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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Jun 30. 2023

미국 회사에서의 첫 프로젝트 발표

내가 영어로 발표를? 인생 가장 긴장했던 순간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 맡았던 두 개의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개운하게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아직도 고민할 점이 많지만,

그래도 나는 엔지니어 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어떻게든 끝내야만 했고, 

그렇게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에, 

나의 매니저가 나에게 technical review 미팅을 제안하였다.

보통 이 미팅은, 본인의 지식을 전달하는 가벼운 팀 내 미팅이지만,

매니저가 나에게 이 미팅을 시킨 이유는 단순히 내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네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만큼 네가 지금까지 했던 것들을 팀원들에게 설명하고,

특히 우리 팀의 대장인 sr.director에게 너 자신을 pr 해 봐라는 뜻도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거의 일주일간 자료 만들기에 돌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미팅이고, 또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잘 해내고 싶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부족한 영어 실력일지라도, 

Microsoft Teams에서 제공해 주는 자동 자막 기능으로 어떻게든 따라가면서 

영어 면접도 보고, 화상 회의도 참여했었다.


그런데 이번 회의는, 실제 회의실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눈을 바라보며 하는 in personal 미팅이기 때문에

훨씬 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부담감을 알았는지, 나의 매니저도 거의 2-3일을 같이 자료 만드는 것에 대해 도와주었다.




자료는 마치 논문 발표자료를 만들듯 진행되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얼마나 많은 기대 수익을 창출해 내었는지를 잘 홍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KPI는 어떻게 되고,

이로 인해 10년간 HC avoidance, Captial Expense avoidance는 얼마나 발생하고,

10년간 수익 대비 발생한 NRE expenses는 얼마인지를 계산하여

이 프로젝트의 ROI를 설명해 내는 작업들.


삼성에서는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작업들이었다. 

모든 것은 다 파트장의 몫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나 같은 엔지니어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내가 왜 이 적지 않은 돈을 받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잘은 모르지만, 매니저도 아마 계속해서 위로부터 질문을 받아왔을 것이다.

"네가 작년에 한국에서 뽑은 그 친구는, 잘하고 있어?"

그렇기에 나에게 이런 미팅의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너무나 긴장되지만, 너무나 설레기도 한 그런 미팅을 앞두게 된 것이다.



자료는 계속해서 수정되었다.

매니저는 내가 기분이 나쁠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수정해 주었다.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거지만, 

그 세세한 수정이 정말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기술 발표이지만, 디테일한 기술을 설명하지는 않되, 

적당히 이 기술을 모르는 상급자들도 전체 진행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해냈는지 알릴 수 있도록 자료를 작성하기.


자료에 강조할 부분과 말로 잘 강조할 부분을 나누고, 

발표할 때에 각각의 부분을 잘 생각하며, 시간 배분을 잘하기 등등 


프레젠테이션 발표는 엔지니어가 가장 가져야 할 기술 중 하나이고, 

애석하게도 나에겐 아직도 한없이 부족한 기술이었다.




발표 당일에 거의 4-5번 이상은 리허설을 했던 것 같다.

매니저의 조언에 따라 미리 해당 미팅룸에 가서 연습도 해보고,

사무실에 앉아서 제스처도 취해보고, 나름의 kick point도 만들어 보고..


매니저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원래 세심한 건지 이런 세세한 팁 아닌 팁도 주었다.


- If you haven’t presented in a room before, go and practice days in advance.  The A/V connections are a little tricky at first.  Use a friend help you test everything. 

- On the day of the meeting, be the first one in the room.

- Give people a warm hello and some eye contact when they enter.  It’s a strange thing, but it really does help start off the mood of the meeting on a good note.

- Remember to make eye contact while you’re presenting.

- I prefer to stand while presenting.  It helps give better volume and projection to the voice, and also helps with confidence/nervousness.


여하튼 미팅은 시작되었고, sr.director님은 조금 늦으셨지만 거의 초반부터 들어오셔서 미팅에 참여하셨다.

거의 외우다시피 한 문장들이 내 입에서 나오고..

가끔 나에게 들어오는 질문 들은 다행히도 다른 팀원들이 커버해주기도 하고, 

내가 대답하는 식으로 해서 진행해 갔다.


마지막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해서 조금 당황했지만, 어찌어찌 잘 마무리를 하였다.

director 님도 좋은 발표였다고 얘기해 주었고, 

같은 팀의 다른 수석 엔지니어 님께서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셔서 인지

그 일주일 간의 긴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정말 울컥한 감정이 느껴졌다. 물론 울진 않았지만.


이게 바로 정말 회사 생활이구나. 삼성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 그리고 성취감.



미팅이 끝나고 다음날,

매니저와 얘기하다가 다음과 같은 메신저를 받았다.

으레 하는 얘기일지라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보통 칭찬을 잘 안 하는 매니저이기도 했고, 최근에 계속 지적 아닌 지적만 받았었기 때문에

자존감이 너무 낮아져 있던 차에 받은 거라 그런지 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또 무언가의 미션을 끝내고 나니, 후련하고, 또 한 번 성장한 기분이 든다.

나중에 또다시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오늘의 기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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