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는 꿈만 꾸는 걸로…
지난여름, 미용실에 고이 코팅까지 해서 붙여 놓은 걸 찍어와서 커뮤니티에 올리고 바라는 거 많은 글쓴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댓글들이 주르륵 달린 걸 보고 아,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실감했다. 1986년에 발표된 유안진의 수필은 진솔한 우정을 소망하는 마음을 꾸밈없고 솔직한 문장으로 표현하여 공감을 얻고 90년대 중반까지 여학생들이 친구에게 손 편지 쓸 때 즐겨 인용하던 글인데 이제는 중 2 병의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취급당하는 처지가 되는 걸 보니 조금 서글펐다.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40여 년 전 쓰인 글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살짝 오그라드는 정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우르르 달려들어 물어뜯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조금 놀라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이 글이 한창 유행했을 때 학창 시절을 보낸 터라 친구들이 편지에 써서 보낸 걸 읽고 조금 닭살스럽게 느꼈지만 당시 유안진 씨가 40대 중반의 나이였고, 내가 그 연배가 되니 유안진 씨의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기분파 성향이라 갑자기 친구에게 만나자는 제안을 종종 하는 편이었는데 20대에는 흔쾌히 응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가 30대부터는 쉽지 않았고, 40대 이후에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게 된 경험이 있어서다. 벼르고 별러서 만나는 게 상수고, 만난다고 해도 서로 바쁘다 보니 저녁에 술 한잔 기울이면서 만나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점심때 잠깐 보거나, 오후 시간 티타임에 만날 때가 많다.
‘저녁을 먹고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40대 이후에 얼마나 비현실적인 존재인지 그 나이가 되어봐야 알 수 있다. 요즘엔 40대에도 결혼 안 한 사람도 꽤 많으니 80년대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겠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후 허물없이 아무 때나 친구의 방문을 반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도 예약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친구에게 갑작스러운 만남을 제안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인 것이다.
1년에 한 번 만나면 자주 보는 친구이고, 보통은 4~5년 만에 봐도 그리 오래되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다가 서로 늙어있는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만나는 걸 깨닫는다.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별일 없이, 별다른 걱정 없이, 이렇다 할 고민 없이 살고 있다면 그게 서로에게 가장 반갑고 고마운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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