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에 상상한 21세기 <블레이드 러너>
SF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90년대 초반 개봉한 <터미네이터 2>와 <블레이드 러너>는 좋아해서 영화채널에서 방송할 때마다 다시 보는 작품이다. 방송 시간을 미리 알고 보는 게 아니라서 대부분 중간부터 보게 되는데 오늘은 운 좋게 <블레이드 러너>를 처음부터 보게 되었다. 1982년작인 이 영화는 걸작으로 소문이 자자했던지라 우리나라에서 10여 년이나 뒤늦게 개봉을 했음에도 꽤나 화제가 되었다.
나 역시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영상도 충격적이었지만, 주인공 블레이드 러너(인간을 위협하는 레플리컨트를 색출해서 처형하는 특수 경찰) 데커드보다는 악당이라기엔 동정심을 자아내는 레플리컨트(안드로이드)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하면서 봤었다. 또한 보는 내내 데커드가 영화 말미에 레플리컨트라고 커밍아웃하는 결말 아닐지 조마조마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정주행을 하니 원작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1966』를 쓴 필립 K. 딕의 천재성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탁월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그의 소설들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것들이어서 『페이첵. 1953』, 『마이너리티 리포트. 1956』,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토탈 리콜). 1966』 등 영화화된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이번에 다시 보면서 놀랐던 장면은 “인구과소지대”라는 묘사였다. 처음 봤을 때는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 장면이었지만 ‘인구절벽’을 맞이하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레플리컨트들이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유전설계 기술자 세바스찬의 집을 찾아와서 거대한 빌딩에 혼자 살고 있냐고 묻자 “인구과소지대니까.”라고 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 없이 자신이 만든 장난감 안드로이드들과 함께 사는 세바스찬의 모습은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 아닐는지. 1992년에 봤을 때도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작가는 1966년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스티븐 스필버그는 외계인과 어린이가 소통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 <E.T.>를 제작한 반면, 리들리 스콧은 어쩜 이렇게 암울하기 짝이 없는 SF 영화를 대중에게 선보일 생각을 했는지 그의 무모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개봉 당시에는 <E.T.>의 엄청난 흥행과 <블레이드 러너>의 실패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을지 몰라도 <블레이드 러너>는 40년 뒤에도 다시 보고 싶은 걸작의 반열에 올랐으니 리들리 스콧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4년밖에 안 되는 수명연장을 위해 몸부림치던 레플리컨트 로이가 결국 최후의 순간을 예감하고 “나는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보았지… 하지만, 그런 기억들도 모두 사라질 거야. 때가 되면 빗속에 흘러내리는 내 눈물처럼. 이제 때가 되었어.”라는 말은 오래전에도, 지금도 너무나 처절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