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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Apr 15. 2023

봄꽃은 겨울을 잊게 하고

사랑은 어둠을 밝히지

몇 번의 봄비가 얼음을 녹이면 앙상하던 나뭇가지는 어느새 꽃들로 뒤덮인다. 수많은 꽃들을 보고 있자면, 마른 잎사귀를 떨어뜨린 늦가을부터 겨울이 끝날 때까지 수개월 동안 거친 가지들을 드러냈던 나무의 모습은 까맣게 잊게 된다.


봄이 오기 직전 겨울의 나무는 으스스하다. 하늘을 향한 잔가지들을 올려다보면 날카로운 펜으로 아무렇게나 그은 선들 같아서 소름이 끼친다. 안개라도 낀 날이면 그 모습이 음산하기 짝이 없다. 차갑고 거친 기둥에 손을 대면 도저히 생명의 기운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뿌리가 뻗어 있는 땅도 온기라곤 전혀 없이 딱딱하고 차갑기만 하다. 주변에 쌓인 낙엽마저 부서져 사라진 후에는 나무가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런 나무가 불과 며칠 사이에 꽃으로 뒤덮이는 것이다. 핀다는 표현보다 터져 나온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듯 꽃들은 잔가지까지 빼곡히 채운다. 잠시나마 나무가 죽었다고 믿었음에 무안해지고 만다. 하지만 피어남의 상태는 딱 며칠 동안만 유지되고 꽃잎은 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휘날린다. 그럼에도 그 아름다움은 너무 강렬해서 그토록 길었던 겨울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Photo by Camille Villanueva


삶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좇아야 하지 않을까? 살아감의 긴 어둠을 잊게 만드는 아름다움 말이다. 아마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열렬한 사랑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눈이 부시도록 빛나서 세상을 온통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인다. 사랑에 빠진 시기에는 흐린 하늘도 예쁘게 보이고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도 멋있게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밝게만 보이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런 사랑은 봄꽃처럼 짧은 시간만 지속된단 사실이다.


그래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 빛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니까. 아무리 나무가 앙상해도 그것이 죽지 않았음을 아는 이유는 바로 봄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듯, 빛나던 순간을 느껴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긴 터널 속을 지나고 있다고 해도 언젠가 빛을 보게 될 것임을. 언젠가 다시 향기가 짙은 사랑을 하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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