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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Feb 26. 2023

혈연관계의 파손위험

명절이면 생각나는 사람들

10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늘 걱정하셨다. 자신이 죽으면 자손들이 모이지 않게 될까 봐 항상 불안해하셨다. 건강이 악화되며 그의 얼굴에 기운이 빠질수록 걱정은 더해갔다. 그때 스물네 살을 지나던 나는 할아버지가 왜 그토록 자신의 사후에 대해 걱정하셨는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죽더라도 명절 때마다 반드시 모여서 묘소를 관리할 것을 당부하셨는데, 원래부터 벌초에 집착이 상당하셨던 분이라, 나는 그의 걱정을 그저 묘지 관리의 연장선에서 이해했다.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어릴 때 돌아가신 터라,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로 더 이상 남아 있는 조부모는 계시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던 '구심점'이란 게 뽑혀 나갔던 것이다. 장남인 내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기에, 주인을 잃은 구심점이 장손인 나에게로 다가오는 걸 느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나에게 '장남의 장남으로서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그저 말장난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 건 초등학교 2학년 때 반장이 되는 것쯤으로 여겼다.


다행히 고모가 묘지를 관리하기로 해서, 장손인 내가 신경 쓸 부분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우리 일가는 명절마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할머니와 증조부까지 묻힌 묘지에서 만났다. 거기까지는 할아버지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셨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가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묘지 관리의 의무가 나에게로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운전면허조차 없던 내가 대중교통으로 서울에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파주 어딘가의 묘지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벌초용 가위를 들고서 지하철과 버스에 오르면 그 꼴이 볼 만할 것이다.


사회 초년생으로 그 시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은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어도, 내가 묘지 관리에 드는 비용까지 전적으로 담당할 순 없었다. 점심값을 아끼느라 밥도 구내식당을 주로 이용하던 나에게 그런 금전적 부담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조차도 원치 않을 일이었다. 게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유산을 푼도 받지 못했던 장남의 장남 아닌가.


그 뒤로 얼마 못 가서, 나는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훌쩍 이민을 떠나버렸다. 그때 나는 이미 친척들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차단한 상태였고, 떠날 때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도록 그런 처사를 그다지 후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 그들은 결국 돈이라는 주제를 놓고 의무니 뭐니 듣기 좋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집안의 장손이 조상의 묘지를 내버려 두고 서양 여자를 만나 미국으로 도망간 놈이라 욕하는 걸 듣기 싫어서, 어쩌면 그런 이유로 내쪽에서 먼저 연락을 차단했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가? 그건 대답하기 힘들다. 나도 자녀가 둘인 아빠가 되고 보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던 '구심점'이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일어나던 일련의 사건을 제외하면, 친척들과의 기억은 온통 좋은 것들 뿐이다. 명절에 모이면 집안 어른들은 어린 나를 예뻐하느라 바빴고, 사촌 형들은 나와 놀아주느라 바빴다. 이제는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나진 않지만, 가을의 추석도 겨울의 설날도 전부 따뜻한 느낌으로 기억난다. 한데 모여 떡을 빚고, 전을 부치고, 상을 차리던 일이 즐거웠다. 그런 모임이 중심을 잃고 흩어져 버린 지금이 아쉽다.


벌써 수 년째 미국에 사는 나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이면 처가로 가서 칠면조와 케이크를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예전에 내가 느꼈던 소속감을 주진 못한다. 처가 식구들과 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내가 혈연관계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피로 맺어진 관계. 피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한 순간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관계가, 이토록 깨지기 쉬울 줄은 몰랐다. 이제는 시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너무 멀리 떨어져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올해도 명절이면 갈비와 만둣국을 그리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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