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의 추억이 된 연필 컬렉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나무와 흑연 냄새

by Rosary

이사를 할 때마다 짐을 줄일 때 미련 없이 정리하는 것은 옷이다. 일단 살이 많이 쪄서 맞지 않게 된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살다 보니 옷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은 생활패턴이 굳어져서이기도 한 것 같다. 줄이고 줄였는데도 쓸데없는 옷이 여전히 많다. 살 빠지면 입고 말겠다는 청바지를 다시 입을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은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몇 벌 남았다. 오래전 6개월의 배낭여행을 할 때 여행기간이 길다 보니 짐을 줄이기 위해 옷도 최소한으로 가져가서 현지에서 구입한 옷들도 남아있다. 다소 난해한 셔츠와 바지들 역시 다시 입지 않을 것 같은데 버리기엔 뭔가 아깝다. 아마 추억이 함께 해서 그런 것 같다.


짧은 여행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3개월 이상 장기 여행을 할 때는 가는 곳마다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사면 가방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진다. 그래도 뭔가 기념이 될만한 물건은 갖고 싶은데… 6개월의 배낭여행을 하면서 내가 선택한 것은 연필이었다. 평소 연필을 즐겨 쓰기도 했고, 연필에 새겨진 문구나 디자인을 보면서 도시를 떠올릴 수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가볍고 휴대하기 부담이 되지 않아 좋았다.


이스라엘에서 머물면서 썼던 연필과 카이로에서 급하게 구입한 색깔이 화려한 연필, 빈의 박물관에서 구입한 연필도 예쁘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아무래도 피렌체 연필 가게에서 구입한 아름다운 연필이다. 사실은 싸고 예쁜 가죽 가방이 마음에 들어서 사고 싶었지만 가방을 사기에는 일정이 너무 많이 남아서 다음을 기약하고(다음이 쉽지 않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발길을 돌린 곳에 연필 가게가 보여서 들어갔는데 예쁜 연필들이 너무 많아서 선택장애가 왔던 기억이 난다. 각각의 연필만 봐도 어디서 샀는지 그날의 기억이 뚜렷하고, 가끔 꺼내 추억을 떠올리면서 사각사각 써보는 즐거움이 연필 쇼핑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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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초등학교 때 쓰던 줄줄이 연필이나 지구 색연필을 아직도 가지고 있을 만큼 연필을 좋아한다. 지금도 연필을 즐겨 쓰기도 하지만 연필을 깎을 때 나는 나무 냄새와 흑연 냄새를 좋아하는데 여행하면서 구입한 연필들에서 나는 냄새가 묘하게 다른 게 흥미롭다. 나무향이 강한 연필도 있고, 인공향이 나무향을 덮어쓴 연필도 있다. 나뭇결이 거친 연필도 있고,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연필도 있다. 보관하기 까다로운 다른 물건들과 달리 연필들은 보관하기도 매우 쉽고 단출하다. 커다란 필통에 한데 넣으면 그만인 것이다. 나에게 가성비 좋은 여행 기념품으로 연필만 한 것이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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