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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Dec 08. 2022

Now and Then

지란지교는 꿈만 꾸는 걸로…

지난여름, 미용실에 고이 코팅까지 해서 붙여 놓은 걸 찍어와서 커뮤니티에 올리고 바라는 거 많은 글쓴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댓글들이 주르륵 달린 걸 보고 아,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실감했다.  1986년에 발표된 유안진의 수필은 진솔한 우정을 소망하는 마음을 꾸밈없고 솔직한 문장으로 표현하여 공감을 얻고 90년대 중반까지 여학생들이 친구에게 손 편지 쓸 때 즐겨 인용하던 글인데 이제는 중 2 병의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취급당하는 처지가 되는 걸 보니 조금 서글펐다.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40여 년 전 쓰인 글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살짝 오그라드는 정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우르르 달려들어 물어뜯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조금 놀라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이 글이 한창 유행했을 때 학창 시절을 보낸 터라 친구들이 편지에 써서 보낸 걸 읽고 조금 닭살스럽게 느꼈지만 당시 유안진 씨가 40대 중반의 나이였고, 내가 그 연배가 되니 유안진 씨의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미용실에 붙여있던 지란지교를 꿈꾸며

기분파 성향이라 갑자기 친구에게 만나자는 제안을 종종 하는 편이었는데 20대에는 흔쾌히 응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가 30대부터는 쉽지 않았고, 40대 이후에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게 된 경험이 있어서다. 벼르고 별러서 만나는 게 상수고, 만난다고 해도 서로 바쁘다 보니 저녁에 술 한잔 기울이면서 만나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점심때 잠깐 보거나, 오후 시간 티타임에 만날 때가 많다. 


‘저녁을 먹고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40대 이후에 얼마나 비현실적인 존재인지 그 나이가 되어봐야 알 수 있다. 요즘엔 40대에도 결혼 안 한 사람도 꽤 많으니 80년대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겠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후 허물없이 아무 때나 친구의 방문을 반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도 예약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친구에게 갑작스러운 만남을 제안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인 것이다. 

1년에 한 번 만나면 자주 보는 친구이고, 보통은 4~5년 만에 봐도 그리 오래되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다가 서로 늙어있는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만나는 걸 깨닫는다.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별일 없이, 별다른 걱정 없이, 이렇다 할 고민 없이 살고 있다면 그게 서로에게 가장 반갑고 고마운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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