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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Mar 14. 2024

러시아에서 미용실 무서워서 다시는 못 가겠어요

K-미용실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하루

모스크바 한인들 사이에서 러시아 미용실에 대한 악명은 상당히 높다.


남자분들은 주로 한인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하시는 경우가 많고, 여성 분들은 한국에 한 번씩 갈 때마다 염색이나 파마를 해온다. 셀프로 머리를 자르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그랬다. ㅠ


하도 악명이 자자해서, 머리빨이라도 없으면 안 되는 나에겐 정말 큰 도전 같은 일이었다.


그래도 러시아가 참 살기도 좋아졌고.. 네일아트 하는 걸로 봐선 미용 수준도 전보다 많이 올라왔다 생각하고, 그래도 한번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2년 만에 처음으로 미용실에 도전했다. 과연, 결과는..?




대실패였다.


겉보기에 상당히 멀쩡해 보였고, 인테리어도 요즘 여느 네일숍, 식당들처럼 굉장히 모던하게 돼있었는데..!


비싸긴 하지만 언제까지고 한국에 갈날만 기다리며 머리를 안 할 수 없으니, 잘하는지 봐서 괜찮으면 계속 다녀야지 하는 마음에 가격표를 찾아봤었다. 인터넷에서 본 “중간 길이 염색”은 12만 원 정도였다. 이 정도면, 도전 감수해 볼 만하다 싶어 예약하고 방문했다.


그 런 데!

앉으니 내 모발이 두껍고 길이도 길다고 26만 원을 부르는 것이었다. 12만 원도 한국에 비해 비싸지만 큰맘 먹고 온 건데..! 26만 원은 내 예산보다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냥 원래 내 머리색보다 밝게 하는, 단순 염색인데..? 파마면 몰라도 염색이 26만 원?


저 죄송한데 다음에 올게요 하고 일어나려니, 저렴한 약으로 하면 15만 원 정도라길래, 그럼 그걸로 해달라고 했다. 첫인상부터 기분이 좀 상한다.


그래도 염색 잘만 해준다면, 앞으로도 다닐만한 가격이라 생각하며 머리 시작!



1차 시도


뿌리부터 염색약을 바르길래 뭔가 싸한 예감이 들었다.


염색 잘 모르는 사람도, 두피 쪽은 열이 많아 약이 잘 먹어서 나중에 발라야 하는 걸 알지 않나..? 그만의 방식이 있는 건가 하고 머리를 감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진으론 잘 안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두피만 노래지고 밑부분은 약이 하나도 안 먹었다. 머리 안쪽은 노랗고 겉은 검다.. 어떤 구간은 층도 졌다.


얼룩덜룩해진 머리를 보니, 이럴 거면 내가 집에서 했지! 하는 마음이 부글부글 올라온다.




이거 너무 얼룩지고, 밑엔 하나도 안 됐고.. 심각한데요.. 다시 하는 게 나을까요?

 

라고 말하자 미용사 얼굴이 붉어졌다.


이미 염색하는데 무려 2시간 반이나 흘러 시계는 10시가 됐고.. 자기도 잘 안 된 건 인정은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작업하기는 너무 싫어서 짜증이 났나 보다.


나도 집에 가고 싶어 죽겠는데, 이대론 사회생활하는데 부끄러움이 상당할 것 같아 결국.. 크게 용기 내 물었다.



본인이 봐도 심각하니, 다시 해주겠다고는 했다.

혹시나 하여 추가 비용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원래 금액의 2배 더 내세요.


염색약이 더 들긴 할 테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사과 한 마디 없이 뻔뻔하게 말하는 그의 당당함에 나도 그때부턴 열이 올라와버렸다. 심지어, 안 물어봤으면 계산할 때 저렇게 요구했을 것 아닌가.


미용사의 태도에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제가 2배나 부담해야 하는거죠..?


그러자 그도 지지 않고, 쉬익쉬익대며 말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요? 그러게 비싼 염색약으로 했으면 이럴 일 없었잖아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그 태도가 어처구니가 없어 나도 봐줄 수 없다 싶어 싸워보기로 했다..(?)


“저렴한 약 써서 이리 되는 거면 미리 말을 해주셨어야죠.. 그럼 제가 안 한다고 한다던지, 비싼 거 그래도 해보겠다 하지 않았을까요..?“ 하니 결국 그가 ”알겠어요 공짜로 해줄게요.“했다.



2차 시도


미용사는 머리를 거의 쥐어뜯으며 빗고, 분무기와 염색통을 쾅쾅 내리치며 한껏 본인이 화났음을 표현했다.


결국 미용실 매니저가 지나갈 때,

“혹시 저한테 화나서 이렇게 하시는 건가요?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얘기해 주시죠” 라고 말했더니 미용사가 매니저 눈치를 보며 “아 아니에요” 하며 머리를 뜯는 건 멈췄다.


나도 참 못 참고 쏘아붙이긴 했다만.. 사과 한 마디 없이 당당한 미용사 태도에 나 역시 화가 많이 났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머리.. ㅠㅠ

그런데..! 두번째로 하는 게 탈색인줄 몰랐다.

머리를 감고 보니 머리가 노오오오오래져 있었다.

머리도 다 상했을 텐데..


그리고 미용사는 다시 내가 하고 싶어 했던 한혜진 언니 머리색으로 덮겠다고 하는데, 시계가 11시가 되어 미용실 매니저가 퇴근을 해버렸다.


미용사는 매니저에게 “나갈 때 음악 좀 꺼주세요“ 라고 했는데, 그렇게 매니저가 음악을 끄고 나가니, 남자 미용사의 분노의 염색질만이 침묵 속에서 계속 됐다.



3차 시도


남자와 단둘이, 그것도 나 때문에 단단히 화난 남자와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단둘이 있자니 갑자기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갑자기 머리 감겨주다가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와중에 남자 미용사의 수염 거뭇거뭇하고 덩치 큰 친구도 와서 소파에 앉아있다. 둘이서 어떻게 해보려고 한다면 난 꼼짝없이 당할 텐데..


염색 한번 하는데, 남자친구에게 sos 전화를 걸 수 있게 손에 휴대폰을 단단히 쥐고 있을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는 러시아 미용실에 오지 않기로 다짐했다.



종료

염색, 탈색, 그리고 염색

3번의 염색을 거쳐 머리가 끝났다. 분노의 염색 작업만 있었을 뿐, 해코지라거나 하는 일은 다행히 일어나진 않았다. 덩치 큰 미용사의 친구는 나갈 때 친절히 문을 열어주었고, 괜한 걱정이긴 했다.


하지만.. 12시가 넘어서 외국에서 남자 둘과 한 공간에, 심지어 나 때문에 화난 남자와 그렇게 있으면 당연히 무섭지 않았겠는가.


윗부분은 까맣고 밑은 또 밝게 됐고

머릿속은 얼룩덜룩하지만.. 염색 첫 번째 시도 결과보단 훨씬 나았다.



오늘의 교훈


역시, 머리는 아직 한국에서 하는 게 맞다.

역시, K-뷰티가 최고다!!!


- 격한 러시아 미용실 체험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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