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받은 한국 소포들
얼마 전에 다른 분의 도움으로 감사하게도 한국에서 택배를 배달받았다. 난 러시아에 제법 잘 적응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물건을 하나하나 만져보니 내 고국이 느껴졌고 그리워졌다. 이렇게 살기 편하고, 내가 갖고 싶은 게 다 있는 한국이 있었지? 상기됐다.
택배를 뜯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더욱이 한국 물건은 받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이번 택배는 나에게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나에게 따스함까지 배달된, 내 택배박스를 구독자분들과 함께 열어보고자 한다.
맥시멀리스트인 게 티가 나는 나의 택배들!
우선 여기선 한국 종이책을 읽을 수 없기에 몇 권 주문했다. 사실 다독가도 아닌지라 책을 그리 갈망하진 않았었는데, 책이 반갑게 느껴지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해 한국에 갔을 때, 서점에 들렀는데 여기 쌓인 책들을 내 마음껏 읽을 수 있단 기분이 너무 신기했다.
모국어는 직관적이고 감수성을 관장하는 우뇌가 반응하고, 외국어는 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관장하는 좌뇌가 반응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한국어를 읽을 때, 외국어를 읽을 때와 달리, 내 감수성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러시아어 책은 공부하기 위해 읽는 기분이라면, 한국어 책은 나를 채우기 위해 읽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내 모국어로 된 한국책이 더욱 감사하게 다가왔고,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다음은 테니스 라켓과 가방!
사실 여기도 라켓은 팔지만 저런 귀여운 색깔에 액세서리? 그런 감성 러시아에는 없다..! 더욱이 가방은 테니스 라켓이 뽁 들어가게끔 디자인 돼있었는데 이런 가방도 러시아엔 잘 없다. 테니스.. 다쳤다는 핑계로 잠시 쉬고 있지만 이렇게 또 장비가 갖춰졌으니 이젠 시작을 해야지..!
다음은 내 점심을 책임져줄 도시락 가방!
위 테니스 라켓도 그렇지만, 이런 귀여운 아이템들을 구하는 게 힘들다. 이걸 들고 회사에 출근했는데 우리 사무실 러시아인 직원들이 너무 귀엽다며 어디서 샀냐고 물어왔다. 역시 한국엔 이런 게 많아 너무 좋다며 가고 싶다 하는데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리고 다음은 IT 굿즈!
역시 이런 템들.. 정말 한국에선 클릭 한 번이면 2-3일 만에 올 것들인데, 여기선 구하기가 어렵다. 특히 전자기계는 사태 이후 가격이 많이 올라서 비싸졌는데, 이런 아이패드 키보드는 중국 알리바바 통해 직구를 할 경우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순 있다. 그럼 한 보름이나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멋진 아이템들을 갖고 사무실에서 일할 생각 하니 출근이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사실 요 종이와 다이어리는, 내가 산 게 아니라서 “응? 잘못 왔나?” 하며 열어보았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눈물을 쏟아냈다.
가족들이 서프라이즈로 편지를 넣은 것이었다..
동생과 엄마는 우리 집 고양이들과 동생 사진을 넣어 작은 미니 앨범을 만들어주었고, 아빠는 감명받으신 글귀를 한 자 한 자 눌러 담아 편지를 써주셨다. 무언가를 보며 글을 열심히 옮겨 쓰셨을 아빠를 상상하니 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졌다. 날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족의 사랑은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있는 정도보다도 훨씬 더 깊다. 내가 보답을 할 수 없음에 슬픈 마음도 들기도 했고, 내 뒤에 늘 이런 가족이 있다는 건 천운이 아닐까 하는 든든한 마음이 든다.
그냥 택배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온기와 가족의 사랑이 담긴 그런 택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