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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Mar 12. 2023

나이 들어서 배운 자전거 타는 법

아버지와 추억이 담긴 오래된 자전거

아침부터 비가 꽤 쏟아져서 등산을 뒤로 미뤘는데 정오에 WBC 체코전을 하길래 2연패로 김이 빠질 대로 빠졌지만 야구팬이라 시청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는데 초반의 기세와 달리 중반부터는 타선도 차갑게 식고, 투수진도 살짝 아쉬운 그저 그런 경기가 진행되었다. 야구 경기를 보는 동안 비가 멎어서 자전거라도 타려고 후리스 하나만 걸치고 나갔다. 자전거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고 달리기 시작하는데 찬바람이 세차게 뺨을 후려쳤다.


아, 이거 너무 추운데…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점퍼를 챙겨 나오기는 귀찮고, 그냥 달렸다. 한참을 신나게 달리는데 갑자기 드드득 소리가 나면서 뒷바퀴 쪽이 돌지 않는다. 타이어에 펑크 난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런 걸까 싶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짐받이 끈이 풀려서 체인에 감겨 있었다. 끈을 풀어냈는데도 체인이 헛돌았다. 몇 주 전 자전거가 시원치 않길래 동네 자전거 가게에 가져갔었는데 별 이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완곡하게 말씀하셨지만 뜻풀이를 하자면 자전거가 너무 고물이라 여기다 돈 들이느니 그냥 새 걸 사라는 뜻이었다. 내가 타는 자전거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옛날 한창 신문 구독 경쟁이 치열할 때 신규 구독자에게 주는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못해도 20년은 된 게 아닐까. 그러니 고물은 고물이다. 그런데 내가 이 자전거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마흔까지 자전거를 타지 못하던 내가 칠십 대 중반의 아버지에게 이 자전거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지 못해서 특별히 불편한 게 없었지만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에서 산시성 서안 성벽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장면을 읽고 꼭 한번 그 곳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집 한구석에 세워둔 고물 자전거로 자전거 배우기에 도전한 것이다. 내가 혼자 자전거를 끌고 나가려는데 늙은 자식이 혼자 자전거 배우다가 얼굴이라도 땅바닥에 갈리고 올까 걱정된 아버지는 노구를 이끌고 따라 나오셨다.


나도 양심은 있는지라 늙으신 아버지에게 자전거 뒤를 잡게 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지만 혼자 위태롭게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시던 아버지께서 결국 자전거 뒤를 잡고 자전거가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돌리라고 코치를 해주셨다. 다행히도 늙은 자식과 늙은 아버지는 다치지 않고 한두 시간 시행착오를 거친 후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 “허허, 잘 타네.” 하시던 아버지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천운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은 자전거 수업 끝에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자전거 타긴 탔어? 에이, 타긴 뭘 타. 늙은 아빠 고생만 시켰겠지.” 하자 아버지께서 “아니야, 그래도 금방 배웠어. 하루 이틀만 더 타면 제법 타겠던데?” 하며 내편이 되어주었다. 분명 몇 번 구르고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눈을 흘기셨고, 다음날 내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직관하겠다고 따라 나와서 보고도 못 미더워하며 신기해했다.


운동신경이라고는 꽝인 내가 어린 나이도 아닌 중년에 자전거를 배운다는 것은 나조차도 예상 못한 일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자상한 코치 덕분이었으리라. 그렇게 배워서 고물 자전거가 다시 달리게 되었고, 상태가 불안해서 그렇지, 지금은 너무 잘 타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이상신호가 나타나니 덜컥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와 추억이 담긴 자전거, 오래오래 타고 싶어서 고장 나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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