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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Jan 17. 2023

부부로 걷다가 부모로 굴러 떨어지는 중

그래도 내가 널 잘 키우지 않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워싱턴디씨 근교에서 두 자녀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연간 4만 달러, 한화 5천만 원에 달하는 돈이 든다. 맞벌이를 하려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맞벌이로 늘어난 수입이 고스란히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결국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맞벌이를 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첫째가 태어난 후로 줄곧 나 홀로 외벌이 중이다.


그런데 향후 몇 년 안에 집도 사야 하고, 차도 바꿔야 한다. 맞벌이가 필수가 돼버린 듯한 세상에서 나 혼자 벌어선 미래가 안 보인다 — 보이긴 하는데 그다지 밝지 않다. 일단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맞벌이가 쉬워질 것 같다. 그런데 둘째까지 학교에 들어가려면 3년 넘게 남았다. 그때쯤엔 이미 집을 샀거나 충분한 계약금을 들고 집을 알아보고 있어야 하는데, 그 계약금을 모으려면 하루빨리 맞벌이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맞벌이를 하려면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 해결책이 다시 문제가 되는 굴레에 갇힌 상황 같다.


우리 부부는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봤다. 먼저 와이프가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을 잡아서 맞벌이로 인한 추가 수입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의논했다. 그러나 교육직종에서 그런 높은 급여를 주는 자리는 없어서 포기.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육아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이야기했으나, 상상으로만 가능한 방법이라 포기. 그나마 현실성 있는 대안은 첫째가 유치원에 들어가면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맞벌이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공립유치원은 돈이 들지 않으니, 둘째의 어린이집 비용만 계산에 넣으면 된다. 단점은 내년 가을에나 첫째가 유치원에 들어가니, 그때까진 실현이 불가능하단 점이다.


사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집을 살 정도의 계약금은 갖고 있지만, 단순히 집을 구매하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라서 문제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 역시 ‘좋은 집’을 사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부모가 된 우리에게 좋은 집이란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고,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보금자리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거의 모든 부모가 원하는 바이기에, 이런 집들은 대체로 비싸다.


자녀와 관련된 고민들을 하다 보면 부모가 된다는 걸 너무 얕잡아 봤다는 생각도 든다. 이십 대에 그다지 많은 걸 이루지 못했어도, 나름대로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나가면서 너무 자만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떤 문제라도 다 해결책이 있고, 난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란 착각이랄까. 부모가 된 지금, 나는 그 착각 속에서 깨어나고 있는 중이다. 자녀에 관한 많은 문제들은 해결책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앞날에 대한 걱정이 없던 우유부단한 와이프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단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어려운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는 중이다.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 나갈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험난한 길을 만난 우리는 지금 굴러 떨어지는 중이다. 서로를 꼭 부둥켜안은 채,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서 데굴데굴. 한 바퀴 돌 때마다 답은 보이지 않고, 시작이 끝이 되고 끝이 다시 시작이 되는 문제들만 어른거린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 우리 사이에 안겨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돌아가신 엄마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던 질문이 생각난다. "그래도 내가 널 잘 키우지 않았어?". 그때는 아직 자녀가 없었던 때라, 엄마가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 왜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고 당연한 대답을 그토록 듣고 싶어 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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