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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Apr 25. 2024

딸의 자존심은 곧 엄마인 나의 자존심 (하)

 SNS에서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는데 최근 알게 된 책들 중 제목이 눈길이 가는 책이 있었다. <내가 엄마들 모임에 가지 않는 이유>란 책이다. 보자마자 이목을 집중시키는 제목이다. 우와 이런 책이 있어? 하며 바로 저 책의 저자 SNS 계정을 들어가 보았고 정말 다양한 사례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나만 겪는 게 아니었어? 하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책을 구매했다.


 책의 내용은 대략 여자아이들이 영유아시절부터 겪게 되는 시샘, 질투, 친구 관계, 싸움, 갈등들을 다루며 그로 인해 또 겪게 되는 그 여자아이들의 엄마들의 갈등을 다룬다.

 

책을 보면 '친구엄마'라는 타이틀과 '육아'라는 이름으로 공감하면서 만나 매우 급속도로 빠르게 친해지는 반면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나면 또 급속도로 멀어지는 관계.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이 구절에 정말 큰 감명을 받았고 공감하였다. 앞 장에서 소개했듯이 나는 타 지역으로 이사했고 이제는 더 이상 친정과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새롭게 사람들을 만나 사귀고 알아가야 했기에 매우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과 가까워지려 애썼다. 분양아파트의 입주 시기와 거의 비슷하게 개원한 단지 어린이집에 이미 관계가 형성된 엄마들이어서 (우리 아이는 3개월 뒤에 입소했다.) 다소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새로 개설된 반 엄마들과 차도 마시며 관계를 조금씩 쌓아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관계는 아이들의 관계가 무너지면 엄마들조차 바로 등 돌아버리는 아주 얄팍한 관계다. 물론 아주 잘 지내는 엄마들도 더러 있긴 하다.


 다음 장에서 다루겠지만 딸아이가 약간 발달이 더뎠어서 그랬는지 말이 느려서 그랬는지 30개월 전후로 깨무는 아이였다. 새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약간 초보교사였는데 우리 아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셨고 때문에 반친구 한 명을 연속적으로 두 번 물었다. 너무 죄송하여 그 아이 엄마에게 전화드렸는데(함께 차도 마시고 집도 드나들었던 사이다.) 아예 전화를 거절하시고 그 이후로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 아이의 잘못이지만 엄마의 잘못이기도 한 씁쓸한 경험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다른 예도 있다. 같은 동에 같은 나이, 개월수도 성향도 비슷한 친구가 있다. 집에도 놀러 와 가까이 지냈는데 그 아이는 말이 아주 빠르고 야무진 친구였다. 그런데 말이 빠르다 보니 미운 말도 쉽게 배우는가 보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마주쳐서 함께 인사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느닷없이 우리 딸에게 “나 너랑 안 놀아! 너 우리 집에 오지 마!!”라고 하는 거다. 한 번도 아니고 꽤 여러 번. 우리 딸 말이 아직 터지지 않은 것도 서러운데 그런 말을 듣고 그 말을 받아치지도 못하는 게 너무 서럽고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어릴 때 정말 빠른 아이였기에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 텐데 내 아이가 이런 말을 듣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빠르게 그 아이의 부모를 쳐다보았지만 아이엄마는 어떠한 대처도 하지 않고 쓱 데리고 가버렸다. 참으로 황당했다. 애는 뭘 모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미운 말을 하였는데 듣게 된 아이에게 부모라도 혹여나 빈말이라도 사과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저 귀엽다는 듯이 자기 아이를 보고 지나칠 일인가?


 아이가 피해를 입으면 엄마인 나도 피해를 입고, 아이가 기분이 상하거나 속상하면 엄마인 나도 기분이 상하거나 속상하고, 아이가 누군가에게 맞고 오면 엄마인 내가 맞은 것처럼 아프고, 반대로 아이가 누군가를 때리거나 아프게 하면 엄마인 내가 죄인이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육아가 참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딸의 자존심은 결국에는 곧 엄마인 나의 자존심이구나.


 어느 날은 아이가 느닷없이 공주 치마를 입겠다고 하는 거다. 우리 반에 누구누구가 샤드레스를 입고 왔으니 자기도 입고 가야 한다고 우기기 시작한다. 오늘 체육 하는 날인데 샤드레스를 입겠다고. 곧이곧대로 우긴다. 네 살밖에 안된 여아를 말로 설득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결국 드레스를 입고 등원했다.

 또 어느 날은 누구누구처럼 하트머리를 해달라고 조른다. 하트머리? 그게 뭐지? 아, 기억난다 누구누구가 했던 그 머리? 등원시간이라 바쁜데도 내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하트머리를 안 하고 가면 뒤처질까 봐(뒤처진다는 표현도 참 웃기다.), 속상할까 봐 머리를 해줬다. 하! 네 살밖에 안된 여자아이들이 공주치마를 자랑하고 하트머리나 왕관 같은 머리를 시샘한다는 것이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요즘 애들이 이런 방면으로 상당히 발달되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딸의 자존심은 곧 엄마인 나의 자존심인 상황들이 많았다.


 이 외에 놀이터에서 나타나는 엄마들끼리의 묘한 신경전도 꽤 많다. 어떤 엄마는 우리 아이가 입은 옷의 브랜드가 궁금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상표 위로 손이 가는 일도 있었고, 우리 아이가 새로 산 자전거를 이리저리 보며 깎아내리는 엄마도 있었다. 나 역시 다른 여자아이가 예쁜 옷을 입거나 좋아 보이는 장난감을 들고 나오면 유심히 보게 되니 비단 남 탓만 할 일이 아니다.


 왜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는 걸까. 엄마는 엄마, 자식은 자식이 도저히 안 되는 걸까. 왜 자녀에게 자신을 투사하여 혹은 동일시하여 문제들을 만들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일까. 참 의문스럽지만 답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왜냐면 나는 내일 우리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생일파티가 있어 공주드레스를 입혀서 등원시킬 예정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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