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은주 18주기, 그녀를 추억하며...
2004년 가을에 일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별러왔던 장기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해 겨울에 출발해서 이스라엘과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유럽으로 이동해서 2005년 2월 22일 베를린을 거쳐 독일 트리어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도착해서 긴장이 풀려서인지 늦잠을 자고 있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나에게 친구가 제일 먼저 한 말이 “이은주가 죽었대.”였다. 나는 잠에서 덜 깨서 “뭐? 누가 죽어?” 이렇게 반문했더니 친구는 “배우 이은주, 자살했다네.” 친구가 켜놓은 컴퓨터를 들여다봤더니 진짜 이은주의 사망 기사가 주르륵 나와있었다.
2003년 만우절에 들려온 장국영 사망 소식만큼 큰 충격이었다.
드라마 <카이스트>로 얼굴을 알린 이은주는 2000년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내게 배우로 뚜렷하게 각인된 건 2001년 <번지 점프를 하다>였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OST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김연우 - YouTube
당시 시네큐브 광화문에서 했던 언론 시사회 분위기는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난다. 원래 언론 시사회는 일반 시사회보다 분위기가 냉랭하고 감정 표현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편인데 이날 시사회는 중반 이후부터 여자 기자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다가 마지막엔 거의 오열하는 사람까지 있어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모두가 “이 분위기 어쩔?” 그 자체였다.
이병헌이 극을 이끄는 배우였지만, 이은주는 애틋한 첫사랑의 연인 이미지 그대로여서 정말 인상적이었고, 이후 이은주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2004년 드라마 <불새> 이전까지 영화에 끊임없이 출연했지만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연애소설>은 손예진이 눈에 띄는 영화였고, 2002년 <하얀 방>, 2003년 <하늘 정원>, 2004년 <안녕! 유에프오>등은 흥행과 비평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이은주라는 배우의 매력과 잠재력을 생각할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택이었다고 기억한다.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는 장동건, 원빈 투톱 영화였고 파격적인 변신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주홍글씨>마저 외면을 당했다. 이은주가 왜 스스로 삶을 포기했는지 소문만 무성했을 뿐, 진실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단지 묘령(妙齡)의 매혹적인 여인이라는 이미지에 꼭 어울리는 연기력이 뛰어난 젊은 여배우를 너무 일찍 떠나보낸 것이 안타깝고 슬프다. 이은주가 살아있다면 43세가 되었을 텐데 그녀 또래의 배우들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걸 보면 아쉽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