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스포주의)
주말을 맞아 미뤄뒀던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봤다.
사실 예전에 한국가던 비행기 안에서 보다가 '이게 뭐야..'하고 재미없어서 끔...
사실 아직도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좀 나랑 안맞는 유머코드도 많고 ㅎㅎㅎ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프로젝트(?) 같은 게 있는데 멀티버스 개념이 혼합된 것이라
사실 공부도 할 겸 일부러 봤다. (한국에선 워낙 평점도 높고...보고 운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
사실 처음 봤을 때, 내가 예상했던 이야기와 전개, 메시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인지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평소에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들, 그리고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후, 여러 평론과 리뷰들을 찾아봤다.
대체로 이 영화는 ‘허무주의(Nihilism)’로 상징되는 베이글과 조부 타파키(Jobu Tupaki), 그리고 그 허무 속에서도 끝없이 질문하고 나아가려는 ‘실존주의(Existentialism)’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철학 사조의 틀로 내 삶의 태도를 구분하자면, 나 역시 능동적 허무주의 또는 실존주의에 가까운 편이다.
한탄하고, 후회하고, 자책하며 염세에 빠질 때가 많지만, 결국엔 스스로 털고 일어나 다시 나아가려고 애쓴다.
어릴 적엔 ‘쓱’ 하면 ‘짠’ 하고 멋진 결과가 나오는 삶을 꿈꿨다.
고생 하나 없이 예쁘고 멋지게 살아가는 어떤 그림 말이다.
(그게 실재한다고 믿었던 내가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다ㅎㅎ)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0.0000001의 지점에서 시작하는 기분이었고,
도달해야 할 ‘1’은 너무 멀었다. 남들은 이미 ‘10’쯤 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도 살아보니, 그렇게 버둥거리는 과정 자체가 삶이었고,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그리고 그 삶이 나의 행복이었고, 내가 즐겨야 할 순간들이었다.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구절은 마지막에서 딸인 조부가 울면서 엄마와 한 이야기다.
"Maybe there's something out there, some new discovery, that will make us feel like even smaller pieces of shit. Something that explains why... you still went looking for me through all the noise. And why, no matter what... I still want to be here with you. I will always want to be here with you."
(어쩌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우릴 더 형편없는 존재처럼 느끼게 만들 새로운 것들이, 그런 모든 소음 속에서도 네가 날 찾아 헤맸던 이유를, 그리고 왜,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여전히 너와 함께 있고 싶은지 설명해 줄 것들이. 그래,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있고 싶을 거야.)
"So what? You just gonna ignor everything else? You could be anything, anywhere. Why not go somewhere where you... where your daughter is more than just... this. Here all we get is just a few specks of time where any of this actually makes any sense."
(그래서 뭐? 그냥 다른 건 다 무시하고 살 거야? 넌 뭐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어. 왜 굳이 여기 있어야 해... 왜 너희 딸이 그냥... 이런 모습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곳에 머무는 거냐고.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이 모든 게 잠깐이라도 의미 있어 보이는 몇 조각의 시간이 전부야.)
"Then I will cherish these few specks of time."
(그렇다면... 난 그 몇 조각의 시간이라도 소중히 여길 거야.)
이제 원하는 삶을 살 수도 있는데 초라한 자신(딸)과 함께하는,
이해할 수 없는 지치는 일상들로 가득한 이 삶을 선택한 당신.
여러 철학적 사조를 곁들여 어렵게 풀이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이 영화의 메시지는 난 하나인 것 같다.
너무나도 힘든 이 삶에서, 우리는 종종 상상한다.
‘그랬으면 어땠을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쩌면 다른 우주의 나는 더 멋지고 화려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은 재미일 수도 있고, 때론 간절한 진심이기도 하다.
지금이 그만큼 버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상의 삶보다,
감히 수많은 멀티버스의 삶보다 이 순간을 선택하게 만드는 건
결국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고 또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의 관계 아닐까.
이게 영화 속 대사였는지, 어디서 주워 들은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다시 돌아가도 아빠(혹 엄마)는 네 엄마(아빠)랑 결혼할거야. 왜냐면 너를 낳았으니까. 너를 만나게 해주었으니까."
이 삶이 지치고 버거워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동경하던 삶을 눈앞에 두고도 기꺼이 등을 돌릴 수 있는 순간,
그런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소중한 관계가 당신 곁에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삶, 이 버전은
수많은 멀티버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최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