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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희 Nov 24. 2022

상처를 따라 걷다


축축한 마음으로 날이 저물었다

몇 년의 투병과 가벼운 몸짓 주름들이 빛났다

대숲은 그때마다 흔들렸고 무언가 쏟아졌다 


그녀는 밤새도록 통증의 그림자를 끌어당겼다

빈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얼굴들

눈동자에 닿은 풍경은 죽은 입이 되었다 


창문을 닫고 있어도 바람이 닿았다

대숲의 출렁거림인지 무언가 흰죽에 닿은 듯

입술에서 한 줄기 뿌리를 건져 올렸다 


멀리서 새잎이 돋아나려는지

몇 개의 알약들이 경계에서 벗어났다 


길을 걷는 동안 그녀의 눈동자는 깊어지고

스스로 제 그림자를 가두었다

그때부터 눈물은 점점 무거워졌다 


누군가 할 말을 대신하듯

사람이 없는 집에도 풀이 자랐고

바람이 불고 달빛이 있었다 


달빛이 닿은 길은 내리막이었지만

뼈마디 마디 삶에게는

아플 때가 가장 살아있는 몸이었다 


하나의 언약처럼 상처를 따라 걸었다

아득한 것들이 흔들렸다 우리는

소리 없이 한 여자의 기억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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