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
요즘 아침은 달리기 위해서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달리는 재미에 눈을 뜨고 있다. 3월 19일부터 시작했으니 작심삼일은 넘긴 셈이다.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한 건 살을 빼기 위해서도,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었다는 게 신기한 일이다. 지난겨울부터 식후 혈당을 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식사 후 30분 정도의 산책을 꾸준히 해왔다.
3월 초까지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에는 아침에 이불속에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추위가 누그러지는 3월 중순 어느 날,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는데 심심해서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아직 쌀쌀하지만 산수유도 피고 봄이 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지난가을 거의 3개월 동안 피트니스 센터 트레드밀에서 3km를 뛰었지만 체중변화는 없었기에 달리기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 다만 당시 경험으로 3km 정도는 의외로 달릴 수 있을 만한 거리라고 생각되어 시험 삼아 스마트 워치를 켜서 뛰어보기로 했다.
트레드밀과 확실히 달랐지만 생각보다 숨도 차지 않고 달릴 만했다. 중간에 속도를 늦추기도 했지만 쉬지 않고 호흡을 고르며 3km를 뛸 수 있었다! 체력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첫 도전으로 3km는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수월하게 뛸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날부터 매일 오전 3km 달리기를 하고 있다. 나이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더니 달리기를 시작한 날부터 알람을 맞출 필요도 없이 오전 5시에서 6시 사이 잠에서 깨어난다. 야외 달리기는 트레드밀보다 훨씬 달릴 맛이 있다. 특히 봄이라서 매일 달라지는 봄꽃과 나무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달리기를 매일 즐겁게 하는 나만의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이런 길 저런 길을 달려보면서 최적의 코스를 찾아본다. 이 동네에서 4년째 살고 있기에 웬만한 길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달리기에 좋은 코스는 또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걷고, 달리고, 자전거 타기에 최적의 동네란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달리기를 시작해 보니 이런 동네 사는 것도 행운인데 꼭 달려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도 생긴다.
두 번째, 집에서 나오면 맞닥뜨리는 횡단보도 갈림길에서 녹색불 신호가 먼저 바뀌는 곳으로 코스를 정한다. 코스 1은 그냥 평지고, 코스 2는 산길이기 때문에 거리와 난이도가 달라진다. 이렇게 신호등이 정해주는 코스로 달리다 보니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다. 세 번째,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고 자연의 소리를 만끽하면서 달린다. 새소리, 바람소리, 자동차 소리 등을 들으면서 달리는 게 쿵쾅거리는 러닝음악을 들으면서 달리는 것보다 달리기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네 번째, 건강하게 오래 달리기 위해 달리는 시간은 30분 내외에서 멈춘다. 특별한 목적 없이 오롯이 달리는 시간을 즐기다 보니 무리할 이유도 없고, 기록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달리다 보면 욕심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냥 새벽 달리기로 하루를 길게 쓸 수 있음에 만족하는 중이다.
어떤 목적도 없이 순수하게 달리는 게 좋아서 달려서일까. 오히려 꾀가 나는 일이 없다. 그래도 몸이 찌뿌둥해서 좀 더 이불속에 머물고 싶을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직 건강하긴 해도 중년의 나이라 그런지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란 명백한 깨달음 말이다. 건강할 때 많이 뛰어두면 몸이 허락하지 않을 노후에 그때 실컷 뛰어놓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지체하지 않고 이불을 박차고 신발끈을 조이고 문을 나선다. 오늘까지 멀쩡하다가도 내일 병마가 찾아오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니까. 언젠가 걷는 것조차 버거울 수도 있는데 지금은 무려 달리기가 가능한데 뛰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