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태어났을 때, 엄마는 정말 행복했어.
<골목식당>, <금쪽같은 내 새끼>, <개는 훌륭하다>류의 솔루션 예능을 보지 않는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제작진은 사례자 상황을 최대한 자극적인 영상으로 방송시간 내내 담아내서 시청자들의 분노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리고, 그에 대한 솔루션은 방송 말미에 잠깐 보여주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빌런이 하드캐리해야 시청률이 올라가는 게 요즘 예능의 트렌드인데 나는 이런 방송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화제가 되더라도 거의 보지 않는다.
화제의 장면은 기사로 접하거나, 쇼츠로 잠깐 볼 때가 있을 뿐 내 정신건강은 소중하니까 정주행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이번주 <오은영 리포트_결혼지옥>의 한 장면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출연 부부의 9살 딸아이가 “가끔 내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내가 태어나서 이런 거구나. 내가 안 생겼으면 늦게라도 다른 남자랑 결혼할 수 있었을 텐데…”
예능도 전부 대본이고, 설정이라고 해도 제작진이 9살 아이에게 이런 대사를 시켰다면 그들은 진정한 악마일 것이다. 부모의 싸우는 모습을 내내 지켜본 아이가 털어놓은 속내라면 이들은 부모 자격도 없고, 결혼해서는 안될 사람들일 것이다. 고작 9살 아이에게 가슴속에 저런 큰 상처를 준다는 게 차마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내 부모님 역시 부부싸움도 하고, 자식들 야단도 치는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태어났을 때, 엄마는 정말 행복했었지. 너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니?” 엄마는 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생긴 중년이 되었을 때까지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수시로 했었다. 아버지는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네가 제일 든든하다. 너는 앞으로 잘 될 거야.” 이런 격려를 자주 하셨다.
아주 어려서부터 이 말들을 들었기에 그저 흔한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살면서 힘들 때마다 부모님의 이 말씀이 항상 뇌리에 맴돌았고, 나를 지탱해 주고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따뜻한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 부모님이 의식적으로 자녀의 훈육을 위해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그저 두 분의 진심이었고, 그 진심을 전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부모님은 많이 배운 분들도 아니고, 옛날 분들이었지만 요즘 화두로 떠오르는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을 아셨던 것 같다.
그 말씀이 가슴에 새겨져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내가 두 분에게는 소중한 존재구나, 건강 잘 돌보고 좋은 일 하면서 열심히 잘 살아야지 이런 다짐을 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삶은 아니지만 내 삶에 만족하고, 한계를 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배움이나 새로운 도전에 망설임이 없었던 이유도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