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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희 Nov 11. 2022

그 여백의 표정으로

  

감은 눈이 가벼워져서 당신의 부재는 겨울숲에서 만났다


우리는 몇 년 만에 만난다 해도 꿈의 안쪽에 닿아있었다


이쪽과 저쪽에서 가을이 지나고 첫눈으로 되살아났다


지루한 새의 울음은 폐허의 나뭇가지에도 그림자를 내밀었다


먹먹한 깊이만큼 저녁의 뒷모습들이 숲길을 끌고 다녔다


기억을 걷는 날은 그 여백의 표정으로 울컥거리다 낯선 곳으로 갔다


언젠가 결혼식장에서 악수하고 다시 만나자며 장례식장에서 헤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雪)처럼 두려운 어깨를 흘러내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캄캄한 날을 위해


낙엽송 산중턱에서 환청의 뿌리보다 깊어졌다


서로는 날갯짓을 잃지 않으려고 무언가 누르는 눈치였지만


한 번쯤 놓쳐본 적 있는 사랑을 위해 아무 다짐도 없었다


우리는 눈송이들이 흩어지는 모습에 대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겨울이면 그 여백이 되는 눈길이 가득했다


지난밤 눈이 무성할수록 따뜻해지는 것들이 달려들었다


누군가 밤의 정적으로 울지 않게 혀를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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