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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Nov 05. 2022

시카고에는 문희 씨가 산다

문희 씨 이야기-칸윈(KAN WIN)에서 만난 영희

 칸윈(KAN WIN) 자선 파티가 열리는 힐튼 호텔 로비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로비에서 내가  초대한 사람들을 찾아 테이블로 안내하느라 한참을  두리번거렸는데도 영희 부부는 보이지 않았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네 시간이나 먼 길을  운전해서  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다.

거의 파티가 시작될 시간이라서 영희 부부를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내가 초대한 다른 사람들이 기다릴까 봐 테이블로 돌아가니 영희가 멋진 정장에 모자까지 쓰고  지정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잠시 아는 이를 만나 인사하느라  자리를 뜬 사이에 어긋났나 보다.


올해도 칸윈 자선  파티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미리 기부금을 낸 사람들도 많아서 성공적인 것 같다.

이민자로 낯선 땅에 사는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들의 인권을 보살피는 칸윈에서  봉사한 지 10년이 넘었다.

아이들을 다 키운 후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알맞은  일이 없을까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여러 형제 가운데 맏딸로 자랐고 딸 셋 키운 경험이 어디에든 통하겠지 하는 마음과 사람 좋아하고 사람들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해서 전업주부였던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의 삶에 다가서게 되었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웬만한  얼굴들은 낯이 익다.

영희처럼  보살핌을 받던 사람이 자립하여 기부자로 온 몇몇 낯익은 얼굴들도 보여  반갑다.

영희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흐트러진 머리와 멍든 몸보다  무표정하고 서늘한  표정과 공허한 눈빛이 삶을 포기한  같아 가여웠다.

나의 첫 상담자 영희에게 '나는 어떻게 다가서야 할까?

평탄한 삶을 살아온 내가 그녀와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겁이 났다.

'나의 진심이 같잖은 동정심으로 받아들여지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다 '그래, 내가 잘하는 걸로 해보자. 내가 여기서 도망가버리면 영희는 또 다른 이에게 또다시 발가벗겨져 상처만 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대학 때 공부했던 상담 심리학 책을 다시 들여다보며 공부도 하고 책이나 인터넷을 뒤지며 연구하다가 이런 이론보다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해보자 싶었다. 우선 영희에게 밥을 해먹이기로 했다. 짬날 때마다  집으로 데려와 재우고 한식으로 밥을 해먹이자 조금씩 마음을 열고 가끔 눈을 반짝이기도 하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조용조용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영희를 보면서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게 참 아름다운 여자구나 싶었다

영희는 대구에서 자랐고 아들 둘에  딸 하나 있는 집 귀한 딸이었다.  대학을 졸업 후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자와 딱 3개월 연애하고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

영어도 못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생활은 외롭고 고단했고 남편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한국에서와  다른 막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처지를 비관하며 툭하면 영희 탓을 하면서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남편의 스트레스는 나날이 늘었고 폭력은 점점 횟수도 늘고 강도가 세졌고 몇 번이나 죽을 정도로 맞아 한참씩 앓아누워도 영희는 남편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남편에 대한 미움 속에 연민도 함께 있었고 자존감이 낮아져서  남편 없이 이 낯선 곳에서 혼자 살아갈 자신도 부모의 반대에도 굳이 스스로 선택한 결혼에 실패한 채 한국으로 돌아갈 자신도 없었다고 한다.


남편한테 맞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차라리 이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뀔  때쯤 우연히 지역 한국 신문에서 칸윈 전화번호를 보고 낯선 곳에서도 도와줄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희는 칸윈의 도움으로 남편과 법적 문제도 해결하고 재봉일도 배워서 씩씩하게 독립했고 영희가 일하는 세탁소로 매일 찾아와 구애하던 홀아비 백인 남자와 재혼해 잘 살고 있다.

영희는 가끔 시카고 우리 집으로 놀러 와 밥도 먹고 자고 가기도 한다

한 번은 시카고에 사는 동창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는 날 영희가 와서 장난으로 사촌 시누이라고 모두에게 소개했더니 "아이고  사촌이 남편과 어쩌면 똑 닮았네"해서 영희랑 함께 한참을 웃었던 일도 있었다.

이제는 영희가 거의 가족처럼 여겨질 때도 있어서 굳이 거짓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름다운 영희는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카윈 자선 행사에도 해마다 빠짐없이 참석해서 또 다른 영희를 위해 기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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