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못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고향은 평안남도 평양부 서성리이다. 어머니는 한국 전쟁 때 어쩌다가 이모님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고 평생 이산가족으로 살다가 돌아가셨다. 음식 솜씨와 장사 수완이 좋은 이모님은 부산 피난 시절 음식 장사를 해서 살림 밑천을 장만하였고, 서울 수복 후 상경하여 서울 동자동에서 만둣집을 했는데 장사가 무척 잘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도 그 시절 만두 빚느라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만두피가 터지도록 소를 가득 넣은 만두, 돼지고기와 고사리, 숙주나물을 넣고 불린 녹두를 갈아서 고소하고 바삭하게 부치는 녹두 빈대떡, 양지머리로 구수하게 우려낸 육수에 새콤한 오이 무침을 올린 냉면… 손이 많이 가는 평양을 대표하는 음식을 어머니는 참 잘하셨고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요리하는 걸 바라지 않아서 어머니의 황금 같은 레시피를 전수해 준 적이 없다. 그저 어머니가 요리하는 걸 본 기억으로 해보는데 비슷한 결과물이 나왔다. 어머니는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 1년을 더 사셨는데, 돌아가시기 한 달 전까지는 다행히 입맛이 있으셨기에 나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간간이 해드렸고, 어쩜 이렇게 맛있게 잘했냐고 환하게 웃으면서 잘 드시는 모습이 당시에도 지금도 큰 위안이었다.
그러다가, 2021년 8월 중순 어머니는 갑자기 곡기를 끊으셨고 그로부터 한 달 뒤 내 손을 놓고 먼 길을 떠나셨다. 그 후 나는 가장 좋아하는 만두, 녹두 빈대떡, 냉면을 못 먹게 되었다. 메뉴 이름을 보기만 해도 어머니가 떠오르고 눈물이 쏟아져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된 것이다. 삶은 밤을 그저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되는데 어머니는 수고스럽게 일일이 과도로 껍질을 벗겨서 예쁘게 깐 알밤을 내게 건네주셨고, 나는 염치도 없이 날름날름 받아먹고는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밤도 먹지 못하는 음식이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샐러드 달인이 되었다. 어머니와 추억이 없는 메뉴를 찾다 보니 샐러드만 주야장천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음식을 잘하고 자식에게 잘하셨을까. 가끔 이런 복에 겨운 원망을 하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어머니는 내게 너무 많은 걸 주고 떠나셨다. 나는 꼭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서 사랑해 주고 또 사랑해 주고 또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이룰 수 없는 헛된 소망이라는 걸 잘 알기에 후회만 가득하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흥겨운 트롯 멜로디에 재미있게만 들렸던 노랫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히는 진리였음을 이제야 절절히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