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의 겨울밤
유럽여행은 보통 여름에 많이들 간다. 그러나, 나의 첫 유럽배낭여행은 2월부터 5월이었고, 날씨는 꽤 쌀쌀한 편이었다. 설 연휴를 이용해 갔던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2월 초는 지금 생각해도 춥고, 춥고, 또 추웠던 기억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을씨년스럽고 스산한 날씨가 그 지역의 정체성 같다고나 할까, 폴란드와 루마니아를 제대로 느끼게 해 준 게 아닐까 싶다.
특히,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눈이 오는 겨울에 들어서면 유독 추웠던 그해 2월 폴란드의 바르샤바가 많이 생각난다. 눈이 오는 양과 제설작업의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서 단 며칠 동안 여행하는 사람도 지루할 지경인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길고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궁금했다.
펑펑 제법 큰 눈송이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진눈깨비 같은 눈이 몇 날 며칠씩 쉼 없이 오면서 눈이 쌓였고, 아침에 숙소를 나서면 제설작업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인력과 장비를 엄청나게 동원하여 밤새 쌓인 눈을 치워야만 사람과 차들의 통행이 가능한 까닭에 이 제설작업은 바르샤바 겨울의 일상일 수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로 장사를 하듯이 바르샤바는 쇼팽으로 장사를 한다. 바르샤바 도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관광객을 맞이하는 무심한 쇼팽의 얼굴이 가득한 상점들이다. 파리에 갔을 때 페르라세즈 묘지에서 쇼팽의 무덤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의 심장은 고향 바르샤바 성 십자가 교회에 안치되어 있다. 이 성 십자가 교회 맞은편에는 쇼팽 이전 바르샤바의 상징이었던 코페르니쿠스의 동상이 마주 서 있다.
자신의 작곡 능력을 피아노를 쓰는데 편애를 해서 쇼팽은 살롱 작곡가 느낌이 드는데 코끝이 차가워지는 겨울이 오면 맑고 아련한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가 그리워진다. 영화 <피아니스트. 2002> OST 중 녹턴 20번, 발라드 1번은 겨울의 BGM으로 썩 어울린다.
(조성진) Seong Jin Cho - Chopin: Nocturne No 20 in C Sharp minor Op. Posth (2017) - YouTube
Seong-Jin Cho - Chopin: Ballade No.1 In G Minor, Op.23 | Yellow Lounge - YouTube
추위에 꽁꽁 언 몸을 따뜻하게 만들려면 음악보다는 역시 음식이다. 바르샤바 음식들은 대체로 맛있었는데 특히 폴란드식 만두 피에로기와 절인 양배추와 다진 고기를 볶은 비고스가 가끔 생각난다. 원래 비고스는 빵과 함께 나오는데 비주얼을 보자마자 이건 밥이랑 비벼먹어야겠다 싶어서 빵 대신 밥으로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밥을 내주었다. 비고스에 밥을 비벼먹었더니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폴란드 여행 가서 비고스를 드시게 된다면 반드시 밥과 함께 드시길…
바르샤바의 겨울밤은 특별히 아름다운데 포근하게 쌓인 눈과 옛 시가지의 고색창연한 건축물들을 은은하고 따뜻한 불빛이 감싸 안아 낭만적인 느낌을 한층 배가시켜준다. 화려하고 인공적인 조명이 아닌 달빛 가득한 중세도시에 도착한 착각이 드는 바르샤바의 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