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용 안과와 냄비우동
아빠와 외출한 오래전 그날
어제 브런치에 꿈 이야기를 했는데 지난밤 초등학교 2학년 때로 돌아간 꿈을 꾸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특별한 날이 생생하게 동영상으로 재현된 하루는 사촌의 안경을 시샘했던 내가 눈이 나빠졌다는 꾀병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안과에 갔던 날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갔던 그곳은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신예용 안과였다.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기억은 너무나 또렷하다. 나이가 지긋하신 원장님의 진찰을 받고 약간의 난시가 있다고 해서 난시 교정 안경을 맞추러 안과가 있는 건물 1층에 있던 상명당 안경에서 조그만 금테 안경을 맞췄다.
나는 그렇게 소원하던 안경을 써서 기분이 날아갈 듯 신이 났고, 아빠는 그런 나를 보고 “벌써 안경을 쓰게되었는데 그렇게 좋아?” 기막혀했다. 점심 시간이었는지 나를 데리고 근처 우동집으로 갔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아빠와 둘만의 외식이 아니었을까. 아빠와 둘만 외출한 것도 신났고, 낯선 우동집 풍경도 신기했다. 아홉 살이었는데 뭐는 신기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냄비우동을 시켜줬는데, 매끈한 면발의 우동 위에 나온 텐까스(튀김 고명)를 재미있어했더니 아버지 우동에 있는 텐까스를 내 그릇에 덜어주셨다.
안경도 쓰고, 맛있는 우동도 먹은 그날은 유년시절에서 정말 특별한 하루였는지 오래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날이 지난밤 꿈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오랜만에 젊고 훤칠한 아빠의 모습을 보는데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에 가득 차서 눈물이 터졌고, 울면서 아버지를 찾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정말 까마득한 심연에 있던 기억이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꿈속에 펼쳐져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겨울이었던 것 같다. 우동집에 들어서자 뽀얀 안개 같은 수증기와 구수한 냄새까지 그날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추억의 음식 ‘냄비우동’을 어찌 그리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꿈속에서 만나 뵌 안과의사 신예용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안과전문의로 1957년 안과를 개업한 선구자였다. 공안과와 더불어 종로의 터줏대감이었던 시절, 서울 종로 토박이었던 아버지에게 신예용 안과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선택지였으리라. 신예용 선생님을 검색해 보니 2015년 97세에 고인이 되셨다. 아홉 살 꼬마가 중년이 된 오랜 세월이었으니...
한동안 부모님 꿈을 꾸지 않았고, 개꿈이 좋다고 하니 바로 꿈에 나타나신 걸 보면 내 마음속에 부모님의 자리가 얼마나 크고 절대적이었는지 모르겠다. 눈물에 목이 메는 슬픔 없이 담담하고 반갑게 부모님을 만나는 꿈을 꾸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