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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건네는 위로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 망중한(忙中閑)

by Rosary

‘초록이 주는 위로’라고 해서 흔한 소주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께서 베란다에 군자란이니, 산세베리아니, 사랑초 같은 화분을 공들여 키우실 때 그저 시큰둥했고, 물 한번 준 적 없었다. 두 분을 떠나보내고 그 집을 떠날 때 그 화분들은 집정리하는 업체에서 처분하게 한 후 이사를 왔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에게 큰 위로를 준 포인세티아와 꽃기린만 가져왔다. 식물이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껴서 애정을 가지고 돌보았지만 이사 오고 3년째 되던 해 둘 다 시름시름하더니 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4년 동안 참 많은 화분을 사들이고, 죽여서 보내고를 반복하면서 이제 내가 키울 수 있는 것들과 키울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어슴푸레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잎이 작고 꽃이 예쁜 것들은 고작 한두 달 눈요기를 하면 이내 시들시들 생명을 다해서 보내고, 별로 예쁘진 않지만 잎이 크고 튼튼하게 생긴 것들은 해를 넘기고 기특하게도 오랫동안 그 푸르른 잎을 구경시켜 준다.


제일 작은 포트로 들여놓은 몬스테라는 키워보니 잎도 갈라지지 않는 못난이라서 죽어도 그만이다 싶게 방치해도 절대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생명력에 질려버렸다(?) 삐뚤빼뚤 볼품없이 제멋대로 자라길래 잎 몇 대를 뚝뚝 잘라서 물꽂이를 해두었더니 금세 새로운 잎이 나오고 화분에 남겨둔 잎대에서도 새로운 잎이 삐죽 나오고 있다. 회사에서 잎이 무성해서 개구리 나올 것 같다고 해서 가지치기를 강권해서 가져온 스킨답서스는 물꽂이로 욕실에 두었더니 은근히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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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돈이 하도 궁하길래 미신처럼 들여놓은 금전수는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길래 살짝 지루해지던 차에 6월 들어 갑자기 죽순처럼 새잎이 올라오더니 몇 주 만에 몇 대가 쑥쑥 올라와서 키다리 막내가 되어 대견하기까지 하다. 금전수와 비슷한 시기에 들여놓은 무늬페페도 두툼하고 반짝이는 새잎을 계속 내보이면서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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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꽃집에 갈 때마다 눈에 밟히던 코브라 아비스도 큰 마음먹고 들여왔고, 수채화 고무나무 꼬마포트도 잘 키워서 예쁜 화분에 분갈이한 후 대품으로 키워볼 생각이다.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있는 건 물꽂이 식물들이다. 꽃집 사장님이 건네준 나비란, 송악, 홍콩야자는 신기할 정도로 잘 자라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화분에 식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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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중지 아껴도 쉽게 죽어버리는 예민하고 연약한 식물이 있는가 하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쑥쑥 자라는 튼튼하고 건강한 식물이 있다. 살갗이 타들어갈 것만 같은 폭염과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가 오가는 변덕스러운 여름을 무사히 보내고 ‘초록이 주는 위로’를 만끽하는 시간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한다. 정원이나 텃밭도 없이 작은 집안에서 아기자기하게 화분을 키우고 있지만, 시선을 돌려서 초록 생명을 바라보면 이만한 망중한(忙中閑)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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