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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중함에 대하여

미얀마 지진 소식을 접하고...

by Rosary


여행을 즐기는 분들은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여행지에서 비보(悲報)가 들려오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몇 번의 가슴 철렁했던 기억이 있었다. 십수 년 전 이스라엘에서 두 달 동안 지냈던 에브론 키부츠가 레바논과의 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 이집트 다합에서 머물 때 수시로 드나들던 슈퍼마켓의 폭탄 테러 뉴스를 접하고 언제나 친절했던 주인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라서 걱정스러웠던 기억…

구름에 싸인 메라피산.JPG 인도네시아 메라피 화산 폭발 전 평화로웠던 풍경

인도네시아 메라피 산을 다녀온 몇 달 뒤 화산이 폭발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동네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뉴스를 보면서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메라피 산 아래 농가에서 담뱃잎을 말리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사진을 찍었는데 그 동네가 초토화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DSC05360.JPG 비현실적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미얀마 만달레이의 랜드마크 싱뷰메 파고다
DSC05449.JPG 당당한 위용에 반해 여러장의 사진을 찍어둔 이와야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그런데 며칠 전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규모 7.7의 강진으로 헤아릴 수 없는 피해자가 발생하여 유족들이 절규하고, 대형건물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무너져 내린 처참한 장면을 보고 안타까워 현장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얀마 여행을 하면서 가장 평안하고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누렸던 만달레이의 익숙한 장소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모습을 보자니 허무하고 심란했다.

0328.jpg 강진으로 무너진 만달레이 싱뷰메 파고다와 이와야디강의 다리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피해 입은 유적이야 복구하면 되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비극은 무엇으로도 복구할 수 없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4일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싱크홀로 인해 본업을 마치고 배달 부업을 하던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30대 청년이 황망하게 생을 마감했다. 경북 지역 산불 진화 과정에서 30여 명의 소중한 삶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예고도 없이, 준비도 없이 느닷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분들과 유족들의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텐데 사소하게 겪는 불편조차 견디지 못하고 짜증과 푸념을 늘어놓는 걸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게 없는 건가 싶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개인적인 성향이 점차 커지고 조금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생리가 만연화된 세상이지만 점점 이기적이고 삭막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상처받은 이웃을 보듬고 돌보는 것까지는 힘들어도 하루아침에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면 조금 기다리고 견딜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침에 눈뜨면 일어나고, 밥을 먹고, 낮에는 일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밤에는 잠자리에 드는 평범한 일상이 정말로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사무치게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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