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달마 대사처럼 수행하기
D-3.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마다 일기를 썼다
by
유랑
Oct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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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익숙한 내방을 나서면 그가 없는 낯선 공간을 마주해야 했다.
잠이 깬 새벽에, 아직 캄캄한 어둠 속에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어차피 맞닥뜨릴 일이다. 방문을 확 열어젖히고 어둠 속으로 나갔다.
텅 빈 그의 방과 불 꺼진 거실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늘 밤새도록 TV를 보다가 날이 밝아서야 잠들기 때문에 한밤중에 화장실에 갈 때면 늘 그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텅 빈 어둠뿐, 아무도 없다.
화장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소변을 보았다. 그의 방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로 방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다.
그가 떠난 첫째 날 밤, 마음이 힘들었던 것치고는 그럭저럭 잤다.
새벽 여섯 시쯤 눈을 떴다가 또 잠들었다.
일어나니 오전 열 시가 넘어있었다.
텅 빈 집은 적막하다. 어쩌다가 내가 아무도 없는 빈집에 누워 있을까. 누운 채로 멍하니 생각했다.
그는 나를 떠났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다 나 때문이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자 과거의 기억이 밀려왔다. 미칠 것 같았다. 약속이 없는 날에 혼자서 집에 있으면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커튼이 바람에 날리는 걸 보다가 거실 소파에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이전에는 종교가 없었지만 어느 날 불교의 가르침이 와
닿았다. 이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밤마다 유튜브로 자애로운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괴로움을 떨치고 집착을 버리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책을 읽었다.
붓다의 오래된 지혜에 의하면 인연이란 왔다가는 것, 내 가족, 내 몸뚱이까지도 인연 따라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
그가 떠난 후 한 달 동안은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문을 여는 순간이 두려웠다.
곧 맞닥뜨릴 텅 빈 어둠과 침묵을 생각하면 막막해졌다.
첫째 날에는 거실에 불을 켜 두고 나갔었는데 이틀째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나갔다가 현관문 앞에 서서 후회했다.
어디에도 피할 길이 없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떨렸고, 잘못 눌렀다는 에러음이 울렸다.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다시 한번 천천히 비번을 누르고 문을 열어젖혔다.
현관 센서등에 의지해서 샌들을 벗고 들어가서 거실 등을 켰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서 소파에 누웠다.
늦여름의 실내 공기는 묵직하고 더웠지만 쉽사리 창문을 열어놓지 못했다.
오피스텔 이층은 밖에서 접이식 사다리만 놓아도 쉽게 창을 넘어올 수 있는 높이였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차라리 에어컨을 틀까.
온갖 망상에 시달리다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창문을 확 열어젖혔다.
휘파람처럼 거센 바람소리와 시원하고 상쾌한 밤바람이 한꺼번에 안으로 밀려들었다.
더운물을 세게 틀어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거실로 나왔다.
그가 떠난 자리에 고여있던 적막을 몰아내느라 클래식 라디오를 틀었다.
밖에서 온종일 돌아다니면서, 과거의 괴로운 기억이 올라오는 순간마다 저녁에 집에 가면 하루 동안 힘들었던 기억을 글로 써야지 생각했
다. 하지만 정작 집에오면 아무것도 쓸 기운이 없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반짇고리를 가져와서 소파에 앉아 찢어진 나일론 치마를 꿰맸다.
시선 끝에 닿은
빨래 바구니
는 차고도 넘쳤다. 일기예보를 보니 앞으로도 나흘간 비가 온다고 했다. 미뤄둔 빨래를 들고 나와서 세탁기에 돌렸다.
당분간 맑을 날은 없다. 흐린 날이라도 땀에 찌든 옷과 수건을 빨아서 널어야 한다.
드럼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가 식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 문장씩 써 내려갔다. 쓰는 동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밤이 깊은 대신 머릿속은 조금 개운해져 있었다.
잠들기 전에 이를 닦으면서 생각했다.
흐트러진 마음으로 명상은 택도 없으니 당분간은 매일 일기를 쓰자. 지치고 피곤해도 그와 헤어진 다음 날에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기자.
덕지덕지 묻어있는 감정의 때를 일기장에 낱낱이 써서 털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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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4. 하루의 루틴 만들기
05
5. 여섯 장의 카드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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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7. 누구나 불행하다
08
8. 길든 짧든 삶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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