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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Nov 13. 2022

잘 지내니 X세대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프롤로그

처음에는 남들처럼 유튜버를 하려고 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허팝과 함께 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되기』를 8,300원씩이나 주고 샀다. 아… 그런데 목차를 펼치는 순간 이건 내가 못하겠다는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이성적인 결정을 하게 되었다. 대본 쓰고, 촬영하고, 편집까지 해야 한다고?  


대본 쓰고 촬영하는 건 어찌어찌해보겠는데 노안이 와서 책 읽기도 쉽지 않은데 동영상 편집을 배워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편집을 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10분짜리 영상 하나 만드는데 적어도 3일 이상은 걸릴 것 같은데… 


중년 유튜버들, 심지어 유튜브로 돈까지 버는 분들은 참 대단한 분들이구나 싶은 존경심과 깨달음을 얻고 허팝은 고이 떠나보냈다. 아… 아까운 8,300원이면 단골 빵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플로랑틴을 세 개는 사 먹을 수 있을 텐데… 


하루에 1시간 정도면 할 수 있는 글쓰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을 위한 콘텐츠가 아니고, 내 친구들인 X세대들을 위한 콘텐츠니 되지도 않는 영상 만든다고 뱁새가 황새 쫓아가느라 가랑이 찢어지기보다 내게 익숙한 글쓰기로 시작하는 게 쉽고 부끄러움도 덜하겠다 싶어서다. 


이 글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건 배냇 병인 “저장 강박” 때문이다. 가깝게는 20년 전 산 티셔츠부터 멀게는 30여년 전 입었던 교복까지, 95년 프로야구 입장권부터 2002년 월드컵 응원 막대까지, 26년 전 발간이 시작된 씨네 21 창간호부터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팸플릿까지… 이런 것들을 몽땅 가지고 있으니 이것들을 떠나보내기 전에 한번 써먹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다. 

최근 화두라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길 바라지만 이것들을 끌어안고 도무지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침대를 쓰지 않을뿐더러 소파도 없고, 핫한 다이슨 청소기는커녕 물걸레 청소기도 없으며, 전자레인지도 없다.  내가 소유한 가전제품은 TV, 냉장고, 세탁기, 전기밥솥, 전기포트가 끝으로 80년대 가정집 수준이다. 


규정할 수 없는 신인류였던 X세대가 어느새 50대에 접어들었다. 최근에 내 나이를 실감하고 크게 충격받은 건 대통령의 아내가 X세대라는 걸 알고 나서다. 대통령과 영부인은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이미지를 가졌었는데 내 또래의 영부인이 등장한 건 정말 큰 충격이었다. 프랑스 대통령이나 핀란드 총리가 30대 40대인 건 먼 나라 이야기라 크게 실감 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 영부인을 보니(심지어 외국 정상들에 비해 젊은 편도 아닌) 내 나이가 벌써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중심이었던 X세대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우울하고 슬펐다. 하지만 처져있을 필요가 있을까? X세대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고 싶어졌다. 무한궤도 신해철의 광팬이던, LG 트윈스 야생마의 열성팬이던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친구들아, 나는 늙었지만 아직 크게 아픈데 없이 여전히 잘 지낸다. 너희들도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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