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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희 Nov 20. 2022

그곳에도 슬픔이 불고 있다고요



슬픔이 얼굴을 덮은 채 누워있게 해요

오래전 몽유가 바람을 닮아가게

안이 훤히 드러나도록 표정이 흘러내려요


바람의 근육을 풀어주고

우리는 그 안에 가만히 누워있게 해요

냉기 가득한 폐허가 오기 전에

차갑게 뜨거워지는 순간들이 필요해요


굳은 눈빛을 깨뜨리고 슬픔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세요

무감각의 기억에서 깨어나

봄 나무처럼 입술을 벌려 구름을 만져봐요


비가 내려도 얼굴이 얼굴 위에 겹쳐서

구름의 표정과 같아져요

우린 서로에게 닿기 위해 꽃잎처럼

호흡을 누른 채 누워있어요


근육이 숨을 몰아 쉴 때마다

그냥 슬픔이 쏟아지게 해요

바람이 얌전해질 때까지 깨우지 말아요


눈 감은 채 꽃잎을 만져봐요

바람은 이미 꽃을 지우기 시작하고

봄은 슬픔에서 흔들리고 있어요


우리 같은 감정이 같은 표정이 아니더라도

골목길처럼 맨발로 사라질 것 같아요


어둠을 뼈에 새기는 나무들의 목소리로

실컷 울고 난 새에게 거짓말처럼 말해주세요


그곳에도 슬픔이 불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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