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늙음은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싱가포르에 살 때 일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방바닥에서 흰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는 걸 몇 번 주운 적이 있다. 당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아들 내외와 한 집에 살았었는데 나는 그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내방으로 넘어온 거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주워 버리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내 머릿속에서 흰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앗, 그동안 그 머리카락들이 내 것이였던 건가 뒤늦게 놀랐던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도 흰머리카락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는데도 내 흰머리를 처음 자각한 건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20대나 30대 초반부터 새치가 생기기 시작한 사람이 아닌, 명명백백한 노화에 의한 흰머리를 처음 발견한 순간의 당황스러움과 충격, 서글픔 같은 감정을 기억할 것이다. 그날의 기분을 일기로 써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처음 흰머리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에 비하면 흰머리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지 않아 아직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있다.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바로 염색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번 시작하면 계속해야 하는 것들(빡빡한 식단관리와 운동, 혈압약 복용)은 웬만하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라 같은 차원에서 아직 염색은 시작하지 않았고, 그냥 조금 안정적인 비중과 속도로 머리가 새길 기대하고 있을 뿐 앞으로도 염색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람에 따라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천차만별이지만 나이 든 사람이라는 표시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흰머리기 때문에 흰머리를 100퍼센트 의식하지 않고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
글 쓰는 직업이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는 자연스럽고 모양 좋은 흰머리는 연륜의 멋스러움을 얹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젊음이 권력이고, 일을 얻는 수단이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흰머리는 필사적으로 감추어야 할 치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연예인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백발이 성성한 사람보다는 검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일을 얻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생존을 위해 귀찮은 염색을 열심히 해야만 하는 분들의 고충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As your youth is not a reward from your effort, My agedness is not a purnishment from my fault.”는 시인 Theodore Roethke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는 <은교>의 한 장면이 가슴에 깊이 새겨질 때쯤이면 청춘은 저만치 멀어진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나이 듦을 경멸하고 젊음을 과시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을 간혹 볼 때가 있다. 이제 제법 나이가 들고 보니 눈 깜빡할 사이에 옛날의 내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그 나이에 이미 도달해 있고, 그보다 훨씬 짧은 순간 뒤에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지금 검은 머릿속에 희끗한 흰머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