박 연계 5년) (저라면 서강대): 그래서 서강대냐, UNIST냐 물으신다면, 진짜 정말 어렵습니다. 이 결정은. 어떤 게 더 낫다고 말씀드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냥, 제 입장에서 제 사촌동생에게 조언을 해준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만약 다시 학생의 순간이 된다면, 저는 서강대를 갈 것 같습니다.
물론 둘 다 훌륭한 학교이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주신 내용처럼 어느 곳의 커리큘럼이 좋다 나쁘다, 이런 문제의 이유는 아닙니다. 저는 더 큰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성장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도체 학과로 입학하지만, 반도체 업에 나중에 종사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서강대의 다른 전공의 수업도 들어보거나, 서울의 다른 좋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어떤 진로에 어떤 고민을 하며 사는지 경험하는 것, 막말로, 진짜 왜 강남 집값이 비싼지 직접 강남 가서 한번 느껴보는 그 감정이 어찌 보면 단순한 학과 공부보다 인생 공부 측면에서 더 가치 있을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저에게 늘 말씀 주셨던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어디서든 큰 물에서 경험하는 것이 너의 성장에 더 좋다는 조언입니다. 제가 현재 미국으로 굳이 굳이 나와서 여러 경험을 하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비슷한 이유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미국, 한국 생활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저도 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보고 싶어서 늦은 나이에 미국 이주를 결심했습니다. 미국에서 사는 것, 와 보니 별거 없더군요. 그래도 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곳에서의 여러 장단점을 경험하며 또 다른 방향으로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저는 지금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고등학생으로서 좋은 성과 얻으신 것 축하드립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충분히 좋은 선택 하실 것이라고 믿고, 앞으로 좋은 미래만 펼쳐지실 테니,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주 교류해요. 언제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형처럼(선생님은 아닙니다 흑흑)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고견은 아니지만 식견은 드릴 수 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마지막으로 항상 고민할 거리가 있을 때 저희 담당 교수님께서 저에게 해주셨던 이야기를 드리면서 마무리해보겠습니다.
"네가 만약 두 선택지의 고민을 1주일 이상 하고 있다면, 두 고민의 가치는 동일한 거야. 하나를 선택하자니, 다른 하나의 가치가 아쉬울 뿐인 거지. 어떤 선택을 하던, 중요한 것은 그 선택 후에 네가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하는 것이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 선택 후에 네가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너의 선택의 결과가 결정되는 것임을 명심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