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대머리가 알전구처럼 반짝이는 지도교수가 들고 있던 연필로 수영의 캔버스 한구석에 X자를 그었다.
어디 컴퓨터 그래픽 보고 베꼈냐.
천장이 높은 콘크리트 강의실 안은 얼음처럼 차가운 침묵으로 가득했다.
- 이런 건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프랙털의 빛나는 소용돌이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일말의 기대감과 팽팽한 긴장이 뒤섞인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동기생들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잔디를 가지런히 깎은 화단처럼 뒤통수 주변에만 한 줄로 남은 노교수의 짧은 회색 머리카락은 곱슬곱슬했다. 젊은 시절에 독일에서 예술 마이스터 학위를 받았다는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런 건 예술이 아니다.’
‘그린다고 다 작품이 아니다.’
그는 방금 내 캔버스 귀퉁이에도 말없이 X자를 그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누구나 예상했던 그의 행동은 비웃음의 대상조차도 되지 못했다.
나는 내 캔버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늘색 아크릴 물감으로 배경을 칠하고 중앙에 어슴푸레한 흰색으로 빛을 그려놓은 피안의 빛.
나에게는 그림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었으므로 아무리 노력해 봤자 표현할 수 있었던 건 그게 다였다. 하지만 수영은 달랐다. 누구도 그에게 화가로서 재능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영이 캔버스에 아무리 아름다운 색채와 농도와 터치로 정교한 패턴을 그려놓아도 미술대학의 교수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해했다. 추상은 구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그림은 작품이 될 수 없다….
*
수영과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실기 작품이 미흡해서 죄송한데요, 리포트로 대체하면 안 될까요. 교수가 바로 승낙하지 않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라서요.
지저분한 잡동사니가 잔뜩 쌓인 커다란 책상 앞에 나란히 서서 수영과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의 처분을 기다렸다.
교수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메모지 한 장을 뜯더니 책 두 권의 제목을 써서 나에게 내밀었다.
- 다음 주까지 리포트 열 장씩 써서 내라. C학점 이상은 못 준다.
교수회관의 복도는 유난히 길었다. 수영과 나는 조심해서 걸었지만 터벅터벅 울리는 우리 둘의 발소리는 끈적한 꼬리를 물고 끈질기게 따라왔다.
도서관으로 가서 낡아빠진 두툼한 책 두 권을 빌렸다. 책을 보자마자 수영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수영이 난독증을 앓는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전공필수과목 첫 시간에 조교는 특별히 수영을 지목해서 조교실로 가서 프린트물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으니까.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그는 수영이 나가자마자 방금 그 학생은 난독증이 있어서 특수교육대상자로 입학했으니까 다들 도와주라고 성의 없이 말했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수영은 그러한 굴욕을 견디면서 학교에 다녔다.
지도교수가 캔버스에 X자를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 비어버린 강의실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나에게 먼저 다가온 것도 수영이었다.
수영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학점을 달라고 부탁해 보면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전까지 그와 나는 종종 공간 시간에 강의동 뒤편 스탠드에 멍하니 앉아있는 서로의 모습을 발견했으면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는 했다. 가끔 학생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다가 대각선 방향에 앉아서 말없이 밥을 먹었던 게 전부였다.
나는 애써서 감행한 전과를 포기해야 하나 갈등하던 찰나였다. 졸업한 후 회계부서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편집디자이너가 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산업디자인과의 경쟁률이 너무 높았으므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게 회화과였다. 하지만 미술대학 실기수업은 수강생들이 사전에 몇 년 동안이나 입시 미술 수련과정을 거쳤다는 걸 전제로 진행된다는 걸 몰랐던 게 함정이었다.
수영에게는 좌절과 굴욕이 익숙했다. 유소년 기와 청소년기에도 그는 언제나 따돌림과 은근한 멸시의 대상이 되었으면서 그 모든 수모를 묵묵히 견뎠다. 지금 나의 눈앞에서 감격에 겨워서 열이 오른 채로 록 언니와 수다를 떨고 있는 저 여자, 자그마한 몸집에 단단해 보이는 인상의 중년의 여의사, 바로 그의 어머니 때문에.
*
도서관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은 내가 낡은 책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면서 빠른 속도로 메모를 하는 동안 수영은 넓은 테이블의 대각선 방향에 앉아서 책장을 이리저리 들춰보면서 삽화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은 되도록 빨리 끝내버린다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 리포트를 그날 안으로 다 써버릴 작정이었다. 그렇다고 책을 그대로 베껴간다면 안 그래도 깐깐한 교수가 폭발해서 보복할 우려도 있었으므로 교묘하게 짜깁기하고 완벽하게 편집해서 마감일에 딱 맞춰 내려고 계획도 짜두었다. 테이블 너머로 흘낏 쳐다본 수영의 표정은, 뭐라고 할까, 이미 수없이 시도해 보았지만 좌절의 기억만이 가득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앞에 둔 실험용 흰쥐처럼 담담하게 그늘이 져 있었다.
어느 순간 눈이 마주친 그가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나는 가방에서 포스트잇 뭉치를 하나 더 꺼냈다. 작은 글자로 빼곡한 메모를 써넣은 노란 포스트잇 이외에 귤색 포스트잇이 중간중간 빠르게 추가되었다.
그날 나를 그토록 열심히 움직이게 만든 것은 순수한 분노였다. 회색 체크무늬 바지에 먹색 리넨 셔츠, 독일에서 유학했다는 땅딸막한 대머리 교수가 무참하게 가위표시를 하며 심판을 내렸던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런 건 예술이 아니다.
도서관이 문을 닫자 학교 앞 카페로 옮겨갔다. 자정 무렵까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가 퀭하니 핏발이 오른 눈으로 수영에게 물었다.
- 너 이 근처에서 자취하지?
그때까지도 멍하니 삽화를 응시하던 수영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앞 지하철역 근처 대형 오피스텔 사 층에 위치한 수영의 자취방은 넓고 좋았다. 잿빛 암막커튼이 창마다 완고하게 가로등 빛을 가린 실내에는 스탠드 몇 개가 오도카니 빛을 밝혔다.
- 너무 밝으면 눈이 부셔서.
수영은 전구가 빠져있는 천장의 빈 형광등을 어색하게 가리켰다.
주방의 백열등은 불이 들어왔다. 나는 식탁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앉아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 결과 누가 보더라도 동일인이 같은 책에 대해서 쓴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다른 리포트 두 편이 탄생했다.
*
그 후로 수영의 자취방은 내 아지트가 되었다.
큰집을 나와서 지내던 기숙사는 2인 1실이었는데 말상으로 얼굴이 길쭉한 룸메이트는 야단을 치는 듯한 어조로 사사건건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그녀는 강원도 시골 공무원의 삼 남매 중 둘째 딸로, 장학생 자리를 놓치지 않는 야무진 영문학도였다. 아침마다 해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잠자리를 정리하고 반듯하게 책상에 앉아서 학과 공부를 하던 그녀는 기숙사의 아침식사가 샌드위치나 햄버거로 제공되는 날이면 늦잠을 자는 내 몫까지 챙겨서 방으로 가져왔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분히 기숙사 내 평판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일평생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경쟁심리를 에너지 삼아 움직이던 그녀는 게으르고 무기력한 나를 한심하게 여겼다. 아마도 속으로는 무척 싫어했던 것 같다. 사실 누구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직 한 사람, 수영만 빼놓고는.
그는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냅다 따귀를 갈기는 것처럼 일어나며, 그 후에도 막힘없이 흐르는 시간을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알 수 없는 갑갑함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날이면, 나는 뜬금없이 수영에게 어디론가 가자고 졸랐다.
노을이 유난히 붉다는 이유로 캠퍼스를 몇 바퀴씩 돌거나 청량리역까지 나가서 밤기차를 타고 가서 새벽에 돌아오기도 했고 이른 새벽부터 한강변을 따라서 열 시간 가까이 걸은 적도 있었다. 도중에 플리마켓이 열린 장소에서 발을 멈추고 좌판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나를 수영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조금 추웠던 나는 터무니없이 큰 후드 티셔츠를 삼천 원에 사서 미니스커트처럼 엉덩이를 가리고 소맷단을 몇 번이나 접어 입고 다녔다. 그 보라색 기모 후드티는 나중에 수영의 잠옷이 되었다.
수영은 나와 한두 걸음 정도 간격을 두고 말없이 걸을 뿐이었지만 딱 한 번 그가 다정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버스를 탔을 때만 해도 분명히 있었던 지갑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걸 알아차리고 무척 속상해하던 때였다. 지저분한 해변에 서서 배낭과 주머니를 있는 대로 뒤적거리며 한숨을 연발하던 내 눈앞에 수영은 불쑥 주머니에서 꺼낸 갈색 남자용 지갑을 흔들었다.
그가 바다 쪽으로 손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 이것도 버릴까?
노르스름한 앞머리 너머로 장난기를 머금은 눈빛이 보였다.
나는 눈앞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리던 그의 지갑을 가볍게 낚아챘다.
- 나 배고파.
우리는 분식집에서 그의 카드로 튀김이 든 떡볶이와 만두와 어묵을 실컷 먹었다. 두어 달 전에 그의 자취방에서 나란히 비닐 가운을 둘러쓰고 염색했던 수영의 머리카락은 검은 뿌리가 돋아 난 데다가 하얗게 바랜 끄트머리가 갈라져서 엉망이었다. 보랏빛으로 염색했던 내 머리 꼬락서니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우리는 둘 다 미용실에 가는 것이 질색이었다. 어떻게 머리를 잘라달라고 설명해야 할지를 몰랐고 누가 머리를 만지면 소름이 끼쳤다. 수영의 머리카락은 점점 더 길게 자라서 나중에는 묶고 다녀야 했다.
그 지갑이 이태리제 명품이라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소매와 옷깃이 너덜거리는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채 강의실 뒤편에서 몇 시간이고 흘려보내던 시절에도 그가 돈으로 학벌을 샀던 부잣집 아들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수영이 화가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곤 세상 누구도 그 자신조차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단 한 사람, 록 언니만 제외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