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엽서로 소환하는 빈 미술사 박물관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왜 사람 얼굴을 이렇게 그렸을까.

by Rosary

유럽배낭여행을 3개월 동안 하면서 꽤 여러 곳의 박물관을 관람했는데 다들 개성 있고, 책에서만 봤던 명작들을 직관하니 감격스러운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갔을 때 아는 화가라고는 클림트와 에곤 실레뿐이어서 벨베데레궁과 레오폴드 박물관을 가는 계획만 있었다. 우연히 시간이 남아서 별생각 없이(당시만 해도 그림에 대해 거의 까막눈에 가까워서) 빈 미술사 박물관에 갔는데 이곳에서 흥미로운 작품들을 많이 만나서 예상보다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피테르 브루게_바벨탑. 1563

특히 피테르 브루게(1525~1569)의 계절화와 바벨탑은 작품도 워낙 크기도 했지만,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대단했다. 오래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그린 마르게리타 공주의 초상화는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음에도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어린 소녀의 얼굴에서 뭔지 모를 슬픔이 깃든 것 같아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공주는 15살에 합스부르크 왕가 레오폴드 1세의 신부가 되었지만 겨우 21살에 출산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비운의 주인공이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봤던 그 어린 공주였음을 알고 안타까웠다.

디에고 벨라스케스_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1659

박물관의 그림들이 생각보다 너무 흥미로워서 오랫동안 관람하다가 눈길을 확 사로잡은 그림들이 있었다. 과일과 꽃, 채소, 생선과 동물로 사람의 얼굴을 마치 장난처럼, 그러나 정성스레 그린 주세페 아르침볼도(1527?~1593)의 그림이었다. 16세기면 라파엘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화가들이 활약하던 시기인데 이런 기괴하고도 엉뚱한 그림을 그린 화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그림들을 보고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도 무리가 아닐법한 기묘한 그림을 남겨 고상함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아르침볼도는 의외로 궁정화가였다고 한다. 무려 막시밀리안 2세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명령을 받고 그린 그림이라니 그 패기가 대단하다. 후세에는 그가 그린 다수의 점잖은 그림들보다 괴상망측한 계절 시리즈와 물, 불 등의 그림이 훨씬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이 재밌다.

주세페 아르침볼도_여름 & 겨울. 1563

그 시절 미술이나 화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서, 이 그림들을 마음에 담아 오고 싶어 선택한 방법이 미술관에서 판매하는 그림엽서를 사 온 것이었다. 십수 년이나 지나 그 조그만 엽서들을 꺼내볼 때마다 그날의 매서운 날씨까지 함께 떠오른다. 유럽배낭여행 전까지 미술에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그때 봤던 그림들의 강렬한 에너지 때문인지 이후로는 미술 관련 책들도 많이 읽고, 작품과 연관된 미술가들의 열정적인 삶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겼다.


사람들이 고흐나 이중섭을 좋아하는 이유도, 평범함과는 대척점에 있는 그들의 뜨거운 삶의 궤적을 작품으로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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