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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1년 만에 이직을 꿈꿨나

실리콘밸리에 오고 나서야 결정한 업무 분야 변경

by 담낭이

퀄컴에서 AMD로 이직했을 때,

모든 것은 완벽해 보였다.


매달 적자에 시달리던 퀄컴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게 되었고

직급도 2단계나 오른 senior staff 직급이었다.


업무적으로도 안정화되었다.

삼성에서 퀄컴으로 옮길 때는 어쩔 수 없이 분야가 바뀌게 되면서,

원치 않는 분야, 정확히는 잘하지 못하는 분야를 하며

많은 부분에서 자존감도 떨어지곤 했었는데

다시 AMD로 오면서 삼성 시절 주로 맡아서 하던 분야로 돌아오게 되었다.


또, 워라밸도 훌륭했다.

주 3일만 출근하면 되었으며,

출근 시간도 자유로웠고 야근도 없었으며

업무 시간도 주 40시간 조차 널럴했던 때가 많았다.


게다가 업무적으로도 인정받고, 성과도 나고 있었다.

AMD에서의 일은 이미 삼성, 퀄컴을 겪으며 해오던 일이었고 어렵지 않았다.

새로운 일들은 쉽게 배울 수 있었으며 어렵지 않고, 재미있었다.

이 팀에서 은퇴를 앞둔 매니저를 제외하고 오롯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점차 visibility도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올해 Q3 에는 팀을 대표해서 Spolight Award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AMD의 주식 가치도 오르고 있었다.

즉, 내 입사 시 받은 주식 보너스가 거의 2배가 되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누군가가 내 상황을 본다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나는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반도체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깐 쉽게 설명드리자면,

반도체 설계에는 DFT (Design for Test)라는 기술이 존재한다.

성능과는 상관없이 나중에 반도체 칩을 테스트하기 위해 필요한 설계 기술인데,

태생이 '반도체 테스트'를 바라보고 있다 보니,

이 DFT라는 기술은 설계에서도 사용되고, 공정 (테스트) 단계에서도 사용된다.


공정, 테스트단계에서 사용되는 DFT 관련 기술은 Diagnosis라 불리는 기법인데,

쉽게 말해 이 DFT 지식을 이용해서 실제 반도체 불량을 시뮬레이션으로 진단하는 방법이다.


unnamed.jpg 나는 박사 시절 DFT를 전공했고, 삼성, 퀄컴, AMD에서는 Diagnosis 관련 업무 일을 했다.


이 Diagnosis 기술은 내가 퀄컴으로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으로 이 Diagnosis를 할 줄 아는 엔지니어를 찾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말은,

미국에서 Diagnosis 엔지니어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왜냐면 이 Diagnosis 기술은 대규모 반도체 생산을 하는 경우에 한해 필요한 기술이기에

이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어쨌든 나는,

퀄컴에서 AMD로 Diagnosis 엔지니어로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위에서 나열한 더 나은 상황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곳이 실리콘밸리라는 점이었다.


"퀄컴"이라는 회사 밖에 없던 샌디에고 시절과는 달리

이 실리콘밸리라는 곳은 수많은 빅테크와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수많은 IT 관련 기술 엔지니어들이 모두 모여 본인의 훌륭함과 높은 연봉을 자랑하는 그곳.


나 역시 이곳으로 오고 나서,

많은 엔지니어들, 특히 반도체 엔지니어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크게 3가지를 느끼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높아진 내 연봉이 사실 실리콘밸리 지역의 엔지니어들 대비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반도체 분야의 경우 설계 쪽이 공정, 테스트 쪽보다 연봉 처우가 훨씬 좋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는,

샌디에고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무시하게 많은 취업 기회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그랬다.

우연히도 DFT 전공의 Diagnosis 엔지니어였던 나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옵션이 존재했던 것이었다.


바로,


더 높은 몸값을 위해 내 분야를
Diagnosis (공정)에서 DFT (설계)로 바꾸는 것



특히,

이곳에서 많은 관련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과 얘기하고 스스로 고민해 본 결과,

이 transition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많은 DFT 엔지니어들이,

시작을 pre silicon 설계부터 시작을 하기 때문에 post silicon에 대한 지식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post silicon에서의 diagnosis 경험을 바탕으로

DFT 설계 현업 경험까지 쌓아 올린다면?


향후 5년, 10년 후에는 분명 대체할 수 없는 이 분야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unnamed (1).jpg



그래서 나는 선택해야 했다.


지금처럼 AMD에서 Diagnosis 엔지니어로 인정받으며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하지만 연봉은 그리 높지 않은 수준에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매우 도전적이고 힘든 여정일 테지만,

분야를 예전 박사 전공을 살려 반도체 DFT 설계 쪽으로 옮겨서

더 높은 몸값과

앞으로 발생하게 될지도 모를 많은 기회 속으로

내 자신을 굳이 또 옮겨 살아가야 할 것인지 말이다.




사실 결과는 명확했다.


만약 내가 첫 번째 선택을 할 사람이었다면,

아마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더 나은 커리어 기회와 연봉 상승의 꿈을 가지고 왔던 미국이었다.


그런 내가 정말 이 정도로 만족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저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나 더 가까운 곳에서 그저 바라만 볼 자신이 나는 과연 있는가?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자신이 없었다.

실리콘 밸리로 온 이상,

나는 내 스스로가 납득할만한 수준의 엔지니어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더 높은 보상을 받는 엔지니어가 꼭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던 그즈음,

새로운 커리어 빌드업 기회를 찾기 위해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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