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혼자서는 아무 데도 못 가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떠나야만 했다

by 유랑

이혼한 지 삼 년 만에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났다.

소원대로 자유의 몸이 됐건만, 무기력의 늪에 빠졌다.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건만 일상을 겨우겨우 견디며 하루를 보냈다.

코로나 격리해제 이후로 해외여행이 러시라는 얘기를 간간히 듣기는 했어도 생판 남의 얘기였다.




내가 사는 제주도는 날마다 햇살이 눈부셨고 평화로웠다.

십 분만 차를 몰고 나가면 새하얀 백사장과 눈부신 바다가 시야 가득 펼쳐지는 협재해수욕장이 있었다. 한라산까지도 한 시간이 안 걸렸다.

근데 굳이 돈 들고 몸 힘든 해외여행을 굳이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제주도에서도 매일 수영장에 가고 난대림이 무성한 숲길도 걷는데.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장소가 동네카페인데.


제주도로 이주한 후 나는 여행 블로거가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여행사 블로그를 쓰다가 출산휴가를 간 직원이 복귀하면서 팔 개월 만에 잘리고, 그 이후론 내 블로그에 일상여행기를 올렸다. 기분전환이 필요하면 블로그 체험단 신청도 했다.

제주도는 관광지였으므로 스킨스쿠버 다이빙도 마사지도 식사도 블로그 후기만 남기면 죄다 공짜였다.

아침에 침실 베란다로 나가면 한라산이 보였고 거실에서는 바다가 보였다. 집에 틀어박혀 책 읽고 일기 쓰고 실내수영장에 가는 규칙적인 일상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이혼한 거였다. 사사건건 내가 틀렸다고 태클을 거는 그를 떠나서 마음이 가는 데로 따라가고 싶어서.

이혼사유 중 하나는 여행에 대한 온도 차이였다. 오래전부터 내 정체성은 여행자였지만 그는 불확실한 상황을 싫어했다. 쓸데없이 나가서 돌아다니면서 돈 쓰는 게 질색인 사람이었다.

제주도 온 후에는 매일 혼자 나가서 걸어 다녔다. 남편이 있는데도 혼자보다 더 외로웠다. 그러다가 결국 이혼했다.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와 펜션홍보 블로그를 위해서 제주도 안에서 하루이틀 여행을 다녀왔다. 그러다가 해외여행 떠날 결심을 했다. 자유여행은 엄두가 안 나서 만만한 동남아 패키지로 예약을 했다.

4박 6일짜리 필리핀 보홀 패키지.

팔 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

이젠 어디 가도 싫은 소리 할 사람 없고 관심 가져 줄 사람도 없는데, 직장에 매인 몸도 아닌데, 첫발을 떼는 데만 삼 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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